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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단을 건너려면[수 3장 1-13]

조회 수 1988 추천 수 0 2015.04.12 10:27:20

요단을 건너려면[31-13]

 

1 또 여호수아가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서 그와 모든 이스라엘 자손들과 더불어 싯딤에서 떠나 요단에 이르러 건너가기 전에 거기서 유숙하니라. 2 사흘 후에 관리들이 진중으로 두루 다니며 3 백성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너희는 레위 사람 제사장들이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언약궤 메는 것을 보거든 너희가 있는 곳을 떠나 그 뒤를 따르라. 4 그러나 너희와 그 사이 거리가 이천 규빗쯤 되게 하고 그것에 가까이 하지는 말라. 그리하면 너희가 행할 길을 알리니 너희가 이전에 이 길을 지나보지 못하였음이니라" 하니라. 5 여호수아가 또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자신을 성결하게 하라. 여호와께서 내일 너희 가운데에 기이한 일들을 행하시리라." 6 여호수아가 또 제사장들에게 말하여 이르되 "언약궤를 메고 백성에 앞서 건너라" 하매 곧 언약궤를 메고 백성에 앞서 나아가니라. 7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내가 오늘부터 시작하여 너를 온 이스라엘의 목전에서 크게 하여 내가 모세와 함께 있었던 것 같이 너와 함께 있는 것을 그들이 알게 하리라. 8 너는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에게 명령하여 이르기를 너희가 요단 물가에 이르거든 요단에 들어서라 하라." 9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르되 "이리 와서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라" 하고 10 또 말하되 "살아 계신 하나님이 너희 가운데에 계시사 가나안 족속과 헷 족속과 히위 족속과 브리스 족속과 기르가스 족속과 아모리 족속과 여부스 족속을 너희 앞에서 반드시 쫓아내실 줄을 이것으로서 너희가 알리라. 11 보라 온 땅의 주의 언약궤가 너희 앞에서 요단을 건너가나니 12 이제 이스라엘 지파 중에서 각 지파에 한 사람씩 열두 명을 택하라. 13 온 땅의 주 여호와의 궤를 멘 제사장들의 발바닥이 요단 물을 밟고 멈추면 요단 물 곧 위에서부터 흘러내리던 물이 끊어지고 한 곳에 쌓여 서리라."

 

여호수아서는 하나님께서 모세에 이어 여호수아를 새 지도자로 세우시고 다음과 같이 명령하심으로 시작됩니다. "요단을 건너 내가 그들 곧 이스라엘 자손에게 주는 가나안 땅으로 가라." 이때 하나님께서는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라"라고 재차 말씀하셔서 가나안 정복역사가 결코 순탄치 않음을 암시하고 계십니다. 실제로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해야 할 정도로 수많은 고난과 역경이 여호수아를 비롯한 백성들의 앞에 놓여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만난 요단강은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위해서 반드시 건너야만 했던 첫 번째 난관이었습니다. 어떻게 이 난관을 극복하고 가나안 땅을 점령할 수 있겠습니까?

 

현재 나라의 정치 경제 사회 교육 등 모든 것이 힘들고 어렵습니다. 교회도 힘도 능력도 점점 잃어버리고 있습니다. 이렇게 아예 일어설 힘조차 없을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하나님의 기적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때입니다. 지금 우리 앞에 도도하게 흘러 내려가는 우리 앞을 가로막고 있는 요단강을 말려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너무나 절실하게 필요한 때입니다.

우리 하나님께서 우리 민족과 우리들의 앞을 가로막고 있는 요단강과 같은 문제들을 해결해주는 귀한 역사가 나타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본문에 하나님께서 요단강을 갈라 주시기 전에 명령하신 세 가지 지침이 나오고 있습니다. 이것은 기적을 위한 세 가지 하나님의 요구요, 명령입니다.

 

첫째는, 언약궤를 따르라는 것이었습니다.

