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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다 지파의 땅[수 15장 1-19]

조회 수 970 추천 수 0 2015.07.24 19:20:28

유다 지파의 땅[151-19]

 

1 또 유다 자손의 지파가 그들의 가족대로 제비 뽑은 땅의 남쪽으로는 에돔 경계에 이르고 또 남쪽 끝은 신 광야까지라. 2 또 그들의 남쪽 경계는 염해의 끝 곧 남향한 해만에서부터 3 아그랍빔 비탈 남쪽으로 지나 신에 이르고 가데스 바네아 남쪽으로 올라가서 헤스론을 지나며 아달로 올라가서 돌이켜 갈가에 이르고 4 거기서 아스몬에 이르러 애굽 시내로 나아가 바다에 이르러 경계의 끝이 되나니 이것이 너희 남쪽 경계가 되리라. 5 그 동쪽 경계는 염해이니 요단 끝까지요 그 북쪽 경계는 요단 끝에 있는 해만에서부터 6 벧 호글라로 올라가서 벧 아라바 북쪽을 지나 르우벤 자손 보한의 돌에 이르고 7 또 아골 골짜기에서부터 드빌을 지나 북쪽으로 올라가서 그 강 남쪽에 있는 아둠밈 비탈 맞은편 길갈을 향하고 나아가 엔 세메스 물들을 지나 엔로겔에 이르며 8 또 힌놈의 아들의 골짜기로 올라가서 여부스 곧 예루살렘 남쪽 어깨에 이르며 또 힌놈의 골짜기 앞 서쪽에 있는 산 꼭대기로 올라가나니 이곳은 르바임 골짜기 북쪽 끝이며 9 또 이 산 꼭대기에서부터 넵도아 샘물까지 이르러 에브론 산 성읍들로 나아가고 또 바알라 곧 기럇 여아림으로 접어들며 10 또 바알라에서부터 서쪽으로 돌이켜 세일 산에 이르러 여아림 산 곧 그살론 곁 북쪽에 이르고 또 벧 세메스로 내려가서 딤나를 지나고 11 또 에그론 비탈 북쪽으로 나아가 식그론으로 접어들어 바알라 산을 지나고 얍느엘에 이르나니 그 끝은 바다며 12 서쪽 경계는 대해와 그 해안이니 유다 자손이 그들의 가족대로 받은 사방 경계가 이러하니라. 13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명령하신 대로 여호수아가 기럇 아르바 곧 헤브론을 유다 자손 중에서 분깃으로 여분네의 아들 갈렙에게 주었으니 아르바는 아낙의 아버지였더라. 14 갈렙이 거기서 아낙의 소생 그 세 아들 곧 세새와 아히만과 달매를 쫓아내었고 15 거기서 올라가서 드빌 주민을 쳤는데 드빌의 본 이름은 기럇 세벨이라. 16 갈렙이 말하기를 기럇 세벨을 쳐서 그것을 점령하는 자에게는 내가 내 딸 악사를 아내로 주리라 하였더니 17 갈렙의 아우 그나스의 아들인 옷니엘이 그것을 점령함으로 갈렙이 자기 딸 악사를 그에게 아내로 주었더라. 18 악사가 출가할 때에 그에게 청하여 자기 아버지에게 밭을 구하자 하고 나귀에서 내리매 갈렙이 그에게 묻되 네가 무엇을 원하느냐 하니 19 이르되 내게 복을 주소서 아버지께서 나를 네겝 땅으로 보내시오니 샘물도 내게 주소서 하매 갈렙이 윗샘과 아랫샘을 그에게 주었더라.

 

영국에서 어느 철도 역무원이 냉동차 안에 갇혀 사망한 일이 있었다고 합니다. 냉동차 안에서 일하던 그 사람은 뒤늦게 자신이 그 속에 갇힌 사실을 알고 문을 두들기고 소리를 지르며 몸부림을 쳐보았지만 밖에서 잠근 문은 열리지를 않았습니다. 점점 자신의 몸이 얼어 들어가는 느낌이 들면서 추위와 싸우던 그는 바닥에 이런 글을 남기고 죽어갔습니다. "너무도 추워서 몸이 얼어붙는 것 같다. 차라리 그냥 잠이 들어 버렸으면 좋겠다. 이것이 나의 마지막이 될 것이다."

