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tegory

  1. Daerew 4
  2. 메시지
  3. 주일예배


새로운 시작[수 8장 1-9]

조회 수 386 추천 수 0 2015.04.12 10:33:23

 

새로운 시작[ 8 1-9]

 

1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두려워하지 말라. 놀라지 말라. 군사를 다 거느리고 일어나 아이로 올라가라. 보라! 내가 아이 왕과 그의 백성과 그의 성읍과 그의 땅을 다 네 손에 넘겨 주었으니 2 너는 여리고와 그 왕에게 행한 것 같이 아이와 그 왕에게 행하되 오직 거기서 탈취할 물건과 가축은 스스로 가지라. 너는 아이 성 뒤에 복병을 둘지니라" 하시니 3 이에 여호수아가 일어나서 군사와 함께 아이로 올라가려 하여 용사 삼만 명을 뽑아 밤에 보내며 4 그들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너희는 성읍 뒤로 가서 성읍을 향하여 매복하되 그 성읍에서 너무 멀리 하지 말고 다 스스로 준비하라. 5 나와 나를 따르는 모든 백성은 다 성읍으로 가까이 가리니 그들이 처음과 같이 우리에게로 쳐 올라올 것이라. 그리 할 때에 우리가 그들 앞에서 도망하면 6 그들이 나와서 우리를 추격하며 이르기를 '그들이 처음과 같이 우리 앞에서 도망한다' 하고 우리의 유인을 받아 그 성읍에서 멀리 떠날 것이라. 우리가 그들 앞에서 도망하거든 7 너희는 매복한 곳에서 일어나 그 성읍을 점령하라.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 성읍을 너희 손에 주시리라. 8 너희가 그 성읍을 취하거든 그것을 불살라 여호와의 말씀대로 행하라. 보라!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였느니라" 하고 9 그들을 보내매 그들이 매복할 곳으로 가서 아이 서쪽 벧엘과 아이 사이에 매복하였고, 여호수아는 그 밤에 백성 가운데에서 잤더라.

 

'어떻게 성공할 것인가?'라는 질문보다 더 중요한 질문은 '어떻게 실패를 딛고 일어설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실패는 우리들의 일상적인 삶의 경험 가운데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성공적인 위대한 삶을 살았던 사람들의 전기를 보고 격려를 받기보다는 오히려 좌절에 빠지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그래서 성경에서 좋아하는 사람을 말하라면 요셉과 다니엘 같은 사람은 좀 부담스럽습니다. 그 사람의 성공의 모습이 나와는 동떨어진 삶인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사실은 성공한 모든 사람들의 배후에는 더 많은 실패의 기록들이 있습니다. 야구에서 신화적인 기록을 남겼던 데이브 루스가 714번째의 홈런 기록을 세웠을 때에 신문들은 그의 경이적인 기록에 대해서 떠들어 댔습니다. 오직 하나의 신문만이 그가 714번째의 홈런 기록을 세우던 그 날 그가 그 기록과 동시에 1330개의 스트라이크 아웃의 기록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보도했다고 합니다. 사실 성공은 실패를 전제로 해서 말할 수 있는 사건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온 후 그들은 한 번의 성공과 한 번의 실패를 경험합니다. 여리고 성을 정복한 직후 아이 성에서 그들은 참패를 당한 것입니다.

그들의 비참한 심정을 7 5절은 이렇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백성의 마음이 녹아 물 같이 된지라." 그들은 실패한 것입니다. 그런 그들이 어떻게 다시 일어날 수가 있었습니까? 지난주에 말씀드린 대로 그들은 실패를 하나님 앞에 가지고 갔습니다. 그리고 실패의 원인을 발견하고 그 문제를 해결했습니다. 무엇보다 신실하신 하나님의 긍휼과 사랑 때문이었습니다.

 

오늘 본문 8장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도움으로 새로운 자세로 아이 성을 점령하는 내용입니다. 오늘 8 1, 2절을 중심해서 실패를 딛고 새로운 시작을 하도록 도우시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첫째, 위로하시는 하나님

 

유명한 영국 설교자 로버트슨(F. W. Robertson)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인생은 전쟁과 같이 실수의 연속입니다. 실수를 가장 작게 하는 사람이 최고의 그리스도인이나 최고의 장군이 아닙니다. 실수를 작게 하려고 하면 보통 인물이 됩니다. 가장 혁혁한 승리를 거두는 사람은 실수들을 하면서도 실수들을 만회하는 사람입니다. 실수들을 잊어버리십시오. 실수들에서 승리를 이끌어내십시오."