 

3, "백성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너희는 레위 사람 제사장들이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언약궤 메는 것을 보거든 너희가 있는 곳을 떠나 그 뒤를 따르라."

언약궤를 따라가라고 하셨습니다. 이 언약궤는 법궤라고도 하는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시내산에 있을 때에 하나님께서는 이 언약궤를 만들게 하셨습니다. 이 언약궤 안에 하나님이 직접 써 주신 십계명의 돌판을 넣도록 하시고, 이스라엘 백성을 40년 동안 먹여 살렸던 신비의 양식인 만나를 담은 항아리를 넣도록 하셨습니다.

그리고 후에는 아론의 싹 난 지팡이도 언약궤 안에 넣도록 하셨습니다. 그리고 백성들은 그 언약궤 앞에 와서 기도도 하고 예배도 드렸습니다.

이 언약궤는 바로 하나님이 이 자리에 계신다는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이었습니다. 즉 언약궤를 볼 때마다 '하나님이 우리 가운데 계신다.' 이렇게 항상 고백할 수 있도록 만드는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물이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제사장들이 언약궤를 어깨에 메고 갈 때 그 뒤를 따라가라는 것입니다. 언약궤를 보고 따라가는데 2천규빗 정도의 거리를 두고 따라가라고 했습니다.

1규빗은 보통 손끝에서 팔꿈치까지를 말하는데, 45CM정도 됩니다. 그러니까 2천 규빗은 약 900M 정도가 되는 거리입니다. 하나님께서는 900M 정도의 거리를 두고 백성들이 따라 오도록 하신 것입니다.

 

왜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거리를 두고 따라오라고 했을까요? 첫째, 언약궤의 신성함과 언약궤가 나타내는 하나님 임재의 거룩함을 기억하도록 하시기 위함입니다.

 

또 하나의 이유는, 하나님의 인도를 잘 받기 위해서입니다. 즉 언약궤는 하나님 임재의 상징으로서, 백성들 앞에 나아감으로써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인도하시는 분임을 보여주시는 상징입니다. 이스라엘은 바로 이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잘 따르기 위해서 '이천 규빗' 정도 떨어질 필요가 있었습니다.

 

이러한 사실은 3절의 '그리하면 너희 행할 길을 알리니'라는 말로 더욱 구체화됩니다. 지금 이 언약궤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있어서 안내자와 같았습니다. 지금 이스라엘이 가는 길은 한 번도 전에 가본 적이 없는 전인미답의 길입니다. 따라서 이 땅은 안내자가 없이는 절대로 갈 수 없는 길입니다.

 

오늘 하나님께서는 이 중요한 행진을 앞두고 명하십니다. "언약궤를 바라보라." 이 말은 "역사의 주인 되신 하나님을 바라보라, 우리의 삶의 주인되신 하나님을 바라보라, 네게 호흡을 주시고 너를 이 땅에 존재하게 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라, 그 하나님을 바라보고 따르라"는 메시지입니다.

 

마틴 루터가 어느 날 아침 빵을 먹고 있었습니다. 옆에 있던 강아지가 자기 손에 있는 빵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손이 입으로 가면 입을 쳐다보고, 손이 내려와 빵을 뜯으면 빵 뜯는 손을 쳐다보다가 또 올라가면 그 입을 쳐다봅니다.

할 수 없이 빵을 뜯어서 한쪽 강아지에게 주었습니다. 그리고 눈물이 왈칵 쏟아집니다. "나는 세상만 바라보고 하나님이 나를 바라봐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했는데, 하나님은 언제나 저를 바라보고 계셨는데, 내 눈이 엉뚱한 곳만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나는 이 철없는 강아지 한 마리만도 못했습니다. 이제는 하나님만 보고 살겠습니다." 분연히 일어나 오늘의 종교개혁을 낳게 된 것이 아니겠습니까?