그런데 그 다음 날 아침 늦게야 다른 직원들에 의해 발견된 그의 시체는 동사한 것이 아니라 심장마비라는 판명이 났습니다. 왜냐하면 그날 밤에 그 냉동차는 가동이 되지 않았고, 냉동차 안의 온도계는 사람이 얼어 죽을 만큼 차갑지를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의 죽음은 냉동차 안에 갇혀 있다는 절망과 이제 얼어 죽을 것이라는 공포심이 심장마비를 일으킨 것입니다.

 

오늘 날도 이런 일이 우리 주변에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만드시고 창 128절에 복을 주시면서 "이 땅에서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니 하나님께서 사람을 만드실 때 누구든지 내 안에 성공인자를 다 입력시켜 놓으신 것입니다. 문제는 주위 환경 때문에 내 마음이 얼어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아무리 하나님께서 복을 주셔도 마음이 열려지지 않고 얼어있는 사람은 여름날에도 얼어 죽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의 주인공 갈렙처럼 행동하는 신앙인이 되셔서 하나님의 축복을 누리는 우리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본문 말씀은 가나안 땅을 정복한 이후에 가나안 서편의 본토를 분배하는 과정을 기록하고 있는 부분 중에서 가나안 땅을 첫 번째로 분배받은 유다지파의 기업에 대해서 기록하고 있습니다. 유다 지파가 받은 기업은 한 마디로 말해서 이스라엘 역사의 가장 중심적인 무대가 되었으며, 120개의 성읍들은 많은 역사적인 사건의 무대가 되었습니다.

 

첫째, 유다지파가 첫 번째로 기업을 분배받은 이유가 무엇일까요?

 

유다 지파가 첫 번째로 기업을 분배 받았다는 것은 유다 지파가 장자의 축복을 받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유다 지파가 장자의 축복을 받은 이유는

 

1) 하나님의 섭리와 은혜 때문입니다.

유다는 본래 장자가 아니었습니다. 야곱은 네 명의 부인에게서 열두 아들을 낳았습니다. 그 장자는 르우벤이요, 둘째는 시므온이며, 셋째는 레위요, 넷째가 유다입니다. 유다는 장남도 아니고 차남도 아니고 사남이었습니다. 그런데 유다가 장자의 유업을 받게 되었습니다. 이 말은 장자인 르우벤이 장자의 권리를 빼앗겼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야곱이 임종을 앞두고 유언과 함께 자식들을 축복하는 이야기가 창세기 49장에 나옵니다. 3, 4절에 보면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3 르우벤아, 너는 내 장자요 내 능력이요 내 기력의 시작이라. 위풍이 월등하고 권능이 탁월하다마는 4 물의 끓음 같았은즉 너는 탁월하지 못하리니 네가 아버지의 침상에 올라 더럽혔음이로다. 그가 내 침상에 올랐었도다."

르우벤은 장자로서 많은 특권과 능력을 가지고 태어났습니다. 그러나 서모와 동침한 죄로 인하여 그 모든 것을 빼앗겼습니다. 당시 족장 아버지의 권위는 하나님의 권위였습니다. 권위에 대한 도전은 바로 탈락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장자가 탈락하면 차자가 배턴을 받아야 하는데 유다의 바로 위의 두 형제 시므온과 레위는 창 34장에 누이동생 디나의 사건으로 세겜 땅 남자들을 칼로 살육하는 사건을 저지르게 됩니다. 그래서 창 495절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시므온과 레위는 형제요, 그들의 칼은 폭력의 도구로다."

 

그래서 장자권이 넷째 유다에게로 넘어온 것입니다. 이것이 전적으로 하나님의 섭리와 은혜임을 말해 줍니다.

 

2) 신앙의 조상을 잘 만난 것입니다.

 

498절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유다야 너는 네 형제의 찬송이 될지라 네 손이 네 원수의 목을 잡을 것이요 네 아버지의 아들들이 네 앞에 절하리로다." 10절에는 "규가 유다를 떠나지 아니하며 통치자의 지팡이가 그 발 사이에서 떠나지 아니하기를 실로가 오시기까지 이르리니 그에게 모든 백성이 복종하리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야곱을 통해 유다에게 장자의 복을 약속하셨기 때문에 그 자손들이 장자적인 복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유다가 장자적인 축복을 누리게 되는 데는 1) 하나님의 섭리와 은혜지만 2) 장자의 신앙을 가졌다는 데 있습니다.

