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tegory

  1. Daerew 4
  2. 메시지
  3. 주일예배


계시록 2강

조회 수 159 추천 수 0 2016.05.08 10:09:51

2016년 백향목교회 성경공부

2

 

∙말씀 요한계시록 1:1-20

 

 

요한계시록 1장

∙∙∙∙∙∙∙∙∙∙∙∙∙∙∙∙∙∙∙∙∙∙∙∙∙∙∙∙∙∙∙∙∙∙∙∙∙∙∙∙

1.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란 무슨 뜻입니까(1상)? 계시의 내용은 무엇이며, 그것이 어떻게 요한에게 전달되었나요(1하)?

 

지난주에 공부한 것처럼 '계시'에 해당하는 헬라 원어는 '아포칼쉽시스'이다. 이 말은 '숨은 것이 드러나다', '감취었던 것이 나타나다'는 뜻을 가지고 있는 낱말로서 계시(Revelation)와 묵시(Apocalypse) 두 가지로 번역된다. 즉 '아포칼쉽시스'는 하나님이 인간에게 자신의 뜻을 나타내 보이시는 행위와 그 내용 전반을 광범위하게 가리키는 조직 신학적 용어인 계시와, 하나님의 계시 중에서도 주로 종말에 대한 당신의 섭리를 그것도 소위 묵시 문학적 양식으로 드러내시는 행위 및 그 내용만을 제한적으로 가리키는 성서 신학적 용어인 묵시 두 가지의 뜻을 동시에 갖고 있어서 각 문맥마다 정확히 번역하여야 한다. 또한, 본서는 요한계시록, 또는 요한 묵시록이라고 명명되고 있지만 사실상은 요한의 창작물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시이며, 요한의 계시록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록이다.

 

하나님 - 예수 그리스도 – 그의 천사 – 그 종 요한 – 성도들

 

2. 요한이 본 것은 무엇이며, 그는 그것을 어떻게 했나요(2)?

 

하나님의 말씀 = 예수 그리스도의 증거 = 자기가 본 것

 

3. 누가 복을 받습니까(3상)? 읽는 자, 듣는 자, 지키는 자들은 누구를 말합니까? 왜 이들에게 복이 있나요(3하)? 때가 가깝다는 말은 무슨 뜻입니까?

 

'이 예언의 말씀'은 계시록에 여러 차례 나타나는 표현이다. '읽는 자'는 단수로, '듣는 자들'은 복수로 되어 있어, 3절은 한 사람이 큰 소리로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회중이 그 읽는 말씀을 듣는 유대인의 회당 예배 형태를 반영하고 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듣는 것은 그 자체로도 복된 일이다. 그러나 그것이 실천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말씀은 개인의 심령 가운데서 죽은 말씀이 되고 만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듣고 실행하여야 하며, 그리할 때 하나님의 축복이 함께 하는 것이다.

 

계시록은 하나님께로부터 복을 받을 자의 특징을 일곱 가지로 제시하고 있는데 다음과 같다.

첫째는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와 그 가운데에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다.

둘째는 주님 안에서 죽는 자들이다(14:13).

셋째는 주님의 재림 때에 깨어 있어 자기의 부끄러움을 보이지 않는 자들이다(16:15).

넷째는 어린양의 혼인 잔치에 청함을 입은 자들이다(19:9).

다섯째는 첫째 부활에 참예하는 자들이다(20:6).

여섯째는 본서에 기록된 예언의 말씀을 가감 없이 지키는 자들이다(22:7).

일곱째는 죄로 더럽혀진 두루마기를 빠는 자들이다(22:14).

 

여기서 '때'는 '작정된 시간', 즉 예수님께서 재림하셔서 하나님의 종말론적 예언을 이루시는 때를 가리킨다. 그런데 그때가 가까이 왔다는 것은 오늘날 말세에 살고 있는 자인 우리들에게 영적으로 항상 깨어 있어야 함을 교훈해 준다. 따라서 우리는 '42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어느 날에 너희 주가 임할는지 너희가 알지 못함이니라. 43 너희도 아는 바니 만일 집 주인이 도둑이 어느 시각에 올 줄을 알았더라면 깨어 있어 그 집을 뚫지 못하게 하였으리라. 44 이러므로 너희도 준비하고 있으라 생각하지 않은 때에 인자가 오리라'(마 24:42-44)고 하신 주님의 말씀대로 언제라도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맞기에 부끄러움이 없도록 항상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살아야 할 것이다.

