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동영상

예수님의 감사[요 11장 38-42]

조회 수 44 추천 수 0 2021.11.20 12:47:52

예수님의 감사[요 11장 38-42]

 

38 이에 예수께서 다시 속으로 비통히 여기시며 무덤에 가시니 무덤이 굴이라 돌로 막았거늘 39 예수께서 이르시되 "돌을 옮겨 놓으라" 하시니 그 죽은 자의 누이 마르다가 이르되 "주여, 죽은 지가 나흘이 되었으매 벌써 냄새가 나나이다." 40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 말이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하시니 41 돌을 옮겨 놓으니 예수께서 눈을 들어 우러러 보시고 이르시되 "아버지여, 내 말을 들으신 것을 감사하나이다. 42 항상 내 말을 들으시는 줄을 내가 알았나이다. 그러나 이 말씀 하옵는 것은 둘러선 무리를 위함이니 곧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그들로 믿게 하려 함이니이다."

 

오늘은 추수 감사 주일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감사절을 주신 것은 우리 믿음을 점검해 보라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예수님의 지상 생애 중에 가장 가슴이 무겁고 답답했던 한 날의 모습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친구 나사로가 죽었습니다. 나사로, 마르다, 마리아 이렇게 오빠와 두 자매가 살고 있었던 이 가정은 예수님이 가장 복음서에 보면 지상에 계실 때 즐겨 찾았던 집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식구들과도 같은 사람들이었습니다. 이 집에 방문할 때마다 예수님은 마음에 쉼과 안식을 얻었습니다. 그런데 이 가정에 가장이었던 나사로가 죽었습니다.

 

11절을 보면 "우리 친구 나사로가 잠들었도다" 하셨고, 33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심령에 통분히 여기시고 또 민망히 여기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35절에 보면 예수님은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고통과 아픔과 슬픔의 현장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드디어 이 집에서 기도를 시작하십니다. 41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돌을 옮겨 놓으니 예수께서 눈을 들어 우러러 보시고 이르시되 아버지여 내 말을 들으신 것을 감사하나이다." 여기 주님의 기도에 뜻밖에도 "감사"라는 말이 나옵니다. 주님의 기도는 감사로 시작되었습니다. 아니 어떻게 이런 상황에서, 이런 형편 속에서 감사가 가능할 수가 있었을까요?

 

첫째, 모든 것을 감사로 해석하는 삶을 사셨기 때문입니다.

 

2005년에 방영된 "장밋빛 인생"이라는 드라마가 있었습니다. 그 드라마의 주인공들이 제목 그래도 장밋빛 인생이었는지 모르겠지만, 40%의 시청률을 기록했다고 합니다. 인터넷을 찾아보니 내용이 두 명의 자녀를 둔 전업주부가 배우자의 외도와 시한부 선고 등을 겪으며 삶을 살아가다가 결국 암으로 죽게 되는 이야기라고 되어 있었습니다. 내용은 모르겠지만, 슬픈 이야기였을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사람은 누구나 장밋빛 인생을 꿈꿉니다. 그러나 원치 않게 어느 날 절망의 나락으로, 아픔의 터널로, 근심과 걱정의 수렁으로 떨어질 때가 있습니다. 예수님 당시 베다니라는 작은 마을에 평화스럽게 사는 세 식구도 그랬습니다. 그들은 마리아와 마르다, 나사로입니다. 이들 가족과 예수님은 각별한 사이였습니다.

 

11장 5절에 보면 "예수님은 본래 이들을 사랑했다"고 했습니다. 3절에 보면 "사랑하는 자"라고 합니다. 36절을 보면 유대인들도 예수님이 나사로를 지극히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인간관계에 "사랑한다"는 말보다 더 가까운 사이를 표현하는 말이 또 어디 있겠습니까? 그런데 이렇게 예수님의 사랑을 받던 가정에 갑자기 위기가 닥쳐왔습니다. 가장인 나사로가 심각한 병이 들었습니다. 주님의 사랑을 받는 사람도 때로 병에 들 수 있습니다. 심각한 실패의 현장에 고통당할 수 있습니다. 주님께 부탁했는데도 문제가 쉽게 풀리지 않고 더 악화될 수도 있습니다. 마리아는 주님께 요청하였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오시지 않으셨습니다. 마리아는 확신이 있었습니다. 주님만 여기 계셨더면 오빠가 죽지 않았을 것으로 확신했습니다(32). 그러나 오빠 나사로는 병은 낫기는커녕 죽고 말았습니다.