 

예를 들어봅시다. 가나안 땅에 양식이 떨어져 야곱의 아들들이 애굽에 양식 사러 갑니다. 그곳에서 아버지를 속이고 노예로 팔아버린 동생 요셉이 국무총리가 되어 형들을 스파이로 몰아 시므온을 볼모로 잡습니다. 그러면서 고향에 있는 동생 베냐민을 데리고 오면 누명을 벗게 해 주겠다고 합니다.

 

그때 아버지 야곱은 요셉을 잃은 후 베냐민을 특별히 아꼈기 때문에 그를 데리고 가는 것을 완강히 거절합니다. 그때 창 439절에 유다가 아버지 야곱을 설득하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그를 위하여 담보가 되오리니 아버지께서 내 손에서 그를 찾으소서 내가 만일 그를 아버지께 데려다가 아버지 앞에 두지 아니하면 내가 영원히 죄를 지리이다." 자기 몸을 담보로 책임을 지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버지의 허락을 받아냅니다.

 

나중에 은잔 사건으로 베냐민이 애굽에 붙잡혔을 때도 창 4430절 이하에 보면 유다는 이렇게 말합니다. "30 아버지의 생명과 아이의 생명이 서로 하나로 묶여 있거늘 이제 내가 주의 종 우리 아버지에게 돌아갈 때에 아이가 우리와 함께 가지 아니하면 31 아버지가 아이의 없음을 보고 죽으리니 이같이 되면 종들이 주의 종 우리 아버지가 흰 머리로 슬퍼하며 스올로 내려가게 함이니이다. 32 주의 종이 내 아버지에게 아이를 담보하기를 내가 이를 아버지께로 데리고 돌아오지 아니하면 영영히 아버지께 죄짐을 지리이다 하였사오니 33 이제 주의 종으로 그 아이를 대신하여 머물러 있어 내 주의 종이 되게 하시고 그 아이는 그의 형제들과 함께 올려 보내소서. 34 그 아이가 나와 함께 가지 아니하면 내가 어찌 내 아버지에게로 올라갈 수 있으리이까? 두렵건대 재해가 내 아버지에게 미침을 보리이다." 베냐민 대신 자기가 책임을 지고 종이 되어 남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책임감입니다. 혈통이 장자라고 장자의 축복을 누리는 것이 아니라, 장자의 복을 받을 신앙을 가질 때 장자의 복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11장에 나오는 믿음의 사람들을 우리는 믿음의 선진들이라고 합니다. 선진이 무엇입니까? 앞서 간다는 것입니다. 유다 지파에 속했다고 다 장자의 복을 누리는 것이 아니라, 장자의 신앙을 가지고 앞서 나아가는 갈렙 같은 신앙인이 있기 때문에 그 자식이 그 집안이 복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둘째, 유다 지파가 차지한 기업들은 우리에게 무엇을 말해줍니까?

 

본문 1-12절은 먼저 유다 지파가 차지한 기업들을 열거하고 있습니다. 1절 이하에서 유다 지파가 제비뽑아 차지한 기업의 경계는 요약하면 남편 경계는 염해의 극단 곧 해만에서부터요, 동편 경계는 염해니 요단 끝까지요, 북편은 예루살렘 남편 힌놈의 골짜기 앞 서편 산꼭대기 르바임 골짜기며, 서편은 대해와 그 해변이라고 합니다. 유다 지파가 받은 기업은 요단 서편의 중심 지역으로서 중앙 고원지대와 그에 연속한 골짜기들, 곳곳의 구릉 등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리고 유다 지파가 받은 기업의 중심지는 벧엘에서 브엘세바에 이르는 중앙 고원 지대로서 고원 위에 예루살렘, 베들레헴, 헤브론이 위치하고 있습니다. 고원지대는 백성들의 삶의 중심지로서 지중해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몰고 오는 비로 말미암아 농사와 목축이 가능하여, 이 지역에서는 이른바 지중해식 농업이 발달, 포도와 올리브 등을 생산할 수 있었습니다.

 

한 마디로 유다 지파가 분배받은 지역은 이스라엘 역사의 가장 중심적인 무대가 되었으며, 120개의 성읍들은 많은 역사적인 사건의 무대가 되었던 것입니다.

이것은 창 4911절의 구체적인 성취인 것입니다. "그의 나귀를 포도나무에 매며 그의 암나귀 새끼를 아름다운 포도나무에 맬 것이며 또 그 옷을 포도주에 빨며 그의 복장을 포도즙에 빨리로다." 포도밭이 얼마나 번성했으며 나귀를 포도나무에 매며 포도수확이 얼마나 풍성했으며 옷을 포도주에 빨겠습니까?