 

4. 요한은 누구에게 편지하며, 어떻게 인사합니까(4-5상)? 이 예수님이 일곱 교회에 주는 의미는 무엇일까요?

 

여기 '일곱 교회'란 형식적인 수신자를 말한다. 다시 말하면 실제 수신자는 직접적으로 지칭하고 있는 일곱 교회뿐만 아니라 일차적으로는 당시 초대 교회의 모든 교회이며, 더 나아가서 이차적으로는 오고오는 세대의 모든 교회이다. 그래서 외형상 전체를 상징하는 완전 수 '일곱'에 맞추려고 당시 아시아 주 내에 있던 많은 교회들 중 의도적으로 '일곱 교회'만을 형식적 수신자로 선택했다. 그러니까 7이라는 숫자의 상징적 의미가 '완전, 전체' 등이므로 이를 통하여 교회의 완전성을 상징하고자 했으며, 또한 모든 교회를 상징하고 있다.

 

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시고 장차 오실 이, 이는 출 3:14의 '나는 스스로 있는 자'라는 말에 해당하는 것으로서 하나님의 불변하심과 절대성을 나타내는 표현이며, 하나님께서 계시하시고 약속하신 것은 반드시 이루실 것임을 암시하는 말이다. 특히 '장차 오실 이'란 그리스도의 재림과 관련하여 그때 하나님께서 온 인류 가운데 심판주로 임재하실 것을 염두에 둔 표현이다.

 

그 보좌 앞에 있는 일곱 영, 스가랴는 하나님의 영을 여호와의 일곱 눈으로 비유하였는데(슥 4:10), 본서 저자도 하나님의 영을 일곱 영으로 표현하고 있다. 즉 본문의 '일곱 영'은 하나님의 일곱 천사가 아니라 성령을 지칭한다. 여기서 '일곱'이란 수 역시 성령의 완전성을 의미하며 또한 그분이 모든 교회와 관계하여 사역하심을 의미한다. 그런데 이 성령께서 하나님의 보좌 앞에 있다는 것은 삼위 일체 하나님 중 한 분이신 성령의 영광과 권위를 나타내 줌은 물론 성령께서 성부 하나님과 함께 모든 일을 행하시는 분임을 시사해 준다.

 

또 충성된 증인으로, 죽은 자들 가운데에서 먼저 나시고, 땅의 임금들의 머리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로말미암아,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한 충성된 증인이었을 뿐만 아니라,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후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시어 모든 믿는 자의 부활의 첫 열매가 되시었다. 여기서 '먼저 나셨다'는 말은 바로 부활의 첫 열매가 되셨다는 말이다. 그리고 승천하사 본래의 영광을 회복하셨다. 그리하여 본래 하나님이셨던 그리스도는 자신이 창조한 우주 만물을 주관하며 지배하는 통치권을 다시 행사하시게 되셨으며, 또한 자기 백성들의 구주가 되심은 물론 세상의 심판주가 되신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당시 로마 제국으로부터 박해 당하던 기독교인들에게 크나큰 위로가 되었을 것이다.

 

5. 요한이 영광과 능력이 영원히 함께 하기를 원하는 예수 그리스도는 또 어떤 분이십니까(5하-6)?

 

우리를 나라와 제사장으로 삼으신,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구속의 두 가지 결과이다. 사실 '하나님의 백성'이란 낱말은 이미 하나님의 나라를 전제로 하는 용어이다. 왜냐하면 백성은 나라, 곧 왕국을 전제로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하나님 나라의 왕이시며, 성도는 그 나라의 백성들이다. 또한 그리스도의 구속은 아담의 범죄 이래 단절되었던 하나님과 인간간의 관계를 회복시키셔서 각 사람이 각각 하나님께로 나아갈 수 있는 길을 열어 놓으셨다. 아멘이라는 말은 히브리어 '아멘'을 그대로 음역한 것으로, '견고한', '확실히'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이 말은 대개 문장의 끝에서 '그대로 이루어지기를', 또는 '그대로 좋다'는 의미로 사용된다. 그러나 때로 문두에서 확실한 강조를 나타낼 때 사용되기도 하였다.

 

6. 예수님은 어떻게 다시 오시며, 그때 누가 봅니까(7)? 왜 모든 족속이 애곡할까요?