실패해도 다시 시작해서 승리를 이끌어내라는 것입니다.

 

자동차 왕 헨리 포드도 "실수는 더 지혜롭게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기회"라고 했습니다. 실패했다고 가만히 앉아서 시간만 보내는 것은 자살행위나 다름없습니다.

우리가 실수를 아무리 많이 해도 가장 큰 실수는 다시 시작하지 않는 실수입니다. 알렉산더 화이트가 말한 대로 "승리하는 신앙생활은 새로 시작하고 또 새로 시작하는 새로운 시작 시리즈"입니다. 그래서 오늘 설교제목이 "새로운 시작"입니다.

 

여호수아는 아이 성 참패 이후 다시 시작했습니다. 무엇보다 여호수아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다시 시작했습니다. 여호수아는 하나님의 어떤 말씀을 듣고 다시 시작했습니까? 하나님은 우리가 실패와 좌절의 늪에서 빠져나와 다시 시작할 수 있도록 어떤 말씀을 주십니까?

 

우리 옛말에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보고 놀란다"는 말이 있습니다. 1차 전투에서 공격을 시도했다가 실패한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백성들은 어처구니없는 패배로 말미암아 어찌 할 바를 몰랐습니다. "이제 큰일 났구나. 우리가 여기에서 적군들의 연합군에 의해서 다 몰살당할지도 모른다"는 그런 위기감이 온 이스라엘 전역을 뒤덮게 되어졌습니다. 이러한 불안감 속에서 두려움과 좌절감이 그들을 뒤덮고 있을 때 하나님께서는 "두려워 말라, 놀라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누구나 인생을 살아가면서 우리 자신들이 무엇엔가 패배했을 때 느끼는 낭패감, 또 우리 앞에 막고 서 있는 어떤 장애물로 말미암아 우리 자신들이 두려움에 떨고 또 놀랄 때가 있습니다. 남들은 모르지만 나만이 가슴속에 안고 있는 불안감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가?" "앞으로 어떻게 해야 될 것인가?" 그냥 다 내 팽개치고 주저앉고 싶어버리고 싶은 그런 절망감 속에 빠져들 때가 있습니다.

 

여호수아는 아이 성에서 참패를 당한 뒤 백성들과 함께 마음이 꺾였습니다. "가나안 31성 군인들이 우리의 참패 소식을 들었을 텐데, 그들이 우리를 포위하고 공격하면 어떻게 하지? 철철 넘치는 요단강을 건넜으니 다시 돌아갈 수는 없고, 어떻게 하나? 앞에는 적군들, 뒤에는 요단강, 주변에는 풀이 꺾인 백성들어떻게 해야 하나?" 여호수아는 아마 이런 두려움이 있었을 것입니다.

 

우리가 실패하면 과거의 실패 때문에 실망하고, 미래에 또 실패할까 두렵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두려움과 놀라움에 빠진 여호수아를 위로하십니다. "두려워하지 말라. 놀라지 말라." 두려움과 걱정이 있습니까? 주님은 "두려워하지도 말고 걱정하지도 말라"고 우리를 위로하십니다.

 

성경은 우리가 어떤 상황에 있더라도 두려워하지 말라는 말씀을 주십니다. 14장에 보면 소돔 땅에 살고 있었던 롯이 연합군에게 포로로 끌려갔을 때 아브라함은 기습작전으로 연합군을 공격해서 롯을 구출합니다. 그러나 혹시 그들의 침공을 다시 받을까 두려워할 때에 하나님은 "두려워하지 말라나는 너의 방패"라고 말씀하셨습니다( 15:1). 하나님은 우리의 방패이십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방패이신데 누가 우리를 칠 수 있겠습니까?

 

야곱이 애굽으로 내려가기를 두려워할 때에 하나님은 야곱을 이렇게 위로하셨습니다. "나는 하나님이라. 네 아버지의 하나님이니 애굽으로 내려가기를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거기서 너로 큰 민족을 이루게 하리라"( 46:3).