 

제 제자 하나가 충남 금산에서 군의관으로 있었는데, 제게 이런 메일을 보낸 적이 있습니다. 자기는 인삼 물로 목욕하고, 인삼 물로 빨래하고 산다고요. 이 말이 무슨 말인지 이해가 됩니까?

 

이렇게 하나님의 축복은 구체적입니다. 이 말씀은 추상적인 이야기가 아니라, 하나님의 구체적인 축복의 증거들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선물은 뜬구름 같은 허상이 아니라 만질 수 있고, 볼 수 있습니다. 현실적으로 필요한 모든 것에 구체적으로 응답하시는 하나님이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13-15절에 유다 지파의 기업을 기록하면서 갈렙의 헤브론 사건을 다시 기록한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갈렙은 장자적인 축복을 누리는 장자적인 신앙인의 모델로서 말로만 믿음을 보이는 사람이 아니라 행동하는 신앙이었다는 것을 다시 주지하고 있습니다.

 

갈렙은 행동하는 신앙인이었습니다. 결국 그는 아낙 자손을 추방하고 헤브론을 차지하였습니다. 하나님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갈렙에 대해서 언급하고 그를 영예롭게 하시기를 기뻐하시는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온 마음으로 하나님을 경외하고 온 몸으로 하나님의 뜻에 순종했기 때문입니다.

 

여호수아가 헤브론 산지를 그에게 기업으로 허락해 준 것을 반복하여 기록을 하면서 그에게 이것이 주어진 경우를 이야기 하고 있는데, 13절에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명하신 대로" 했다고 합니다. 이것은 여호수아가 갈렙에게 어떤 특혜를 베푼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명령이요 하나님의 뜻이었음을 말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뜻이라 해서 덩굴채로 그냥 떨어진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이룩하기 위하여 갈렙은 온전히 좇았다, 헌신했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특히 갈렙이 차지한 땅은 헤브론인데 13절에 보면 본래는 기럇 아르바인데 아르바는 아낙의 아버지였다고 하며 14절에 이렇게 말합니다. "갈렙이 거기서 아낙의 소생 그 세 아들 곧 세새와 아히만과 달매를 쫓아내었고." 여기 "쫓아내다"란 단어는 "뿌리뽑다"라는 뜻으로 다시는 세력을 얻지 못하도록 완전히 진멸시켰다는 것입니다. 과연 갈렙은 하나님 여호와를 온전히 좇아서 거인인 아낙의 소생 세새와 아히만과 달매, 세 아들을 물리쳤습니다. 정말 힘든 사람들이고 도무지 내 힘으로 물리칠 수 없는 사람들입니다. 내가 할 수 없지만 하나님 여호와를 온전히 좇을 때 그들을 다 물리칠 수 있었습니다.

 

이어 갈렙은 헤브론 정복으로 끝나지 아니하고 15절에 보면 "거기서 올라가서 드빌 주민을 쳤는데 드빌의 본 이름은 기럇 세벨이라"고 말합니다. 왜 기럇 세벨을 친 사건을 일을 특별히 언급하고 있을까요?

 

드빌은 '서기관의 성읍'이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기럇 세벨은 '책의 도시'라는 뜻입니다. 49절에는 '기럇 산나'라고도 부르는데, 어떤 변역에서는 이것을 '학문의 도시'로 부르고 있습니다. 성경학자들은 이 도시에 가나안 인들의 대학이 있어서, 마치 그리스의 아테네처럼, 젊은이들을 교육시켰을 것이라고 추측하기도 합니다. 이것은 갈렙이 그 땅만 정복한 것이 아니라 문화적인 정복을 의미한다고 합니다.

문화선교의 중요성은 바울의 선교에서 잘 나타나고 있습니다. 오늘날 교회가 문화선교에 눈이 안 뜨여지면 우리의 자녀들을 세상에 다 빼앗기고 말 것입니다.

 

드빌 성읍은 위치도 높아서 공격하기 어려운 난공불락의 성입니다. 애굽의 고속도로가 통과하는 곳이고 산업이 번창하는 곳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약속하시면 그냥 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나사로를 살려내기 위해 그 무덤의 돌을 굴려내는 수고를 해야 합니다. '너를 살려주겠다, 그러나 가서 돌을 굴려내라'고 하십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것이 힘들어서 돌을 못 굴려냅니다.

