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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 분배의 원리[수 13장 1-14]

조회 수 1459 추천 수 0 2015.07.24 19:18:09

땅 분배의 원리[131-14]

 

1 여호수아가 나이가 많아 늙으매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너는 나이가 많아 늙었고 얻을 땅이 매우 많이 남아 있도다. 2 이 남은 땅은 이러하니 블레셋 사람의 모든 지역과 그술 족속의 모든 지역 3 곧 애굽 앞 시홀 시내에서부터 가나안 사람에게 속한 북쪽 에그론 경계까지와 블레셋 사람의 다섯 통치자들의 땅 곧 가사 족속과 아스돗 족속과 아스글론 족속과 가드 족속과 에그론 족속과 또 남쪽 아위 족속의 땅과 4 또 가나안 족속의 모든 땅과 시돈 사람에게 속한 므아라와 아모리 족속의 경계 아벡까지와 5 또 그발 족속의 땅과 해 뜨는 곳의 온 레바논 곧 헤르몬 산 아래 바알갓에서부터 하맛에 들어가는 곳까지와 6 또 레바논에서부터 미스르봇마임까지 산지의 모든 주민 곧 모든 시돈 사람의 땅이라. 내가 그들을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쫓아내리니 너는 내가 명령한 대로 그 땅을 이스라엘에게 분배하여 기업이 되게 하되 7 너는 이 땅을 아홉 지파와 므낫세 반 지파에게 나누어 기업이 되게 하라" 하셨더라. 8 므낫세 반 지파와 함께 르우벤 족속과 갓 족속은 요단 저편 동쪽에서 그들의 기업을 모세에게 받았는데 여호와의 종 모세가 그들에게 준 것은 이러하니 9 곧 아르논 골짜기 가에 있는 아로엘에서부터 골짜기 가운데에 있는 성읍과 디본까지 이르는 메드바 온 평지와 10 헤스본에서 다스리던 아모리 족속의 왕 시혼의 모든 성읍 곧 암몬 자손의 경계까지와 11 길르앗과 및 그술 족속과 마아갓 족속의 지역과 온 헤르몬 산과 살르가까지 온 바산 12 곧 르바의 남은 족속으로서 아스다롯과 에드레이에서 다스리던 바산 왕 옥의 온 나라라 모세가 이 땅의 사람들을 쳐서 쫓아냈어도 13 그술 족속과 마아갓 족속은 이스라엘 자손이 쫓아내지 아니하였으므로 그술과 마아갓이 오늘까지 이스라엘 가운데에서 거주하니라. 14 오직 레위 지파에게는 여호수아가 기업으로 준 것이 없었으니 이는 그에게 말씀하신 것과 같이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 드리는 화제물이 그들의 기업이 되었음이더라.

 

언젠가 워싱턴포스트지가 지난 1000년 중 가장 중요한 인물을 칭기즈칸으로 뽑은 적이 있습니다. 칭기즈칸은 오늘날의 관점에서 본다면 미스터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소수의 유목민 출신이 변방에서 일어나 중원을 제패하고 나아가 아시아와 유럽, 이슬람과 기독교 문명을 접속시키는 엄청난 위업을 달성했다는 사실은 불가해한 일인 것입니다. 그가 정복한 땅은 777km²입니다. 알렉산더(348km²), 나폴레옹(115km²), 히틀러(219km²)가 지배한 지역을 다 합쳐도 여기에 미치지 못합니다.

 

오늘 칭기즈칸을 소개하는 이유는 그가 1000년 만에 나타난 영웅이요, 위대한 인물이기 때문이어서가 아니라 그가 유언처럼 남긴 메시지가 더 인상적이라서 말씀드린 것입니다. "내 자손들이 비단 옷을 입고 벽돌집에 사는 날 내 제국이 망할 것이다." 즉 정복보다 더 어려운 것이 그 땅을 차지하여 누리는 일인 것입니다. 우리에게 적용한다면 복을 받는 일보다 복을 누리는 일이 더 어렵다는 말입니다.