객지나 외국으로 갈 때 낯선 땅, 낯선 사람들, 낯선 언어와 문화에 대한 두려움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객지와 외국에서도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하나님은 거기서 우리로 큰 민족을 이루게 하십니다. 어디로 가든지 하나님이 함께 계시기 때문에 우리는 두려워할 것이 없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많이 들어도 질리지 않고 은혜가 되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사야 41 10절 말씀입니다.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이렇게 약속하신 하나님이 바로 우리 하나님이십니다. 우리의 아버지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두려워하거나 놀랄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도와주시고 붙잡아주시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의 격려도 굉장한 힘이 됩니다. 세계적인 성악가 파바로티의 이야기입니다. 그가 신인시절에 우연히 무대에 설 기회가 생겼습니다. 세계적인 성악가가 비행기 연착으로 무대에 설 수 없게 되자 파파로티가 대신 노래를 부르게 된 것입니다. 물론 유명한 성악가를 보려고 온 청중들은 신인 파바로티를 향해 불만이 대단했습니다. 파파로티는 정중하게 인사했지만 청중들 반응은 냉담했습니다. 그의 노래는 끝났지만 누구 하나 박수를 하지 않았습니다. 바로 그 때였습니다. 공연장 2층에서 한 아이가 눈에 눈물이 고인 채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아빠, 최고였어요!"

 

실내에 잠시 침묵이 흐르더니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청중들이 모두 일어나 그와 그의 아들에게 우레 같은 박수를 보냈습니다. 그의 아들이 아버지에게 던진 격려 한 마디가 청중들을 감동시킨 순간이었습니다. 훗날 파바로티는 그 날 청중들의 격려가 없었다면 오늘의 자기가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중병 환자들이 힘든 삶 속에서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게 해주는 방법은 방사선 치료와 같은 의술이 전부는 아닙니다. 그들에게 건네는 격려 한 마디가 때로는 어떤 치료보다도 큰 힘이 될 때가 있습니다. 격려는 암을 잘 이겨내는 환자에게는 더욱 힘을 낼 수 있게 해주고, 암 투병이 힘든 환자에게는 없는 힘도 생기게 합니다. 격려가 모여 기적을 만듭니다. 그런데 격려 중의 최고의 격려는 주님의 격려입니다. 주님의 위로가 최고의 힘입니다.

 

"여호와의 눈은 온 땅을 두루 감찰하사 전심으로 자기에게 향하는 자들을 위하여 능력을 베푸신다"고 역대하 16 9절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다윗 왕은 이 세상을 살았던 그 어느 누구보다도 인생의 위기를 많이 경험했던 사람입니다. 항상 죽음의 그림자가 다윗을 따라 다녔습니다. 수많은 정적들이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고 다윗의 목숨을 빼앗아 가려고 했습니다.

심지어는 장인으로부터 쫓기는 신세가 되어서 어떤 때는 동굴에서, 어떤 때는 광야에서, 어떤 때는 수풀 속에서 몸을 피하여 숨어있으면서 하나님을 향해서 자기 마음속을 조여오는 불안감을 이기지 못하고 이렇게 외칩니다.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망하며 어찌하여 네 속에서 불안하여 하는고!" 그리고 이어 이렇게 고백합니다. "너는 하나님을 바라라. 나는 네 얼굴을 도우시는 네 하나님을 오히려 찬송하리로다."

 

하나님은 결코, 단 한 번의 우리의 실수나, 단 한 번의 잘못 때문에 우리를 완전히 포기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아니, 우리가 그분을 버려도 그분은 우리를 버리시지 않는 분이십니다. 오히려 하나님은 우리를 위로하시고 우리의 그 실패의 경험을 통해서 오히려 값진 교훈을 배워 주님께 돌아오기를 기다리십니다.

 

둘째, 삶의 지침을 주시는 하나님

 

주님은 우리에게 "두려워하지 말고 걱정하지 말라"고 위로하실 뿐 아니라, "이렇게 하면 돼!"라고 삶의 지침을 주십니다. 이것은 구체적인 승리의 지침이었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유의할 것은 이것이 여리고 성을 공격할 때의 지침과는 전혀 다른 지침이었다는 사실입니다.

 

여리고 성은 그들이 매일 한 바퀴씩 그리고 마지막 날은 일곱 번을 도는 것으로, 그 성이 무너지는 광경을 우리가 이미 살펴보았습니다. 그러나 아이 성의 전투를 위해서는 하나님으로부터 전혀 다른 전략이 지시되었습니다. 매복 작전입니다.