 

우리가 결코 하나님보다 앞서 가면 안 됩니다. 이것은 놀랍게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았던 조지 뮬러 목사님의 인생철학이기도 했습니다. "하나님을 따르자. 그러나 하나님 보다 앞서 가지 말자. 기도보다 앞서지 말자."

131절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 40년을 어떻게 하나님의 인도를 받았는지 한마디로 잘 요약되어 있습니다. "사람이 자기 아들을 안음같이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의 행로 중에 너희를 안으사 이곳까지 이르게 하셨느니라." 이어 33절에는 "그는 너희 앞서 행하시며 장막 칠 곳을 찾으시고 밤에는 불로, 낮에는 구름으로 너희의 행할 길을 지시하신 자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처한 현실이 아무리 어렵고 고통스럽다 하더라도 역사의 주인 되신 하나님이 우리를 인도해 주신다면, 그분이 앞서가신다면, 그리고 우리들이 기꺼이 전능하신 하나님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을 따라간다면, 오늘 우리의 시련은 미래의 위대한 승리의 역사의 전화위복의 기회가 될 줄로 믿습니다.

 

둘째는, "너희는 자신을 성결하게 하라"고 하십니다.

 

5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여호수아가 또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자신을 성결하게 하라. 여호와께서 내일 너희 가운데에 기이한 일들을 행하시리라."

여기에 보면 하나님께서 기적을 행하시겠다고 하십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기적을 행하실 때 하나님을 모시고 살아가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어떻게 준비해야 하느냐 하면 스스로 성결하게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지금 요단강을 건너가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그 땅을 정복해야 하는 백성들에게는 그 강을 건너는 문제가 제일 큰 고민거리였을 것입니다. 그럴 때 듣고 싶어 하는 말이 무엇입니까? 그 강을 건너는 방법에 대한 대답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너희는 스스로 성결하게 하라"는 메시지를 주신 것입니다.

 

그들이 원했던 대답은 그것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우리가 원하는 대답은 바로 이런 것입니다. "하나님, 이 시점에서 이 풀리지 않는 내 사업문제를 어떻게 풀어 가면 좋겠습니까? 이 어려운 사업에서, 이 궁지에서 빠져나와 사업을 성공시킬 수 있는 어떤 비결을 말씀해 주십시오."

"하나님, 내가 가정적인 어떤 어려운 문제 속에서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 문제를 어떻게 시원하게 해결해야 하는지 그 대답을 알려 주십시오."

"하나님, 교회에 너무나 많은 어려움들이 있습니다. 이 문제들을 해결할 방법들을 가르쳐주세요." "하나님, 나라가 총체적 위기라고 합니다. 소망이 보이지 않는다고 합니다. 어떻게 해결할 방법을 가르쳐 주십시오."

 

그러나 하나님이 그 대답을 들려주시기 전에 우리에게 먼저 요구하시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너희는 스스로 성결하게 하라"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하신 주님의 의도를 이해하시겠습니까?

 

하나님은 큰 그릇도 쓰실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아주 작은 그릇도 쓰실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그릇을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절대로 쓰지 않는 그릇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더러운 그릇입니다.

 

인생의 수많은 문제에 부딪혀 묘안을 찾고, 해결 방법을 찾고 있는 사람에게 주님께서는 그보다 더 근본적인 문제를 가지고 도전해 오시는 것입니다. "네 가정 문제의 해결의 실마리를 찾기보다, 네 사업의 해결 방안을 찾기보다, 네 인생의 문제를 두고 고민하기보다 더 중요한 문제가 있다. 너 자신을 성결하게 해야 한다."

아무리 좋은 것이라 할지라도 그것을 담을 그릇이 없으면 안되지요. 우리에게는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축복을 담을 깨끗한 그릇이 필요합니다.