 

'구름을 타고 오신다'는 사실은 예수님께서도 친히 예고하신 내용이다. 주님이 승천하실 때에도 승천하시는 주님을 구름이 가리웠으며, 천사는 그 모습 그대로 주께서 다시 오실 것이라고 증언하였다. 각 사람의 눈이 그를 보겠고는 주님의 재림의 공개성을 분명히 보여 주는 구절이다. 즉 초림시에는 비록 몇몇 사람만이 아는 가운데 비공개적으로 임재 하셨지만, 장차 재림시에는 모든 사람들이 보는 가운데 이 땅에 재림하실 것이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그리스도가 광야에 있다 하여도 나가지 말고 보라 골방에 있다 하여도 믿지 말라'(마 24:26)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하여 자칭 예수라 하거나 재림주로 자처하는 자들의 미혹에 넘어가서는 안될 것이다.

 

그를 찌른 자들도 볼 터이요. 주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계실 때 한 로마 병정이 주님의 옆구리를 창으로 찔렀다(요 19:34).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기서 '그를 찌른 자들'이 복수로 언급되어 있는데, 이는 그 병정으로 하여금 예수님을 찌르게 한 배후 세력인 로마 관원들과 유대 관원들을 염두에 둔 표현이다. 나아가 주님의 제자들을 박해하는 자들 역시 주를 찌르는 자와 같다는 점에서 복수로 사용되었다고 할 수 있다. 땅에 있는 모든 족속이 그로 말미암아 애곡하리니, 여기서 '땅에 있는 모든 족속'은 예수님의 재림의 날, 즉 하나님의 최후심판의 날까지 살아있을 모든 인류 중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은 모든 사람들을 지칭한다. 불신자들의 심령은 완강하여 끝까지 예수님을 믿기를 거부한다. 오직 그들이 애통해 하는 이유는 그들이 받을 하나님의 무서운 심판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7.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8)?

 

주 하나님이 이르시되 '나는 알파와 오메가라.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자요, 전능한 자'라 하시더라. '알파와 오메가'는 '처음과 끝' 또는 '시작과 나중', '전체와 완전함'을 뜻하는 관용적 표현으로서 여기에서는 하나님 자신을 지칭하는 말로 사용되었는데, 이는 하나님께서 영원토록 존재하시는 분이요, 또한 우주 만물을 시작하게 하신 창조자이시자 이를 심판하시는 최후 심판자이시라는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즉 하나님은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통틀어 항상 존재하는 분이시기 때문에 우주 만물의 시작과 끝을 주관하시는 분으로 자신을 알파와 오메가라 칭하신 것이다. 또한 전능하신 분이시다.

 

8. 요한은 지금 어떤 상태에 있으며,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9)?

 

예수 안에서 여러분의 형제요, 예수 안에서 환난과 그 나라와 인내에 여러분과 더불어 참여한 사람인 나 요한은,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에 대한 증언 때문에 밧모라는 섬에 갇혀 있게 되었습니다(새번역)

당시 그리스도인들은 유대인들로부터는 물론 로마 황제와 정부로부터 조직적이고 공개적으로 핍박을 당하는 처지에 있었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사모하며 고난을 참고 있었다. 그런데 저자는 그러한 성도들과 마찬가지로 자신도 그 왕국에 대한 기대와 고난에 참여하고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 이처럼 동질성을 강조하고 있는 것은 그 동질성을 통해 본서를 읽는 독자들의 마음을 열게 하는 동시에, 독자들도 자신과 같이 고난을 이기고 승리하도록 용기를 주기 위함이다.

 

9. 그는 언제 어떤 음성을 들었나요(10-11)?

 

'주의 날'은 오늘날의 '주일'을 지칭한다. 초대교회 교인들은 점차 유대인의 안식일 대신 이 날을 거룩한 날로 지켰는데, 요한도 이 날을 거룩하게 지키는 도중에 성령에 감동된 것으로 보인다. '성령에 감동하여', 저자는 이처럼 성령의 감동으로 이상 중에 있으면서도 자기의 이성을 분명히 가진 상태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1절)를 보았던 것이다. '나팔 소리 같은 큰 음성', '크다'는 것은 전능자의 위엄을 나타내는 말로 여기서 '큰 음성'은 그리스도의 음성을 가리킨다. 그리고 그 큰 음성이 나팔 소리와 같다는 것은 저자 요한을 큰소리로 일깨워 부르고 있었다는 의미이다. 왜냐하면 성경에서 나팔 소리는 백성을 불러 모으거나(민 16:2), 파수꾼이 경고할 때(겔 33:6), 전쟁 때(겔 7:14), 절기 때(레 23:4) 등에 분 것에서 나타나듯이 주로 백성들의 주의를 촉구하는 신호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 큰 음성으로 요한의 주의력을 한 곳에 집중시키시고 계신다는 것을 나타내 준다.