 

이 말씀은 우리에게 어떤 교훈을 주고 있습니까? 오늘의 싸움을 위해서는 오늘의 전략이 필요합니다. 오늘의 양식을 위해서는 오늘의 만나가 필요합니다. 오늘의 승리를 위해서는 오늘의 은혜가 필요합니다. 어제의 전략이, 꼭 오늘의 삶의 전략이 될 수는 없습니다. 어제의 방법이, 꼭 오늘의 방법이 될 수는 없습니다.

어제의 은혜를 가지고, 오늘을 살 수는 없습니다. 십년 전에 내가 받은 은혜를 가지고, 오늘 내 신앙의 삶을 지탱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오늘의 승리를 위해서, 오늘의 은혜를 위해서, 오늘의 축복을 위해서, 하나님 앞에서의 오늘의 삶의 열매를 위해서, 오늘 우리들은 영적인 양식을 하나님으로부터 공급받고 있는지요?

 

하나님은 여호수아에게 이번에는 전번처럼 3천 명만 보내지 말고 "군사를 다 거느리고 일어나 아이로 올라가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과 7 3절의 말씀을 한번 비교해 보시기 바랍니다. 전날 아이 성을 공격할 때 그들이 어떤 자세로 이 전투에 임했습니까? "여호수아에게로 돌아와 그에게 이르되 백성을 다 올라가게 하지 말고 이삼천 명만 올라가서 아이를 치게 하소서. 그들은 소수이니 모든 백성을 그리로 보내어 수고롭게 하지 마소서." 그들은 "이삼천 명만 올라가서"라고 말했는데, 하나님께서는 "군사를 다 거느리고 일어나 아이로 올라가라"고 하십니다.

 

물론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다시 한 번 전쟁을 치르게 하시지 않고도 아이 성을 정복하도록 하실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왜 하나님께서는 군사를 다 이끌고 가서 싸우도록 하십니까?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승리는 최선을 통해서만 주어진다는 사실을 심어주기 원하셨던 것입니다.

 

우리 자녀들도 최선을 다해 공부해야 합니다. 우리 모두가 자기에게 주어진 시간을 최선을 다해서 사는 삶의 자세를 우리 신앙인들은 가져야 합니다. 그리고 마음을 모으고 뜻을 모으고 함께 총력전을 피워 나가야 합니다.

교회도 힘을 다하는 교회, 하나님 말씀을 바로 배우고 바로 가르치는 그리고 배운 대로 힘써 행하는 최선을 다하는 교회가 되어야 됩니다.

 

어제 성공한 사람이 오늘 또 다시 성공하기 위해서는, 어제 그 성공을 위해서 최선을 다한 것처럼 오늘의 성공을 위해서도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그런데 만약 어제의 승리에 도취되어 오늘 자만심에 빠져 버린다면 그 결과는 명백한 것입니다.

어제의 축복 때문에 오늘 자만심에 빠진다면, 어제의 번영 때문에 오늘 자만심에 빠져있다면, 그래서 그것 때문에 내가 하나님을 바라보지 아니하고, 그것 때문에 내 삶에 최선을 다하지 아니하고, 그것 때문에 오늘 내 삶에 대해서 내가 책임을 지지 않는다면, 어제의 성공, 어제의 번영은 오늘의 저주가 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이렇게 말합니다.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 동물의 왕 사자도 토끼 한 마리 잡는데도 전력을 기울인다고 합니다. 그래도 성공률은 25퍼센트 밖에 안 된다고 합니다.

 

유명한 조각가 미켈란젤로가 시스틴 채플이라는 예배당의 천정 벽화를 그리고 있었습니다. 그 천정은 까마득히 높았기 때문에 그 아래에서는 사실 천정의 모습이 한 눈에 정확하게 파악되지는 않았습니다. 그래도 그는 이 천정의 벽에 가까이 붙어서, 선하나 하나를 정성을 다해서 그리고 있었습니다.

이 광경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친구 한 사람이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여보게, 여기서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네. 그냥 적당히 해두고 내려오게."

그러자 미켈란젤로는 천장에서 그 친구를 향해서 이렇게 소리쳤습니다. "여보게, 이 그림을 다 그린 후에, 이 그림의 성과가 어느 정도인가를 제일 잘 아는 사람이 누구라고 생각하는가?" "그야 자네겠지." "맞네, 내가 알고 하나님이 아시는 한, 나는 최선 이하로 일할 수는 없네."