 

여호수아서는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는데

1-12장까지는 여호수아가 가나안 땅을 정복한 것에 대한 기록이라면

13-24장은 정복한 땅을 분배한 것에 대해 기록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말씀을 통해 아직 가나안 땅 정복이 완전히 이루어지지 않는 상태에서 분배를 명하고 있는 이유가 무엇인가 살펴봄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첫째, 정복하지 못한 지역들

 

"여호수아가 나이가 많아 늙으매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너는 나이가 많아 늙었고 얻을 땅이 매우 많이 남아 있도다"(13:1).

 

이스라엘은 7년간의 치열한 정복 전쟁을 통해서 전체적으로는 가나안 땅에 대한 주도권을 장악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아직 정복해야 할 땅이 많이 남아 있음을 여호수아에게 상기시켜 주시며, 앞으로 얻을 땅까지 포함해서 각 지파들에게 가나안의 땅을 분배하라고 지시하셨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여호수아는 이제 나이 많아 늙었다는 것입니다. 리더십에 있어서 중요한 것 가운데 하나는 자신의 한계를 아는 것입니다. 인간은 조금만 힘을 가지면 금세 자신을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는 무적의 존재로 착각합니다. 그 자리에서 영원히 영향력을 행사할 것처럼 여기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위대한 인간에게도 한계는 있습니다. 우선 건강의 한계가 있고, 능력의 한계가 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세월의 한계가 있습니다.

 

도무지 불가능할 것만 같았던 가나안 정복 전쟁을 승리로 이끈 위대한 지도자 여호수아에게도 바로 그 한계의 시간이 왔습니다. 한계에 이르렀다는 사실을 다른 이가 아닌 하나님이 직접 여호수아에게 상기시켜 주셨습니다. "너는 나이 많아 늙었고 얻을 땅의 남은 것은 매우 많도다"(13:1). 당시 여호수아의 나이는 거의 100세 가까이 되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성경에 여호수아가 실제로 세상을 떠난 나이는 110세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여호수아는 이제 자신이 없는 이스라엘 민족의 앞날을 예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누구에게나 반드시 찾아오게 되어 있는 순간이지만, 그 말을 다른 사람도 아닌 하나님에게서 직접 듣는 여호수아의 심정은 상당히 착잡했을 것입니다. 알고 있는 것과 실제로 당하는 것은 천지차입니다. 내려와야 할 때 내려오는 일은 어쩌면 올라가야 할 때 올라가는 것보다 몇 배 더 어려운 것입니다. 돈이든 권력이든, 내려놓는 것은 취하는 것보다 훨씬 더 어려운 결정입니다.

 

그런데 오늘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에게 "여호수아야, 너도 세월 앞에 별 수 없구나. 이제 나이 많아 늙어 뒤로 물러가야 되겠구나" 하고 여호수아의 쇠퇴를 지적하는 말입니까? 그런 말씀이 아니지요. 비록 유한한 인간의 약점인 세월 앞에 무릎 꿇는 육신이지만 마지막까지 의무를 다하라는 말씀입니다. 아직도 얻을 땅이 많이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아직도 할 일이 있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사람은 이렇게 유한한 존재지마는 하나님은 영원하신 분으로 끝까지 하나님을 의지하고 나아가라는 말씀입니다. 어떻게 보면 우리가 약점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 약점을 바로 인식한다면 전적으로 하나님만 의지하게 됩니다. 인간의 생명은 유한하지만 하나님의 신실하심은 영원하십니다.

 

사도 바울도 빌 312절에서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

 

우리도 예수님을 믿고 구원 받았지마는 정복해야할 미개척지가 많습니다. 1. 성화되지 못한 미성숙한 인격의 정복. 2. 아직도 믿지 않는 가족과 친척, 이웃을 전도하는 일 3. 미전도 종족에 대한 선교의 비전 4. 맡겨주신 사명을 주님 부르시는 그날까지 충성스럽게 감당하는 일들, 할 일들이 많습니다. 비록 유한한 인간의 약점을 가진 우리들이지만 끝까지 사명을 다하는 우리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둘째, 땅의 분배하라.