 

10. 그는 누구를 보았나요(12-16)? 인자 같은 이의 모습은 어떠하며, 왜 이 모습을 보여주셨을까요?

 

'인자'는 단 7:13에 배경을 둔 용어로 '예수 그리스도'를 지칭한다. 예수님께서도 스스로를 인자라고 칭하셨는데, 이는 자신이 근본 하나님의 아들이시면서도 성육신하신 것을 강조하는 호칭이다. 예수님을 '촛대 사이'에 계시는 이로 묘사하고 있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마치 구약 시대 당시에 대제사장이 성전 안에서 촛대 사이를 오가며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듯이 언제나 교회 가운데 계셔서 자기 백성의 대제사장으로서 하나님께 중보 기도를 드리시고 계심을 나타내기 위함이다. '발에 끌리는 옷을 입고 가슴에 금띠를 띤' 모습은 대제사장의 옷차림이다. 또한 이는 왕의 차림과도 유사하다. 즉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나라의 대제사장과 왕으로서 존귀와 위엄을 지니고 계신 분임을 묘사한 것이다. 요한은 환상 중에서 모든 하나님의 자녀들의 대제사장이시오, 만왕의 왕이신 그리스도를 본 것이다.

 

14절의 그 머리와 털의 희기가 흰 양털 같고 눈 같으며, 단 7:9과 같은 표현으로 '흰 머리털'은 영생, 지혜, 성결을 상징한다. 왜냐하면 '흰 머리'는 노인을 상징하는 것으로, 노인은 그 지내온 인생의 긴 연륜만큼이나 지혜와 경험을 축적하고 있으며, '희다'는 것은 때묻지 않은 순수함을 상징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가 영원하시고 지혜로우시며 성결하시다는 것을 나타낸다. '눈은 불꽃 같고'는 단 10:6에 언급된 메시야에 대한 묘사 '그 눈은 횃불 같고'라는 말을 반영한 것으로. 여기서 '눈이 불꽃같다'는 것은 사물의 본질과 인간의 마음까지도 꿰뚫어 보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신적 통찰력과 공의를 나타내 준다. 불꽃 같이 밝은 그리스도의 눈 앞에서 아무 것도 숨길 수 없다.

 

15 그의 발은 풀무에 단련한 빛난 주석 같고, 단 10:6에 의거한 표현이다. 발은 몸을 지탱하는 기본적인 힘을 상징하는 것인데, 그 발이 빛난 주석과 같다는 말은 그리스도의 능력이 견고하여 장차 그 원수를 짓밟을 때에 영광된 승리를 성취할 것임을 시사해 주는 표현이다. 이전에 십자가를 메고 가실 때의 주님의 발은 상처 나고 십자가에 달리실 때 그 발에 못이 박혀 피를 흘렸으나, 장차 심판의 주로 오실 때의 주님의 발은 그와 정반대로 세상을 딛고 원수를 심판하실 영광과 권능의 발인 것이다. 음성은 많은 물소리와 같으며. '많은 물'은 거대한 홍수가 엄습할 때 나는 소리로 도저히 저항할 수 없는 권능과 위엄을 상징한다. 그러므로 주님의 음성이 많은 물소리 같다는 표현은 주님의 권능과 위엄이 불가항력적이라는 것을 나타내준다.

 

16 오른손에 일곱 별이 있고. 성경에서 '오른손'은 대개 능력과 힘을 상징한다. 그러므로 '주님의 오른손'은 주님의 절대적인 권능을 의미한다. 다음으로 '일곱 별'은 '교회의 사자들'(20절), 곧 '우주적 교회를 지키는 하늘의 천사들'을 지칭한다. 즉 주님은 천사들을 세워 자신의 교회를 지키고 계시며, 그 천사들은 주님의 권능의 오른손 안에 온전히 사로잡혀 그 오른손의 권능으로 하나님의 자녀들을 지키는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다. 입에서 좌우에 날선 검이 나오고, 이 비유는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하나님의 살아 운동력이 있는 말씀을 상징하는 것으로, 한 치도 어긋남이 없는 하나님의 말씀의 정확성과 뭇 사람의 심령과 골수를 찔러 쪼개는 예리함을 나타내주는 표현이다. 또한 이는 각 사람을 정확하게 말씀의 잣대로 재어 심판하는 하나님의 엄정한 심판의 칼날을 의미하기도 한다.