 

이런 모습을 보면 우리는 어떤 생각을 합니까? 우리가 이런 일을 당하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이런 일을 당하니까 마리아 가정 식구들은 어떻게 하였습니까? 마리아는 원망하였습니다(32). 예수님이 요구할 때 오셨다면 오빠가 죽지 않았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마르다는 절망하였습니다(39). 예수님께서 돌을 옮겨 놓으라고 하자 마르다가 말하기를 죽은 지가 벌써 4일이나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미 끝이 났다는 것입니다. (3) 유대인들을 빈정거리며 조롱했습니다(36-37). 사랑했다면 죽지 않게 해야지 말짱 말뿐이었다는 것입니다. 맹인을 눈뜨게 했다면 나사로가 병들었을 때 넉넉히 살릴 수 있었을 텐데 왜 죽게 두었느냐는 것입니다.

 

왜 모세같이 온유하고 충성스러운 사람이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하고, 욥과 같이 하나님의 인정받는 사람이 자식들이 죽고 그 많은 재산을 한꺼번에 날려야 하느냐는 것입니다. 왜 다니엘 같은 사람이 포로로 잡혀가고, 왜 의로운 선지자들이 옥에 갇히고 그런 고난을 당하여야 하느냐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때 우리 예수님은 어떻게 하였습니까? 41절을 보십시오. 오히려 감사합니다. 지금 예수님이 감사하는 때는 어느 때입니까? 39절을 보면 나사로가 죽은 지 3일이나 지난 때입니다. 사람들은 불평하고 조롱하고 눈물 흘리며 절망합니다. 예수님도 역시 일어난 슬픈 사건으로 말미암아 감정이 동하여 웁니다. 통분히 여겼습니다. 애처로운 생각을 가지고 매우 침통하게 여겼다는 말입니다. 마음이 비통하여 괴로워했다는 말입니다.

 

예수님도 우리와 같은 정서적 반응을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고통스러워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절망하지 않았습니다. 불평하지 않았습니다. 가장 절망적인 순간 오히려 감사하였습니다. 이미 전개된 상황, 돌이킬 수 없는 과거의 상황을 감사로 해석하였습니다. 일이 잘 되었을 때, 성공할 때, 형통할 때 감사로 해석하는 것은 인간이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가장 절박한 순간에 감사로 해석하는 것은 보통 사람은 힘이 듭니다.

 

제가 "장밋빛 인생"이라는 드라마를 언급했는데, 내용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는 잘 모르겠는데 주인공이 최진실 씨였다고 합니다. 제가 관심을 가진 것은 장밋빛 인생으로 제2의 전성기 맞은 그때 최진실씨가 기자와 인터뷰한 내용입니다.

 

두 아이의 어머니가 되었다가 이혼하고 광고출연 회사로부터 기업 이미지에 상처를 주었다고 30억 손해배상 소송을 당했답니다. 신데렐라처럼 환호를 받던 그녀가 순식간에 무너진 것입니다. 기자가 "지금 이 순간 인생은 살 만한가요?"라고 질문했습니다. 이 질문에 아픈 상처를 딛고 일어선 최진실씨는 이런 대답을 하였다고 합니다. "30대 인생은 너무 힘들었어요. 결혼했고, 이혼했고, 다시 연기자로 복귀했죠. 개인적으로 이렇게 굴곡이 심했던 적은 없었죠. 인생이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 같았어요. 그렇지만 절망 뒤에 바로 희망이 있어요. 하나님께 원망의 기도를 한 적이 있어요. 그런데 자꾸 원망의 기도를 하다 보니까 나중엔 감사의 기도로 바뀌더라고요. '이 고통을 남편을 통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우리 아이들을 통해 주셨다면 저는 정말 죽었을 겁니다'라고요. 그래서 절망으로 시작했던 기도가 나중엔 '하나님, 다시 손 잡아주시고 저에게 희망을 주실 거죠?'라는 내용으로 바뀌었어요. 장밋빛 인생의 시청률이 40% 넘는다기에 먼저 하나님께 감사 기도를 드렸어요. 하나님이 정말 제 손을 옆에서 잡아주는 것 같아요."

 

그 글의 마지막은 이렇게 되어 있었습니다. "환난의 과정을 통해 인생의 진정한 감사가 무엇인지를 깨달은 한 연예인의 진솔한 고백이었습니다."