 

자기의 삶은 자기가 제일 잘 압니다. 자기의 삶에 얼마만큼 최선을 다했는지, 주어진 시간 속에서 주어진 과제를 위해 얼마만큼 최선을 다했는지 자신이 압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아십니다. 나를 보시는 하나님 앞에서, 그리고 내 양심 앞에서 내게 주어진 이 삶의 과제를 위해서 얼마만큼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까?

 

주님은 매복 작전을 지시하셨습니다. 아이 사람들이 지난 번 전투에서 이기고 기고만장해 있었습니다. 기고만장한 그들은 쉽게 판단하고 쉽게 행동할 것입니다. 주님은 아이 사람들의 기고만장한 자만심을 이용해서 전투를 하라고 하셨습니다.

 

주님은 또한 아이 성은 불태우고 그 전리품은 취하라고 하셨습니다. 2절에서는 "너는 여리고와 그 왕에게 행한 것 같이 아이와 그 왕에게 행하되 오직 거기서 탈취할 물건과 가축은 스스로 가지라" 하셨습니다. 여리고 전투에서와는 달리 전리품들을 모두 가지라는 말씀입니다. 승리에 얹어주시는 특별선물입니다.

 

만약 아간이 여리고 성에서 물건들을 훔치지 않고 며칠만 더 기다렸다면 아이 성에서 전리품을 취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사람들에게 항상 최선의 선물을 주십니다.

여기서 우리는 여리고 전투 때에 전리품은 모두 하나님께 바쳐진 것이니 손대지 말라 하셨던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은 오로지 이스라엘 백성의 순종을 원하시고 믿음을 보시고자 하신 것입니다. 전쟁에서 이기고 물질의 복을 누리는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께 달린 일임을 가르치려고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하면 여리고 성에서의 승리 같은 놀라운 복을 누릴 수 있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하지 않으면 아이 성에서의 패배처럼 전리품은커녕 치욕스런 패배와 온 백성의 고통이 주어질 것임을 경험하게 하신 것입니다.

 

사실 하나님께서는 아간에게도 회개할 수 있는 충분한 기회를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아간이라는 범죄자를 색출하는 방법이 아주 인상적이지 않습니까? 하나님께서 이미 범죄자인 아간을 아시는 이상, 범죄자를 뽑는 과정에 있어서 하나님께서 직접 "범죄자, 아간은 나오라"라고 호출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렇게 하시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이 범죄자를 향해 서서히 좁혀 가십니다. 그 과정을 보여주는, 7 16절부터 18절까지의 말씀을 같이 보도록 하겠습니다. 16절부터 18절까지, 같이 읽겠습니다.

 

"16 이에 여호수아가 아침 일찍이 일어나서 이스라엘을 그의 지파대로 가까이 나아오게 하였더니 유다 지파가 뽑혔고 17 유다 족속을 가까이 나아오게 하였더니 세라 족속이 뽑혔고 세라 족속의 각 남자를 가까이 나아오게 하였더니 삽디가 뽑혔고 18 삽디의 가족 각 남자를 가까이 나아오게 하였더니 유다 지파 세라의 증손이요 삽디의 손자요 갈미의 아들인 아간이 뽑혔더라."

 

하나님께서 왜 이런 방법으로 범죄자를 뽑아내셨을까요? 하나님은 이런 방법을 통해서 아간에게 회개할 수 있는 기회를 주셨던 것입니다. 그에게 죄를 자백하고 회개하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마음과,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징계의 손길이 다가오고 있음을 깨닫는 영적인 민감성이 그에게 있었더라면, 그의 삶은 새로운 내일을 기대해도 좋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최후까지 회개를 미루었기 때문에 아간은 결국 멸망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오늘도 하나님은 성경을 통해서 우리에게 삶의 지침을 주십니다. 우리가 성경을 통해서 지혜의 주님을 만나면 삶의 지침을 얻을 수 있습니다.

 

조지 워싱턴 카버 박사는 미국 상원 농업 위원회 앞에서 간증을 했습니다. 카버는 어릴 때 다리가 부러진 경주 말 한 마리 값에 팔린 노예였습니다. 노예로 팔렸던 카버가 후에 땅콩 박사가 되어 미국 상원 농업위원회 앞에 선 것입니다.