 

얼굴은 해가 힘있게 비취는 것 같더라. 요일 1:5에서 요한은 '하나님은 빛이시라'고 하였다. 이 '빛'은 인간이 도저히 근접할 수 없는 하나님의 영광, 지혜, 사랑, 진실, 성결 등과 같은 종합적인 하나님의 속성들을 의미한다. 그런데 요한은 이제 예수 그리스도를 묘사함에 있어서도 이렇게 그분의 영광되고 거룩하며 진실되고 사랑이 넘친 모습을 묘사하고 있다. 그러므로 교회 공동체는 비록 삭막한 이 세상을 나그네로 살아가고 있지만 결코 낙심하지 말고, 우리보다 더 극심한 환난 가운데서도 그리스도 안에서 신앙과 신앙인이 행해야 할 바를 버리지 아니하고 승리한 초대 교회의 신앙의 선배들을 생각하며, 우리의 승리를 온전하게 보증하시는 심판주되시는 그리스도를 의뢰하는 가운데 마지막까지 승리하는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도록 정진해야 한다.

 

11. 요한은 그분을 보는 순간 어떻게 되었나요(17상)? 그를 위로하시는 그분은 누구십니까(17하-18)?

 

그 발 앞에 엎드러져 죽은 자 같이 되매, 하나님의 영광 앞에 선 자면 누구나 겪게 되는 상태이다. 비록 그리스도의 보혈의 공로를 힘입는 성도라 할지라도 아직 죄의 성향을 지닌 육신이 완전히 성화된 것은 아니기 때문에 하나님의 영광을 대면할 경우 두려움으로 말미암아 죽은 자처럼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오른손을 내게 얹고 이르시되 '두려워하지 말라, 나는 처음이요 마지막이니' '오른손'은 능력의 상징으로, 그 손을 얹은 것은 담대함을 부여하는 상징적 행동이다. 하나님의 영광 앞에서 죽은 것 같이 된 요한에게 나타나셔서 힘을 주시며 격려하시는 주님의 다정한 모습을 보여 준다.

 

1:18 곧 살아 있는 자라. 이 말은 ''영원한 자'로도 표현할 수 있다. '전에 죽었다'는 것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었던 사실을 지칭한다. 그러나 온 인류를 위하여 대속의 죽음을 당하셨던 그리스도는 사망의 권세를 이기시고 사흘 만에 부활하시어 영원하신 자신의 본래 속성을 회복하셨다.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졌노니, 성경에서 '열쇠'란 대개 절대적 '권세'를 상징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 심판 권세를 가지고 계신다는 의미이다. 한편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은 오히려 생명과 천국의 열쇠를 가지신 주님의 권세로 말미암아 영생과 하늘나라를 유업으로 받게 된다.

 

12. 요한에게 어떤 사명을 주십니까(19)?

 

여기서 '본 것'은 본서를 쓰고 있을 당시 저자가 본 환상을 말하며(10-18, 20절), '이제 있는 일'은 당시 일곱 교회가 처한 정황을 지칭한다(2, 3장). 그리고 '장차 있을 일'은 일반적으로 종말에 대한 예언적 사실을 뜻한다(4-22장). 요한은 주님이 이러한 사실들을 기록하라고 명하셨음을 밝히고 있는데, 이는 본서의 본격적인 본론에 들어가기에 앞서 본서가 예수 그리스도의 명령에 의해 쓰여졌음을 다시 한 번 언급함으로써 본서의 계시가 확실한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1절)임을 밝히기 위함이다.

 

13. 요한이 본 일곱 금 촛대와 일곱 별의 비밀은 무엇입니까(20)?

 

네가 본 것은 내 오른손의 일곱 별의 비밀과 또 일곱 금 촛대라. 일곱 별은 일곱 교회의 사자요, 일곱 촛대는 일곱 교회니라. 여기서 '비밀'은 명확히 드러나지 않은 감추어진 것을 의미하는 말로 자주 사용되었다. '계시'라는 말이 '감추인 것이 드러나다'는 뜻을 가지고 있는 점에 비추어 볼 때, 여기서 '비밀'이라는 낱말이 종종 사용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으로써, 요한은 그리스도에 의해 종말에 행해질 사건에 관한 하나님의 비밀을 보았고, 본 비밀을 드러내도록 기록하라고 명령받은 것이다(19절).