 

7장에 보면 요단강을 건너 난공불락이라는 여리고 성을 하나님의 기적으로 점령하게 됩니다. 그들은 감사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약속의 땅을 우리에게 주셨다는 감격으로 충만했습니다. 이제 기세를 몰아서 다음에 있는 조그마한 성, 아이 성을 공격하게 되는데 너무 작은 성이라서 이 많은 군사가 갈 필요가 없다 해서 이삼천 명만 보냈다가 전쟁에 패전을 하고 맙니다.

 

물론 전쟁이란 이길 때도 있고 질 때도 있는 겁니다. 어찌 늘 승전만 있겠습니까마는 이 전쟁은 이야기가 다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함께 하셔서 하나님의 약속의 땅을 얻게 되는 거룩한 전쟁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이 전쟁에는 패전이란 있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군사력이 강해서, 또 훈련된 군사가 많아서 승전을 기대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 애굽에서 인도하신 하나님, 광야 길에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인도하신 하나님, 그 위대하신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백성이라는 그 사실 때문에 가나안 족속은 벌벌 떨면서 자기들의 땅을 내 놓을 수밖에 없었던 상황이었습니다. 바로 이러한 전쟁이기에 여기에 패전이 있다는 이야기는 있을 수가 없고, 일이 이렇게 되면 하나님께서 그들과 함께 하시지 않는다는 이야기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저 가나안 일곱 족속들은 용기백배해서 연합군을 만들어 가지고, 이스라엘을 침략할 수도 있는 상황입니다. 지금 이런 상황에 있습니다. 그야말로 위기 중에 위기입니다.

 

너무 답답하고 괴로워서 여호수아가 옷을 찢고 장로들과 함께 하루 종일 하나님의 언약궤 앞에 엎드려서 통곡을 하며 웁니다. "하나님, 어찌하여 이런 일이 있을 수가 있습니까?" 하고 목 놓아 울고 있습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 대답을 하십니다. "어찌하여 이렇게 엎드렸느냐?" 그리고 이어서 하시는 말씀이 "패전의 원인은 너의 자신들에게 있느니라. 내게 있는 것이 아니고 너희들에게 있는 것이다. 너희가 전쟁에서 패한 이유가 바로 너희들 자신에게 있다." 이렇게 원인 규명을 촉구하십니다.

그리고 "스스로 성결하게 하여 내일을 기다리라"고 말씀하십니다.

 

내일을 기다리라. 참 중요한 말씀입니다. 위기 관리능력을 상실한 여호수아는 지금 절망합니다. 소망이 없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희에게 내일을 줄 것이다."

오늘 너희가 당한 이 큰 사건은 큰 회개를 촉구하는 것이요, 성실을 위하여 하나님의 선민의 성실을 위하여 있어진 사건이라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성결하여 내일을 기다리라고 하십니다. 적이 강해서가 아니고, 전략이 잘못된 것도 아니고, 상황이 잘못된 게 아니라는 것입니다. "원인은 너희 속에 있다. 내적인 문제다. 성결의 문제요, 도덕성이요, 진실의 문제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을 알아야 합니다. 세상이 어떻고 정황이 어떻고 경제가 어떻고 정치가 어떻고 우리가 이야기합니다만, 진짜 문제는 우리의 내면의 문제입니다. 문제의 근본은 도덕성에 있고 신앙에 있고, 우리 내면의 문제입니다.

 

미국에 가스펠 송 가수인 [피터 빌혼]이라고 하는 분이 있는데 그 분이 언젠가 아이오와 주에 있는 포트메디슨 형무소에 가서 복음송으로 전도하면서 노래를 불렀습니다. 그 때에 부른 노래 가운데 하나가 "날개가 상한 새는 날 수 없습니다"라는 노래입니다. 이 노래를 듣고 죄수 하나가 찾아와서 "날개가 상한 새는 정말 영영 날 수 없는 겁니까?" 하고 눈물을 흘리며 슬픈 얼굴로 묻습니다.