이스라엘 백성들은 기브온의 항복을 받은 후 두 번의 큰 전투를 겪었습니다. 한 번은 남쪽의 기브온 전투이고, 다른 한 번은 북쪽의 메롬 물가의 전투입니다. 비록 남아 있는 지역들이 많이 있을지라도 이 두 번의 전투로 거의 대부분의 가나안 주력 부대는 다 깨어졌습니다. 이제 이스라엘 백성이 해야 할 일은 각 지파별로 자기들에게 분배된 지역을 찾아가서 거기에 있는 가나안 족속들을 몰아내고 땅을 차지하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왜 여호수아 시대에 모든 땅을 취하도록 허락하지 않고, 많은 영역을 다음 세대에게 숙제로 남겨놓게 하셨을까요? 두 가지를 생각할 수 있습니다.

 

첫째, 이스라엘의 실제적 유익을 위해서 입니다. 한꺼번에 많은 땅을 차지하면 땅이 황폐화되어 이스라엘이 정착하여 생활하는 데 어려움을 겪게 됩니다. 그래서 정복되지 않은 남은 땅은 이스라엘이 정착하여 번성해 감에 따라 차츰 넓혀 가는 것이 바람직했습니다. 광활한 미국 대륙도 개척하는 데 150년 넘게 걸렸습니다. 인구가 차츰 늘어 가고, 나라가 안정이 되면서 미국인들은 조금씩 서부 개척을 단행했고, 개척한 땅들을 일궈 나갔던 것입니다.

 

둘째, 이스라엘의 영적 유익을 위해서 입니다. 한꺼번에 가나안의 모든 땅이 다 주어졌다면, 그들은 이제 다 이루었다고 생각하여 목표 의식을 상실하고 나태해질 우려가 있었습니다. 따라서 남아 있는 땅, 그것도 여전히 만만찮은 적들이 버티고 있는 그 땅은 이스라엘로 하여금 앞으로도 계속 영적으로 깨어 있게 하며, 믿음의 삶에 도전을 주게 될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항상 우리가 편안하게 안주하는 것보다 영적으로 건강하고 탄탄하게 서 있기를 원하십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어려움과 도전이 우리에게 늘 필요함을 아시고, 조금 고통스러워도 우리의 삶 가운데 장애물과 어려움을 허락하시는 것입니다. 원하는 것을 지금 모두 받는 것만이 은혜가 아닙니다. 다 주어지지 않고 남겨져 있는 것도 은혜임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은 이미 주력 부대는 다 이겨놓은 상태에서 그들을 내쫓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 이유는 전쟁이 두렵기도 하고 귀찮기도 했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주력 부대가 사라졌고, 나가서 싸우면 능히 이길 수 있다는 약속이 있어도 현실적으로 그들이 나가서 싸우지 않아 그 약속을 자기의 것으로 만들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더 중요한 현실은 그들의 마음속에 하나님의 일에 대한 열정이 식어버린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가나안 땅에서 원주민을 몰아내는 일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가나안 땅에서 해야 할 다른 일도 많았기 때문입니다. 농사도 지어야 했고, 집도 지어야 했습니다.

 

그리고 가나안 족속을 내쫓지 않고서도 얼마든지 잘살 수 있는데 무엇 때문에 힘들게 가나안 사람들을 그 땅에서 몰아내겠습니까?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들 사이에 중요한 생각의 차이가 생겼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가나안 족속들은 죄인이다. 그러니까 너희가 그들을 몰아내고 새로운 사회를 만들어라. 만일 너희가 그 사람들을 몰아내지 않으면 그들이 너희의 신앙생활을 하는 데 올무가 될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은 "가나안 사람들이 있어도 우리는 얼마든지 신앙생활을 잘 할 수 있습니다"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먼 미래를 내다보지 못하고 눈앞의 이익에 급급했습니다. 결국 문제가 되는 것은 당장 편하게 잘사는 것이냐, 아니면 현재에는 고달파도 궁극적인 하나님의 복을 받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당장 편하게 살자는 식으로 결정하는 바람에 신앙의 올무가 된 것입니다.