 

드빌 전투에서 딸 악사를 주겠다고까지 한 것은 그만큼 전투가 어렵기 때문입니다. 사실 갈렙에게 허락한 곳은 헤브론입니다. 드빌까지 안 취해도 됩니다. 그러나 드빌은 유다 지파에게 할당된 곳인데, 자기 자녀들이 유다 지파에 속했기 때문에 영적 후손으로 드빌까지 취하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갈렙은 또 다른 힘든 사역을 위해서 자기 식구들을 또 희생시킵니다. 드빌을 쳐서 취하는 자에게 자신의 딸을 주겠다고 합니다. 갈렙은 오직 원하는 것이 하나님 나라입니다.

 

옷니엘은 갈렙의 아우 그나스의 아들이라고 했습니다(17). 그러면 아버지 그나스는 살았을까요, 죽었을까요? 광야 1세대는 불순종해서 다 죽었습니다. 여호수아와 갈렙만 살아남았다고 했습니다. 그러니 죽었다고 볼 수 있는데 그 아들 옷니엘은 아버지의 약점과, 아버지의 불신앙과 불순종을 극복하였습니다. 그래서 옷니엘이 드빌을 쳐서 취했습니다. 믿음의 증거를 가지게 됐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었다면 이렇게 쳐서 취한 드빌이 있어야 합니다. 난공불락의 성 드빌을 쳐서 취한 증거가 있어야 합니다. 난공불락의 성이 누구입니까? 또 무엇입니까? 우리 각자에게 드빌이 있습니다. 믿음의 증거를 가지시기 바랍니다.

 

셋째, 갈렙의 드빌 정복의 교훈

 

성장을 가로막는 가장 큰 걸림돌은 만족입니다. 갈렙은 헤브론을 정복하는 것으로 만족하지 아니하고 그는 남서쪽 산지 드빌을 정복하는 자에게 자신의 딸을 아내로 주겠다는 상을 내걸었습니다. 이것은 당시 고대문화에서 이는 흔히 볼 수 있는 풍습이었습니다. 사울 왕이 골리앗을 물리친 다윗에게 그의 딸 미갈을 준 것과 같은 풍습인 것입니다. 그러나 사울 왕은 자신의 야망을 위해서 미갈을 주었지마는 갈렙은 자신의 야망이 아니라 이스라엘을 위해서 악사를 내놓은 것입니다.

 

그때 갈렙의 동생 그나스의 아들 옷니엘이 드빌을 정복합니다. 갈렙은 약속대로 옷니엘에게 자신의 딸을 아내로 주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나라는 누군가가 희생하고 누군가가 그 값을 치를 각오를 할 때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자식을 내어 놓는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갈렙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나가는 데는 자식을 내어 놓은 것입니다.

 

그런데 갈렙이 사위를 구하는 조건을 보십시오. 16절입니다. "갈렙이 말하기를 기럇 세벨을 쳐서 그것을 점령하는 자에게는 내가 내 딸 악사를 아내로 주리라 하였더니." 갈렙은 사위의 조건을 "쳐서 그것을 점령하는 자"라고 했습니다.

 

결혼은 영적 전쟁을 하기 위한 가장 중요한 선택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쳐서 취하는 자보다는 모든 것을 갖춘 자를 취하고 싶어합니다.

 

미국의 29대 대통령 워렌 하딩은 1921년에 취임해서 192326개월을 임기로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런데 하딩은 미국에서 잘생긴 것 하나로 승부한 정치인으로 유명합니다. 신문사 편집인, 상원의원, 대통령까지 당선됐는데 정치학자들이 말하는 최악의 대통령에 1위로 꼽히는 사람입니다. 상원의원 시절에도 회의나 표결에 제대로 참석한 적이 없고, , 골프, 포커 게임에 절어 살았고, 여자 문제도 무진장 복잡했고, 대통령이 돼서도 놀러다니느라고 정신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하딩이 정치 무대에 올라서면 너무나 능력있는 것처럼 보이고, 목소리 또한 죽이는지라 남녀노소를 무론하고 다들 깜빡 넘어갔다는 것입니다.