 

순간 피터 빌혼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집에 돌아왔는데 이것이 기억에서 지워지질 않습니다. "날개가 상한 새는 영원히 날 수 없습니까?" 하며 슬퍼하는 사람을 생각하며 그는 깊은 은혜 가운데 가사를 다시 지었습니다. 그때 그가 작사한 노래의 내용이 이렇습니다. "예수님께로 가면 어떤 죄도 용서받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 맡기기만 하면 실패한 과거도 새롭게 됩니다. 주님의 사랑에 그대를 맡기십시오. 그대의 날개는 다시 새로워지고 높이 높이 푸른 하늘을 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이 그 찬송을 통하여 위로를 받고 회복을 체험했습니다.

 

그로부터 20년 후에 뉴욕 YMCA에 무슨 일이 있어서 행사에 참여하고 있는데 자기 눈앞에 미군 대령 한 사람이 나타나서 인사를 합니다. "안녕하십니까? 제가 20년 전에 상한 날개를 치유하면 다시 날 수 있다고 한 그 노래를 듣고, 당신의 노래를 듣고 새 사람이 된, 바로 제가 그 사람입니다."

 

여러분, 물론 상한 날개로써는 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우리 주님께로 가면 이 날개를 치유해 주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민족을 치유하실 주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주님께만 우리 희망이 있습니다. 주님을 바라보며 우리 모두 주님의 인도를 받는다면, 주님께서 우리를 우리 민족을 인도하신다는 사실만 확신할 수가 있다면 문제는 없습니다. 우리는 반드시 요단을 건너갈 것입니다. 그리고 가나안의 기업의 땅을 얻고야 말 줄로 믿습니다.

 

지금 하나님이 어떤 요구를 하십니까? 요단강을 건너가기 전에,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새로운 삶의 터를 준비하기 전에 먼저 너희들의 삶이 깨끗해야만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너희가 자신을 성결하게 하라. 그리하면 내가 너희 가운데 기사를 행하리라." 말씀하셨습니다.

 

19세기 세계적인 설교가 스펄전 목사님은 "죄를 증오하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 12명만 달라. 그러면 런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다 변화시킬 수 있을 것이다"고 말했습니다. 오늘 이 시대에 필요한 자는 바로 성결하게 하는 자들입니다.


마지막으로, 요단에 들어서라고 하십니다.

 

6절을 보십시오. "여호수아가 또 제사장들에게 말하여 이르되 언약궤를 메고 백성에 앞서 건너라 하매 곧 언약궤를 메고 백성에 앞서 나아가니라."

그러면 하나님이 일으키실 놀라운 기사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요단 강물이 멈추어 서는 것입니다. 백성과 제사장들은 여호수아가 명한 그대로 행했습니다. 백성이 요단을 건너려고 장막을 떠날 때에 제사장들은 언약궤를 메고 백성 앞에서 행했습니다. 그들은 한 발 한 발 요단강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이는 믿음의 발걸음이요, 순종의 발걸음이었습니다.

 

때는 모맥(밀과 보리)을 거두는 시기여서 요단 강물이 창일하게 강 언덕에 차고 넘쳤습니다. 모맥을 거두는 시기는 히브리 달력으로 니산월이고, 이는 현대 태양력으로는 3, 4월에 해당됩니다. 이때는 헬몬산의 눈이 녹아 흐르고, 늦은 봄비가 내림으로 요단강이 항상 흘러 넘쳤습니다. 시기적으로 요단강을 건너기가 매우 어려운 때였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막상 제사장들에게 발을 담그도록 명령한 여호수아나 명령을 받은 제사장들의 마음은 어떠하였을까요? 여호수아는 굽이치는 실제의 요단강 보다 자신의 마음 가운데 흐르는 의심의 요단강과 맞닥뜨리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제사장들도 언약궤를 매긴 했어도 막상 소용돌이치면서 굽이도는 요단강을 볼 때 불안한 마음이었을 것입니다. 어떻게 생각하면 지금 넘쳐흐르는 요단강에 발을 담그는 것은 자살과도 같은 일입니다.