 

이것은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처음부터 교회가 무엇을 하는 곳이며 나아가야 할 방향이 어떤 것인지 분명하게 밝히고 성경대로 해나가면 교인들이 많이 모이기보다는 오히려 떠나는 사람이 생길 수도 있습니다. 반면 사람들의 기대를 충족시키기 위하여 복음의 메시지를 감추고 인간적인 방법으로 교회를 부흥시키면 그 사람들이 나중에는 올무가 되어서 진짜 복음을 막아버리는 경우가 생깁니다.

 

물론 처음부터 분명한 성경적인 원리를 가지고 시작하면 처음에는 싫어하는 사람들도 많고 떠나는 사람들도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남은 사람들을 통해 크게 역사하실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하나님의 백성은 처음에 고생하는 것이 낫습니다. 시작은 더디더라도 일단 우리의 사업이나 주님의 일이 바른 궤도에 오른 후에는 가속도가 붙어서 더 잘 달릴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당장 좋은 것을 차지하는 것보다는 하나님과 바른 관계에 있는 것입니다. 내가 지금 아무것도 가지고 있는 것이 없다 하더라도 하나님의 말씀대로 걸어간다면 하나님은 가장 좋은 것을 우리에게 주실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백성은 적당하게 안주해서는 안 됩니다.

 

본문 앞 12장에는 모세와 여호수아가 싸워 이긴 왕들의 이름이 나옵니다. 모세가 물리친 왕은 헤스본 왕 시혼과 바산 왕 옥으로 요단 동편의 땅이었습니다. 그리고 여호수아가 물리친 왕은 여리고 왕에서부터 시작해서 무려 서른한 명이었습니다.

 

그리고 본문 앞부분에는 정복하지 못한 지역들이 나오고, 뒷부분은 요단 동편의 땅을 분배하는 내용이 나옵니다. 이어 14장부터 19장까지는 요단 서편의 땅 분배 이야기가 나오는데, 그들이 차지해야 할 지명들을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궁금한 점은 하나님이 왜 이스라엘 백성이 차지해야 하는 도시나 동네의 이름을 자세하게 설명하셨는가 하는 것입니다. 여기에 나오는 땅 이름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땅 문서와 같은 효과가 있을까요? 물론 아직 아닙니다. 여기에 이름이 적혀 있다고 해서 당장 이스라엘 자손에게 권리가 생기는 것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이 땅들은 이스라엘 백성이 직접 싸워서 빼앗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는 여기에 나오는 많은 도시들이 우리들에게는 무슨 의미가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것에 대하여 일차적으로는 "모른다"라고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여호수아서 주석들이 이 부분에 대하여 설명하는 데 어려움을 느낍니다. 왜냐하면 오늘날 이 지명을 확인할 수도 없고 또 설사 확인된다 하더라도 우리와는 아무 상관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어떤 해설서들은 지명의 뜻만 풀이하는 정도로 그치고 있습니다.

 

아마도 이 성경을 기록할 당시에는 여기에 이름이 적힌 성들은 반드시 빼앗아야 한다는 뜻으로 기록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시간이 흘러도 이스라엘 백성은 이 성들의 이름을 지우지 않고 그대로 두었습니다. 왜냐하면 이것을 하나님이 주신 영구적인 복의 목록으로 생각한 것입니다. 그들이 이미 차지한 성들은 하나님께 감사드리기 위하여 필요한 것이고, 아직 차지하지 못한 성들은 앞으로 그들이 노력해서 반드시 찾아야 할 복으로 영구 보존한 것으로 생각됩니다.