상원 의원들이 카버 박사에게 땅콩에 대한 지혜를 어디서 얻었느냐고 물었을 때 카버 박사는 성경에서 얻었다고 했습니다. 성경이 땅콩에 대해서 뭐라고 기록하고 있느냐고 묻자, 카버 박사는 이런 대답을 했습니다. "성경은 땅콩에 대해서는 아무 말을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제게 하나님을 알려주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제게 땅콩에 대한 지혜를 주십니다."

 

우리는 여호수아처럼 주님의 직접적인 육성 지도는 받지 못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통해서 주님이 주시는 지혜를 얻습니다. 주님의 지혜는 우리 인생의 참된 성공의 길잡이입니다.

 

셋째, 다시 약속을 주시는 하나님

 

주님은 여호수아에게 "두려워하지 말고 걱정하지 말라"는 위로의 말씀과 "이렇게 하면 돼!"라는 지침의 말씀을 주신 후에 "내가 이기게 해 줄게"라는 약속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1b절에 보면 "보라! 내가 아이 왕과 그의 백성과 그의 성읍과 그의 땅을 다 네 손에 넘겨주었으니"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주님의 약속은 항상 그대로 됩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주님의 약속을 받아들이기만 하면 됩니다. 주님의 약속에 우리의 믿음을 더하지 않으면 아무 효력이 없습니다. 4 2절을 새번역으로 읽습니다. "그들이나 우리나 기쁜 소식을 들은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들은 그 말씀이 그들에게는 아무런 유익이 되지 못하였습니다. 그들은 그 말씀을 듣고서도, 그것을 믿음과 결합시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두 번째 아이 성 전투는 하나님께서 주도권을 잡으시고 친히 작전을 지시하실 뿐 아니라 성공의 약속까지 해주신 전투였음을 볼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의 첫 말이 무엇입니까?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입니다. 이 말은 이 두 번째 아이 성 전투가 하나님께서 명령하시고 여호수아와 이스라엘은 그 명령을 받아 그대로 순종한 전투였음을 알리는 상징적인 말입니다.

 

이미 승리는 보장되어 있다고 약속하십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작정하셨으므로 그렇게 되리라는 것입니다. 두 번째 아이 성 전투 이야기와 첫 번째 아이 성 전투 이야기의 비교에서 드러나는 뚜렷한 차이점은 여호수아와 이스라엘의 믿음의 자세입니다. 한 번 아간의 불순종과 그로 인한 백성 전체의 실패를 맛본 이스라엘은 두 번째 전투에서는 철저하게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했습니다.

 

8절에서 보듯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백성에게 "여호와의 말씀대로 행하라"고 독려하는 모습이나, 27절에서 읽듯이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명령하신 대로" 이스라엘이 행했다는 기록은 그 사실을 잘 뒷받침하고 있습니다.

 

8절 말씀을 같이 읽습니다. "너희가 그 성읍을 취하거든 그것을 불살라 여호와의 말씀대로 행하라 보라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였느니라 하고."

여기 보면, "여호와의 말씀대로 행하라"고 했습니다. 어제의 경험대로 행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인간적으로 판단하고, 자기 의견대로 행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삶의 중요한 결정을 위해 하나님의 인도를 구하며, 주님의 말씀을 따라 삶의 길을 걸어가는 그리스도인들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주의 말씀은 내 발의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 오늘 이것이 저와 여러분의 고백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아프리카의 콩고에서 사역하시던 스티븐스라는 선교사님의 글에 보면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는 콩고의 정글 한복판에 조그마한 오두막집을 짓고 살면서 지나가던 사람들에게 전도를 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천둥 번개를 동반한 폭풍우가 막 몰아치던 날, 백인 청년 두 사람이 이 선교사님의 오두막집을 찾아왔습니다. 그들은 비바람 속에서 길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사실, 이 정글 속에는 길이라고 말할 수 있는 길이 없었습니다.

 

이들이 선교사의 오두막집 문을 두드리며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저희들은 진스 강을 찾아가야 합니다. 그런데 그 강으로 가는 길을 도무지 알 수가 없습니다. 그 길을 가르쳐 주십시오." 그러자 선교사님은, "유감스럽게도 이 정글에는 길이 없습니다"라고 말합니다. 그러자 백인 청년은, "우리는 그 진스 강에 꼭 도착해야 합니다. 방향이라도 좀 가르쳐 주십시오."