'키가 크고, 구리빛 피부를 가진 이 잘생긴 남자는 분명히 능력이 있을 거야' 하고 다들 착각을 했다는 겁니다. 오죽이나 착각을 했으면 미국 대통령까지 됐겠습니까? 그래서 이렇게 외모나 편견에 사로잡혀 착각하는 현상을 '워렌 하딩의 실수'라고 이름까지 붙였답니다. 속지 말자는 겁니다.

 

사위를 얻을 때 이왕이면 다홍치마라고 잘 생긴 것 좋겠죠? 그러나 갈렙은 과연 믿음의 용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결혼할 때, 이사할 때 믿음이 다 나타난다고 하는데 갈렙은 믿음의 증거가 있는 사위를 원했습니다.

 

참으로 갈렙은 대단한 사람입니다. 그래서 여호수아의 자녀가 아니라 갈렙의 사위가 초대 사사가 되는 영광을 얻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육적으로도 증거를 보여주십니다. 하늘나라에 가야만 꼭 아는 것이 아닙니다.

 

갈렙이 또 기가 막힌 것은, 갈렙에게 아들이 있었는지 없었는지 분명하지 않지만 이 사람은 아들 타령도 하지 않았습니다. 보통 성경에 나오는 믿음의 위인들, 아브라함 같은 사람도 아들, 아들 하는데 갈렙은 아들 타령 한 마디도 안 했습니다.

한국의 크리스천들에게 믿음의 인물 누구를 좋아하느냐고 물으면 갈렙을 좋아하는 사람은 드물다고 합니다. 갈렙 같은 사람은 그렇게 살라고 할까봐 싫은 겁니다.

 

그런데 갈렙의 딸 악사는 "네가 무엇을 원하느냐?"라는 아버지의 물음에 19절에 "내게 복을 주소서"라고 말합니다. 지금 남방 삭막한 땅에 가서 새로운 결혼생활을 하려면 그 당시의 최고의 선물은 우물입니다. 우물이 있어야 양을 치고 삶의 터전을 마련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물을 준다고 하는 것은 요즘으로 말하면 부모가 집을 하나 장만해 주거나 혹은 어떤 빌딩을 하나 주거나 그러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이었던 것입니다. 삶의 기반을 마련해 주는 것입니다.

 

악사는 그것을 말하고 싶었는데 꾹 참고 있다가 "네가 무엇을 원하느냐?" 하니 "내게 복을 주옵소서"라고 말합니다. 얼마나 지혜로운 딸입니까? 복을 원한다는 말이 무슨 뜻입니까? 성경에서 복이라고 하는 말과 직접 연관이 되어 있는 분은 오직 하나님 한 분입니다. 복은 하나님만이 주실 수 있습니다. 아버지 갈렙을 보면서 악사는 무엇을 구해야 할지를 어려서부터 알았습니다.

 

아무리 밭이 있어도 물이 없으면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땅입니다. 그 때의 샘물은 가장 중요한 공급원입니다. 보기에는 아무 것도 아닌 것 같은데, 작은 규모였지만 샘을 달라고 합니다. 아버지를 떠나면서 슬퍼하기 보다는 갈렙의 뒤를 이어갈 영적 후손으로서 담대하게 구할 것을 구한 것입니다. 이런 부인을 얻었기 때문에, 이런 지혜와 옷니엘의 용기가 합쳐져서 초대 사사가 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고대 이스라엘에서는 결혼을 하려면 남자는 장인 될 사람에게 돈을 지불해야 했습니다. 결혼 지참금인데, 이를 '모하르'라고 부릅니다. 때로 '모하르'는 꼭 돈으로만 지불되는 것이 아니라 야곱의 경우에서처럼 7년간의 노동으로 대치할 수도 있었습니다. 또는 삼상 1825절에 나오는 다윗과 미갈의 경우에서처럼 블레셋 사람의 양피 일백을 얻어오는 과제의 수행으로 대치될 수도 있었습니다.

 

이것은 옷니엘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옷니엘은 드빌을 쳐서 얻는 자에게 딸 악사를 주겠다는 도전을 받아들여 드빌을 쳐서 정복하고 '모하르' 없이 아내를 얻게 되었습니다. 옷니엘은 악사를 차지하기에 충분한 영웅이었습니다.

그런데 악사 또한 옷니엘 못지않은 지혜로운 여인이었습니다. 악사는 내게 복을 달라고 합니다. 결국 아버지로부터 윗물과 아랫물의 샘물을 얻게 됩니다.