 

8절을 새번역은 이렇게 번역하고 있습니다. "이제 너는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에게, 요단 강의 물 가에 이르거든 요단 강에 들어가서 서 있으라고 하여라." 요단 강에 들어가서 서 있으라. 이 얼마나 두려운 일입니까?

 

마음으로 믿는 것은 쉽지만 믿는 것을 행하기에는 결단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제사장들은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믿고, 믿음으로 요단강에 발을 들여놓았습니다. 사실 이는 믿음이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제사장들은 인간적인 생각, 부정적인 생각, 불신의 생각을 불식하고 믿음으로 요단강에 발을 들여놓았습니다. 이윽고 제사장들의 발이 물가에 잠겼습니다.

 

그러자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그토록 창일하게 넘실거리며 흘러내리던 요단 강물이 '' 그쳐졌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로 말미암아 이스라엘 백성들은 마른땅으로 행하여 요단을 건넜습니다.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들을 인도하시는 과정에서 순종하는 백성들에게 엄청난 기적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한번 생각해 보세요. 물가에 제사장의 발이 잠겼을 때 물이 쫙- 하고 빠져 나가는데 20마일, 32Km 밖으로 빠져 나갔습니다. 그때 백성들의 심정이 어떠했을까요? 여호수아와 제사장들의 심정이 어떠했을까요? "과연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요단을 가르셨구나. 요단이 갈라졌다. 요단이 갈라졌다. 요단이 갈라졌다." 평생에 잊지 못할 사건이 되었을 것입니다.

 

저는 우리 앞에 놓여진 많은 문제들, 아픔들도 이 요단강물처럼 다 멀리 멀리 빠져나가도록 주님이 도와주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 고통을 겪으면서, 다시 한번 우리의 믿음이 새롭게 되는 경험을 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그 고통이 전혀 의미 없는 고통이 아니었음을 고백하는 날이 오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뭐라고 기도합니까? "하나님, 이 문제를 해결해 주세요. 그러면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는 것을 내가 믿을 거예요." "하나님, 내가 사업을 시작했어요. 사업이 번창하게 해주세요. 충성도 하고 헌신도 하고 십일조도 하겠습니다." "하나님 살아계신 증거를 내게 보여주세요. 그러면 잘 믿을게요."

 

그러나 성경은 우리에게 전혀 반대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믿으면 네가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믿으면 보리라." 너희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끊임없이 하나님에게 우리는 부르짖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보여주세요. 그러면 믿을게요." 아닙니다.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될 것입니다.

 

문제가 우리 앞에 있습니다. 하나님은 앞으로 나가라고 명하십니다. 나는 이 문제가 어떻게 해결될지 해결책이 없습니다. 그러나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고 갑니다. 찬양하며 갑니다. 찬양할 거리가 없어 보이는 내 삶의 장에서도, "나는 하나님을 믿습니다, 나는 여호와를 믿습니다"하며 믿음으로 순종하며 나갈 때 요단강과 같은 문제들이 갈라지는 기적을 보게 될 것입니다.

 

이제 설교를 맺기 전에 제가 꼭 강조하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우리는 기도할 때 내가 직면한 어려운 문제로부터 눈을 떼고 그 문제를 해결하실 수 있으신 하나님께 초점을 맞추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절대로 문제만 보지 마십시오. 문제 너머에 이 문제를 다스리는 하나님을 바라다보십시오. 우리가 우리의 시선을 하나님께 맞추고 그분의 위대하심을 생각할 때 우리가 당면한 문제들과 절대로 해결할 수 없다고 생각되던 커다란 문제들이 작게 보이기 시작할 것입니다.