그러자 선교사님은 대답합니다. "여기에서는 방향도 가르쳐 줄 수가 없습니다."

 

얼마나 난감합니까? 그래서 백인 청년들은,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한단 말입니까?" 라고 묻습니다. 이때 선교사는, 빙그레 웃으면서 대답하기를 "방법은 단 하나밖에 없습니다. 그것은 제가 당신들을 데리고 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을 데리고 가면서 나무와 각종 식물로 뒤엉긴 정글에서 인생을 설명했다고 합니다.

 

때때로 우리는 인생의 정글에서 길을 잃어버리고 헤맵니다. 그때 공포와 불안이 우리 마음을 지배합니다. 그러나 어떻게 갈 것인가를 고민하지 마십시오. 나의 가는 길을 아시는 주님이 내 곁에 계시다면! 그분이 내 손을 잡고 인도하신다면 말입니다. 오늘 여러분 곁에, 하나님이 계십니까? 여러분은 날마다 하나님과 동행하고 계십니까? 참으로 하나님과 살아있는 교제를 나누고 계십니까?

 

오늘 여러분이 하나님을 붙들고 간다면, 인생의 수다한 결정의 길목 앞에서 방황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가 가야할 길을 그분이 아시기 때문입니다. 그분이 여러분과 함께 가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분이 결정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현대는 실망의 시대입니다. 주님은 실망하는 우리에게 지금도 "두려워하지 말라"는 위로의 말씀을 주십니다. 현대는 방황의 시대입니다. 주님은 지금도 방황하는 우리에게 "이렇게 하면 된다"는 지침의 말씀을 주십니다. 현대는 불안의 시대입니다. 주님은 지금도 불안해하는 여러분에게 "내가 네게 승리를 주겠다"는 약속의 말씀을 주십니다.

 

주님의 격려, 지침, 약속의 말씀을 붙잡읍시다. 위로하시고 안내하시고 승리를 약속하시는 주님을 바라봅시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제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말씀대로 행했을 때 그들이 얻은 결과는 승리로 나타났습니다. 그것은 축복이었으며, 번영이었으며, 놀라운 영광이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단단히 붙드십시다. 이 좋으신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합시다. 그리고 하나님의 거룩한 인도를 구하십시다. 하나님에게 붙들리면 그래서 하나님의 거룩한 도구로 사용되면 실패를 딛고 성공과 승리를 얻게 될 줄 믿습니다.

우리에게 이 놀라운 축복이 우리와 함께 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파일 첨부

여기에 파일을 끌어 놓거나 파일 첨부 버튼을 클릭하세요.

파일 크기 제한 : 0MB (허용 확장자 : *.*)

0개 첨부 됨 ( / )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16 시험과 유혹[약 1장 12-15] secret 홍목사 2015-04-12  
15 자랑할 것을 자랑하라[약 1장 9-11] secret 홍목사 2015-04-12  
14 지혜가 부족하거든[약 1장 5-8] secret 홍목사 2015-04-12  
13 시련이 주는 유익[약 1장 2-5] secret 홍목사 2015-04-12  
12 시험 속의 기쁨[약 1장 1-3] secret 홍목사 2015-04-12  
11 실패 이후의 조치[수 9장 16-27] secret 홍목사 2015-04-12  
10 여호와께 묻지 아니하고[수 9장 1-15] 홍목사 2015-04-12 1817
9 새로운 헌신[수 8장 30-35] secret 홍목사 2015-04-12  
» 새로운 시작[수 8장 1-9] 홍목사 2015-04-12 386
7 실패를 성공으로[수 7장 1-15] secret 홍목사 2015-04-12  
6 여리고를 무너뜨리는 믿음[수 6장 1-11] secret 홍목사 2015-04-12  
5 여리고 앞에서[수 5장 1-15] secret 홍목사 2015-04-12  
4 신앙의 기념비를 세우라 [수 4장 4-9, 19-24] secret 홍목사 2015-04-12  
3 요단을 건너려면[수 3장 1-13] 홍목사 2015-04-12 1988
2 라합의 믿음[수 2장 1-11] secret 홍목사 2015-04-12  
1 그리하면 형통하리라[수 1장 1-9] secret 홍목사 2015-04-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