 

갈렙과 옷니엘과 악사의 이야기는 단지 이 부부를 기억하기 위해 기록된 역사는 아닙니다. 이스라엘이 여호와와 맺은 언약의 조건을 충족하기만 한다면 그들이 얻을 수 있는 풍성한 생명이 어떤 것인지를 제시하기 위해 기록한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헌신하고 충성하기만 한다면 얼마든지 하나님께 땅을 요구하여 받을 수 있고, 또 윗물과 아랫물의 샘물도 얻을 수가 있었습니다. 윗물과 아랫물은 높은 곳에 있는 샘물과 낮은 곳에 있는 샘물이란 뜻입니다.

 

이스라엘에게 샘물은 육신의 생명을 지탱하는 물 이상의 의미가 있습니다.

4925절에 야곱이 요셉에게 축복합니다. "네 아버지의 하나님께로 말미암나니 그가 너를 도우실 것이요, 전능자로 말미암나니 그가 네게 복을 주실 것이라. 위로 하늘의 복과 아래로 깊은 샘의 복과 젖먹이는 복과 태의 복이리로다."

악사가 아버지 갈렙으로부터 윗물과 아랫물의 샘을 얻었다는 것은 바로 하늘의 복과 아래로 깊은 샘의 복을 얻었다는 것을 상징합니다.

 

갈렙은 힘든 산지를 정복했습니다. 우리는 이 이야기만 들어도 숨이 막힙니다. 유다 지파가 정복한 120여개의 성읍만 봐도 돌아가십니다. 예를 들어서 내가 결혼하려고 하는데 그 집에 기도 제목이 120개가 있다, 그러면 하겠습니까? 이 회사에 가려는데 어려운 문제가 120가지가 있다, 그러면 가겠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의 뜻이라면, 하나님의 명령이라면 어려울수록 그 가운데 비전을 보는 우리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이 지명들만 보고도 숨이 막히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보고 가슴이 끓어오르는 사람도 있습니다. '저것은 내 밥이다!'하면서 피가 끓어오르는 사람도 있습니다.

아프리카에 가서 신발을 팔라고 하니까 한 사람은 '여기에는 신발을 신는 사람이 아무도 없어요. 신발을 하나도 팔 수 없어요.' 이러는데 다른 한 사람은 '이 사람들은 한 번도 신발을 안 신어봤기 때문에 이제 모두에게 신발을 신길 수 있다. 여기는 황금어장이다' 이랬다는 겁니다. 누구 말이 맞습니까?

 

19절까지 우리는 성경을 읽었는데, 20절부터 62절까지의 모든 성읍이 얼마 지나지 않아서 다 정복이 됐습니다. 모두 부르기도 어려운 이름들입니다. 읽으면서 몇 번씩 틀립니다. 부르기도 어려운 이름들인데 모두 정복이 됐습니다.

유다 지파만 거의 정복했습니다. 다른 지파들을 철병거로 인해서 정복을 못했다고 계속해서 나옵니다. 유다 지파만 거의 다 정복을 했습니다.

 

그런데 유다의 경내에 있는데도 여부스 사람을 쫓아내지 못했다고 말씀합니다. 63절을 봅시다. "예루살렘 주민 여부스 족속을 유다 자손이 쫓아내지 못하였으므로 여부스 족속이 오늘까지 유다 자손과 함께 예루살렘에 거주하니라."

 

신명기 2016, 17절을 보면 "16 오직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기업으로 주시는 이 민족들의 성읍에서는 호흡 있는 자를 하나도 살리지 말지니 17 곧 헷 족속과 아모리 족속과 가나안 족속과 브리스 족속과 히위 족속과 여부스 족속을 네가 진멸하되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명령하신 대로 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유다 지파가 이것 하나쯤이야 하고 여부스를 꼬투리로 남겨뒀습니다. 인생은 누구도 장담할 수가 없습니다. 이 여부스가 남아서 다윗 시대에 얼마나 다윗을 힘들게 했는지 모릅니다. 다른 지파에 비하면 훨씬 낫지만 역시 유다 지파도 온전히 정복하지 못했습니다.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힘들어도 사소하게 보이는 모든 문제를 그냥 두어서는 안됩니다.

 

우리에게 주신 사명을 감당해갈 때 날마다 숨쉬는 순간마다 어려운 일을 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가장 최선의 길로 인도하시며, 좋은 것으로 주실 것을 믿습니다. 그 하나님만 의지하고 믿음으로 우리에게 주어진 행진을 잘 감당해가는 우리들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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