 

그러면 문제의 실체를 하나님의 관점에서 보게 됩니다. 하나님의 위대하심, 그분의 영광, 그리고 약속을 지키시는 그분의 신실하심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기도할 때 우리가 절망적이라고 생각되어지던 문제들이 작게 보이며, 우리는 용기를 잃지 않고 기도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거기에 해결책을 보여 주실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문제보다 크신 주님을 바라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본문 10a절에 하나님에 대하여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살아 계신 하나님이 너희 가운데에 계시사" 이 말씀을 붙들고 용기를 내시고 기도하기를 바랍니다.

"우리 하나님은 살아계신 하나님이십니다." 즉 지금도 살아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또한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너희 가운데 계신다"고 하십니다.

지금 우리의 모임에 함께 하시며, 우리의 기도에 귀를 기울이시는 살아계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분은 고통가운데 있는 우리와 함께 하시며, 우리의 작은 신음소리에도 귀를 기울이시는 바로 신실하신 우리 아버지이십니다.

 

또한 그 하나님은 11절과 13절을 보면 "온 땅의 주"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하늘과 땅을 주관하시고, 만물을 주관하시고, 인생들을 주관하시고, 눈앞에 있는 이 요단강과 앞으로 정복해야 할 가나안 땅과 우리 인생사의 모든 것을 통치하시고 다스리시는 온 땅의 주 하나님께서 너희와 함께 계신다는 것입니다.

온 땅의 주이신 그분께서 우리에게 나를 바라보고 나의 인도를 받으라고 하십니다. 내가 기적을 행할 것이다. 너희는 스스로 성결하게 하라고 하십니다. 믿음으로 순종하여 요단에 들어서라고 하십니다.

 

13절을 다시 봅시다. "온 땅의 주 여호와의 궤를 멘 제사장들의 발바닥이 요단 물을 밟고 멈추면 요단 물 곧 위에서부터 흘러내리던 물이 끊어지고 한 곳에 쌓여 서리라." 여러분, 장작더미를 보셨을 것입니다. 돌들의 무더기를 보셨을 것입니다. 쓰레기 더미를 보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물과 같은 액체가 더미로 쌓여 있는 것을 보셨습니까? 물더미라는 말은 사전에도 나오지 않습니다. 살아 계시는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들 가운데 계셔서 전진하면서 역사하실 때에 흘러내리던 물이 끊어지고 그것이 더미가 되어서 쌓이는 이 놀라운 역사를 이루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앞에서 요단강을 갈라지게 하실 수도 있지만, 하나님께서는 요단강을 그냥 두시더라도 그 요단강을 건널 수 있도록 하나님이 간섭하셔서 인도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하나님께서 요단으로 들어가라고 말씀하신 이상 우리는 그 말씀에 순종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10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살아 계신 하나님이 너희 가운데에 계시사 가나안 족속들을 너희 앞에서 반드시 쫓아내실 줄을 이것으로서 너희가 알리라"고 했습니다. 이 요단강을 건너는 사건을 통해서 살아 계신 하나님이 가나안의 일곱 족속을 반드시 쫓아내실 것을 알게 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빌립보서 16절을 보면 "너희 속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가 확신하노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일단 자기 백성을 위해서 구원의 일을 생각하신 이상 반드시 그 일을 마치시는 분이십니다. 우리가 천국으로 향해 가는 인생 행진에 있어서 마지막 승리는 확보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 1555절 이하에서 이렇게 외칩니다.

"사망아, 너의 이기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너의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해서 이김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오늘 이것 하나만은 꼭 가슴에 새깁시다. 온 땅의 주가 되시는 살아 계신 하나님이 내 편이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언약궤를 따르고, 스스로 성결하게 하고, 순종하는 믿음으로 요단강을 발을 내딛고 갈 때 살아 계신 하나님께서 반드시 나를 도우신다는 사실입니다. 그 하나님 의지하고 이 시대 아름답게 쓰임 받는 복된 삶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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