 

우리도 기도 제목을 적은 카드를 만들어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복의 목록을 기록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나에게 얼마나 많은 것들을 주셨는지 깨닫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앞으로 하나님이 이루어 주시기를 원하는 목록도 적어보면 머지않아서 그 모든 목록들이 응답되어 있는 것을 확인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성경을 읽다보면 종종 읽기 어려운 부분을 발견하게 됩니다. 예를 들면 족보를 담고 있는 내용입니다. 1장이나 역대상 1-8장까지 누가 누구를 낳고 하는 등의 내용은 집중해서 읽기가 참 어려운 내용들입니다.

 

가나안 정복 이야기는 족보이야기는 아니지만 성경을 읽는 사람들이 지루하게 느낄 수 있는 내용입니다. 여호수아 12-21장까지는 정복한 왕이나 각 지파 별로 땅을 분배한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계속해서 어떤 지파에게는 무슨 땅을 주었고 하는 내용이 21장까지 나옵니다. 걱정되지 않으세요? 앞으로 도대체 그 긴 내용을 언제, 어떤 식으로 다 설교를 들어야 할 지 말입니다.

 

그런데 성경에 있는 이런 내용들은 오늘날 현대인들에게는 매우 지루하지만 당대의 사람들에게는 아주 중요한 내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성경을 바르게 이해하려면 당시 사람들의 상황으로 돌아가서 성경을 읽어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의 노예로 지냈습니다. 아주 긴 시간을 다른 나라에서 노예로 갖은 학대를 당하며 살았습니다. 그러다가 지도자 모세를 통해 애굽을 탈출하게 되었습니다. 처음 그들이 애굽을 탈출할 때는 꿈에 부풀어 있었을 것입니다.

이제 이 바다를 넘으면 곧 약속의 땅에 들어간다는 꿈을 꾸면서 기대에 가득 차 있었습니다. 그도 그럴 수 있는 것이, 사실 홍해를 넘어서 약속의 땅 가나안까지 길어야 한 달 정도면 갈 수 있는 거리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애굽을 탈출한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이 아니라 황량한 광야였습니다. 물도 없고 먹을 것도 없는 죽음의 땅 광야에서 그들은 40년간을 방황했습니다. 그러던 사이에 1세대들은 대부분이 죽고 말았습니다.

황량한 사막에서 아마도 광야에서 태어난 2세대들은 자기의 부모들로부터 수도 없이 많이 가나안 땅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을 것입니다. 그렇게 오랜 세월을 방황하다가 하나님의 은혜로 정말 기적적으로 가나안 땅에 들어갔습니다.

 

그런 어려운 과정을 거쳐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나안 땅을 대부분 차지하게 된 것입니다. 그런 배경 속에서 오늘 본문에 있는 땅 분배기록이 등장한 것입니다. 그러니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 약속의 땅이 얼마나 소중하겠습니까? 그러므로 우리에게는 본문 이후에 담겨 있는 땅 분배에 관한 기록이 지루한 지명의 나열에 불과할지 모르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눈물겹도록 소중한 기록인 것입니다.

 

그런데 만약 이 땅에 대한 기록이 단순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땅을 향한 절박한 소원 때문이라면, 이것은 단순히 이스라엘의 역사의 기록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여호수아서는 하나님께서 약속의 땅인 가나안 땅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선물로 주신다는 말씀이 이루어져 가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 땅에 대한 약속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먼저 하신 것입니다. 그 약속이 여호수아 때에 와서 성취되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호수아서는 땅에 대한 약속과 그 약속을 신실하게 이루어 가시는 하나님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을 주요내용으로 담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있어서 땅은 하나님의 약속의 성취입니다. 그러므로 수 13-21장에서 각 지파의 기업을 상세하게 기록하는 것은 단순히 부동산의 소유를 알리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이 정확하게 성취된 것을 보여주기 위한 것입니다. 동시에 앞으로 차지할 땅의 목록도 제시하여 앞으로도 계속하여 성취될 하나님의 약속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전광판에 주가 지수가 계속 변수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그러나 나하고 상관이 없는 사람이 있고 눈만 뜨면 그기에 시선을 집중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왜 그래요? 거기에 투자를 했기 때문입니다. 성도는 하나님의 말씀에 생명을 투자한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에 영혼의 닻을 내리고 살아가는 성도라면 하나님 말씀 어느 부분이라도 관심이 있고 시선이 집중 될 줄 믿습니다.