 

'사자'라는 말은 일반적으로 '천사'를 의미하나 때로 '인간'을 의미할 때도 있다. 그래서 혹자는 사자가 요한이 일곱 교회에 본서를 전달하기 위해 보낸 사자(使者)이거나, 아니면 당시 그곳 '교회의 감독'을 가리키는 것이라고 해석하기도 한다. 그러나 대부분 하늘의 사자를 지칭하고 있다는 점에 비추어 볼 때 본문의 사자는 '교회를 시키는 하늘의 천사'로 보는 것이 옳다고 생각된다. 그리고 '촛대'는 교회를 상징하는 것으로, 일곱 촛대는 앞의 일곱 교회를 지칭하는 동시에 궁극적으로는 모든 교회를 다 지칭한다. 한편 촛대가 금 촛대인 것은 금이 귀하고 아름답고 불변하는 속성을 가진 것처럼 하나님의 교회는 하나님 보시기에 귀하고 아름다우며 하나님의 보호 하에서 불변하는 것임을 나타내 준다.

 

적용과 나눔

 

* 사도요한은 밧모섬에 유배되어 있을 때 보았던 하나님의 계시를 '다' 증거하고 있다. 지금 나는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를 얼마나 체험적으로 알고 있으며, 또 이웃에게 얼마나 증거하고 있는가?

* 3 우린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듣고', '지키는' 복된 자인가? 단지 주일 예배를 통해서만 말씀을 듣고, 아무런 묵상도 행함도 없는 모습은 아닌가? 더욱이 때가 가까운 이 때에 …

* 9 요한의 자기 소개를 보라. '나 요한은 너희 형제요 예수의 환난과 나라와 참음에 동참하는 자라.' 이 얼마나 멋진 자기 소개인가? 오늘 우리도 자기를 소개한다면 요한처럼 당당히 '예수님의 환난과 나라와 참음에 동참하는 자 OOO'으로 소개할 수 있겠는가?

* 10-20 오늘날 자칭 계시를 받았다는 많은 사람들이 있어 성도를 미혹하며 사회적으로도 큰 물의를 빚고 있다. 잘못된 종말론을 선포하는 거짓 계시 앞에 우리의 태도는 단호한가?

파일 첨부

여기에 파일을 끌어 놓거나 파일 첨부 버튼을 클릭하세요.

파일 크기 제한 : 0MB (허용 확장자 : *.*)

0개 첨부 됨 ( / )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56 요나단의 신앙 [삼상 20장 5-16] 홍목사 2023-03-04 53
55 고통과 기도 [삼상 1장 1-10] 홍목사 2022-05-21 89
54 하나님의 섭리[출 2장 1-10] 홍목사 2018-09-15 532
53 새 시대를 향한 진통[출 1장 8-21] 홍목사 2018-09-07 132
52 번영과 고통의 드라마[출 1장 1-14] 홍목사 2018-09-01 163
» 계시록 2강 홍목사 2016-05-08 159
50 계시록 1강 - 서론 홍목사 2016-05-08 257
49 하나님의 비밀, 그리스도[골 2장 1-10] 홍목사 2015-07-24 641
48 일꾼의 자세[골 1장 21-29] secret 홍목사 2015-07-24  
47 만물의 주가 되신 그리스도[골 1장 13-20] secret 홍목사 2015-07-24  
46 최선을 삶을 살기 위한 바울의 기도[골 1장 9-12] secret 홍목사 2015-07-24  
45 우리가 감사할 이유[골 1장 1-8] secret 홍목사 2015-07-24  
44 안식을 주신 하나님[수 21장 41-45] secret 홍목사 2015-07-24  
43 도피성[수 20장 1-9] 홍목사 2015-07-24 1380
42 받은 축복을 나누라[수 19장 49-51] 홍목사 2015-07-24 894
41 어느 때까지 지체하겠느냐[수 18장 1-10]? secret 홍목사 2015-07-24  
40 스스로 개척하라[수 17장 14-18] 홍목사 2015-07-24 1793
39 유다 지파의 땅[수 15장 1-19] 홍목사 2015-07-24 970
38 갈렙처럼[수 14장 6-15] 홍목사 2015-07-24 1004
37 땅 분배의 원리[수 13장 1-14] 홍목사 2015-07-24 145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