 

사실 여호수아 12장부터 19장에 이르는 이 많은 부분들은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복인 동시에 기도 제목입니다. 읽어 보면 그 내용이 얼마나 많은지 놀라게 됩니다. 하나님은 이처럼 섬세하며 풍성한 분이십니다.

 

셋째, 분배의 원리

 

레위 지파에게는 기업을 주지 아니했다는 말씀이 나옵니다. 14절과 33절 말씀입니다. "오직 레위 지파에게는 여호수아가 기업으로 준 것이 없었으니 이는 그에게 말씀하신 것과 같이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 드리는 화제물이 그들의 기업이 되었음이더라." "33 오직 레위 지파에게는 모세가 기업을 주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그들에게 말씀하신 것과 같이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들의 기업이 되심이었더라."

 

왜 레위 지파에게만 기업을 주지 않았습니까? 이는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 기업이 되시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을 갖게 됩니다. 그렇다면 과연 레위 지파에게만 여호와께서 그들의 기업이 되어주시는 것입니까? 다른 모든 지파에게는 땅이 기업이고 레위 지파만 여호와께서 기업입니까?

 

저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무슨 뜻입니까? 하나님께서는 과연 어떤 뜻으로 레위 지파에게만 땅을 주시지 않고 하나님이 그들의 기업이라고 말씀하셨습니까? 우리는 한번 그 때 실제 상황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레위 지파는 기업이 없으므로 백성의 십일조 가운데 일부가 그들의 기업입니다. 백성들이 드린 화제물이 그들의 기업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다른 모든 지파들은 그들의 수입 가운데 일정부분을 떼어서 레위 지파에게 주어야 합니다.

 

그럴 때 레위 지파의 백성들이 무슨 생각을 했겠습니까? 우리에게는 하나님만이 우리의 기업이라고 생각하지 않았겠습니까? 또한 다른 지파의 백성들을 생각해 보십시오. 그들이 자신들의 수입 가운데 일부를 레위인들에게 주면서 무슨 생각을 했겠습니까? 그들에게는 하나님이 기업이라는 사실을 되새기지 않았겠습니까?

레위 지파에게 기업을 주지 않은 것은 단순히 레위 지파만을 위한 것은 아닙니다. 결국 레위 지파는 온 백성에게 샘플로 보여 주신 것입니다. 땅이 아니라 하나님이 기업이라는 것을 온 백성에게 가르치기 위해서 레위 지파에게는 기업을 주시지 않은 것입니다. 그리고 그 레위 지파는 물론이고 다른 모든 지파의 백성들도 그들을 바라보면서 여호와 하나님이 참된 기업이심을 기억하게 만들려는 것입니다.

 

우리는 늘 눈에 보이는 것에 우선적인 가치를 두고 삽니다. 말씀을 통해서 여호와가 진정한 기업이라는 것은 알고 있지만, 우리 눈에 보이는 기업은 여호와가 아니고 땅입니다. 그래서 늘 하나님을 잊고 삽니다. 보이지 않는 기업은 젖혀 두고 눈에 보이는 기업만을 추구하면서 삽니다.

우리의 기업이 무엇입니까? 땅입니까? 아니면 여호와 하나님이십니까? 교회가 진정으로 추구할 것이 과연 무엇입니까? 땅입니까? 아니면 하나님이십니까? 하나님을 바라보고 다른 모든 것들을 내려놓을 때 우리는 여호와만이 나의 기업이시라고 그렇게 고백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하나님의 약속이 성취되어 가는 과정에 살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미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임했지만, 아직 완전히 성취된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그 둘의 중간에 끼어 살고 있는 존재들입니다. 우리는 이미 구원을 얻었고 사망에 이르지 않는다는 말씀에 감격하지만, 때로 우리의 현실을 보며 절망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주시는 약속이 감격스럽지만 아직도 여전히 많은 문제를 안고 살고 있는 자신을 볼 때 절망적인 생각이 드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런 소망과 절망이 교차하는 상황에서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하나님의 약속은 이 땅의 분배와 같이 신실하게 이뤄진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우리는 과거의 승리를 통해서 신실하신 하나님의 약속이 오늘도 이루어질 것을 믿는 믿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본문 뒤 15-33절에서는 르우벤과 갓과 므낫세 반 지파의 기업을 상세히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중에서 이스라엘 백성이 과거에 승리한 것을 반복해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21절에 발람을 죽인 일은 물론이고 헤스본 왕 시혼과 그리고 31절에 옥에 대한 이스라엘의 승리가 거듭 언급되고 있습니다. 왜 약속의 땅을 열거하면서 이런 과거의 승리들을 다시 반복하고 있을까요? 이것은 과거의 승리를 통해 현재 이스라엘 백성들의 믿음을 굳게 세우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은 과거에만 역사하신 분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조상들의 삶에서만 역사하신 분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과거에 이스라엘의 조상들에게 약속을 주시고 그것을 성취하신 것처럼 지금 이 약속도 반드시 성취한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아직 하나님의 나라가 완전히 이루어지지 않은 시점에서 살고 있는 우리가 반드시 기억해야 할 사실입니다.

 

우리는 이 땅에서 살면서 많은 유혹과 도전을 직면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과거에 내 삶에 역사하신 하나님을 바라보고 그 분이 오늘도 내게 주신 약속을 이루시는 분임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약속을 반드시 이루시는 분임을 확인하는 것입니다.

 

아직도 우리 앞에는 남은 땅이 많습니다. 여전히 정복해야 할 땅이 많이 있습니다. 그 땅은 아직 우리의 땅이 아닙니다. 대적들이 여전히 살고 있는 땅입니다. 그런 상황이기 때문에 우리는 더욱 하나님의 약속과 그 약속을 이루시는 신실하신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가 오늘 이 땅에서 여전히 남아있는 땅, 여전히 복음을 알지 못하고 여전히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그들에게 가야하는 이유이고, 그들에게 다가갈 때 확신과 기쁨 가운데 갈 수 있는 이유인 것입니다.

 

나이 많아 늙은 여호수아에게는 아직도 많이 남아 있는 땅이 큰 부담이요, 걱정거리였습니다. 바로 그때, 하나님께서 6b절에 여호수아에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그들을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쫓아내리니 너는 내가 명령한 대로 그 땅을 이스라엘에게 분배하여 기업이 되게 하되." 이 말씀은 아직 정복하지 못한 남은 땅의 사람들도 다 쫓아내고 그 땅들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에게 분배하라고 명하신 땅의 상당 부분은 아직 이스라엘이 정복하지 못한 땅이었습니다. 아직 정복하지도 않은 땅까지 기업으로 미리 분배하게 했다는 것은 곧 그 땅마저 주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하지 말라는 믿음의 요구였던 것입니다. 여호수아는 그 약속을 믿고, 아직 정복되지 않은 땅까지 모두 분배했습니다. 그 땅을 받는 지파들도 그 약속을 믿고 나가야 했습니다.

 

'어떻게 하면 남은 땅을 정복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에만 집중되어 지쳐있는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미 주신 하나님의 축복을 누릴 것을 권고하시는 말씀은 우리들에게 참으로 많은 의미를 부여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아직 이루지 못한 일들이 있지마는 지금 현재에 하나님의 약속된 복을 누릴 수 있어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지금 가지고 있는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보다 앞으로의 일에 관심이 많은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어떻게 하면 더 많은 축복을 받을 수 있을까 하는 관심보다 우선적으로 우리의 손 안에 있는 하나님의 복을 누리시기를 바랍니다.

구원 받은 성도로서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 굳게 믿고 오늘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복된 삶을 누리며 사는 우리들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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