 

그러나 너무나 안타까운 사실은 이 최진실 씨가 결국 절망을 극복하지 못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입니다. 끝까지 믿음으로 살지 못한 것입니다. 절망적인 순간을 끝까지 감사로 해석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보통 사람들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사람들, 비록 이 땅에 살고 있지만 예수님을 통하여 구원받은 특별한 사람들입니다. 하늘나라의 백성들입니다. 우리는 다 끝나 버렸다고 생각하는 순간, 일이 뜻대로 되지 않아 실패한 순간, 자신의 힘이 지극히 미약하다고 한계 상황을 만나는 순간, 마음이 뒤틀리고 괴로운 순간, 마지막 생을 정리하는 순간에도 감사로 해석해야 할 사람들입니다. 우리의 가장 절망적인 순간이 바로 하나님께 감사하여 축복의 씨앗을 심는 기회입니다. 미래를 불행에서 행복으로 바꾸는 축복의 씨앗을 심을 때입니다.

 

감사하면 미래가 바꾸어집니다. 지나온 것을 감사하면 인간관계가 춤을 춥니다. 감사하면 세포가 흥겨워합니다. 감사하면 인생이 춤을 춥니다. 지나온 추억을 감사하면 인생이 풍요로워집니다. 현재를 상황과 관계없이 행복하게 만드는 축복의 씨앗이 바로 감사입니다. 감사로 해석하면 과거는 아름다운 그림이 되고, 지나온 세월을 통해 감사의 열매를 음미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나의 가장 절망적인 순간이 하나님의 가장 큰 복을 받는 기회가 될 수 있는 비결은 절망적인 순간에 과거를 감사로 해석하는 것입니다.

 

복음서에 예수님께서 감사한 사건이 다섯 번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다 모든 것이 잘 될 때가 아닙니다. 최악의 순간, 절망적인 순간, 뜻대로 되지 않은 순간입니다.

 

첫째는 회개하지 않은 마을 고라신과 벳새다, 가버나움을 보면서 감사로 해석하셨습니다. 마 11장 25절입니다. "그 때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여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 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

 

두 번째는 굶주린 백성 오천 명이나 되는데 먹을 것은 아이 도시락 한 개 있을 때 감사로 해석하셨고(마 14:19), 세 번째는 사천 명을 먹여야 하는데 물고기 7마리와 보리 떡 두 개 밖에 없을 때 감사로 해석하셨습니다(마 15:36).

네 번째는 오늘 본문에 나오는 나사로가 죽었을 때(요 11:41), 다섯 번째는 죽음을 앞두고 최후의 만찬 때 감사하셨습니다(눅 22:17, 19).

 

눅 22:17 이에 잔을 받으사 감사 기도 하시고 이르시되 이것을 갖다가 너희끼리 나누라. 19 또 떡을 가져 감사 기도 하시고 떼어 그들에게 주시며 이르시되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주는 내 몸이라. 너희가 이를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시고

 

모두 어려운 순간들이었습니다. 굶주림으로 고통받는 순간입니다. 이미 사람이 죽어 있는 절망적인 순간입니다. 그리고 자신이 십자가의 죽음을 맞이하는 순간입니다. 예수님은 이 모든 것을 감사로 해석하셨습니다. 감사는 주어진 조건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해석입니다. 해석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어떤 관점에서 해석하느냐에 따라 감사할 수도 있고 불평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부족하여도 감사를 잉태하는 자는 감사를 낳고 풍족하여도 불평을 잉태하는 자는 불평을 낳습니다. 예수님은 모든 것을 감사로 해석하셨기에 이 순간도 감사하신 것입니다.

 

둘째, 아버지 하나님과의 기도의 교제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기도가 어떻게 시작됩니까? "아버지여!" 아버지로 시작됩니다. 바로 이런 가슴이 미어지는 때, 답답하고 그리고 가슴이 아팠던 이 순간에 예수님에게는 "아버지여!"라고 부를 수 있는 대상이 계셨습니다.

 

인생의 이런 절망의 극한 상황에 도달했을 때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르는 행복을 아십니까? 하늘과 땅을 창조하신 하나님, 만물을 붙들어 섭리하시는 하나님, 전능하신 하나님, 전지하신 하나님, 그 하나님을 향해서 감히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행복을 아십니까?

 

시 121편을 보면 무엇을 노래합니까? 시편 121편에 보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도우시며 졸지도 주무시지도 않으시면서 우리를 지키신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낮과 밤에 지키시며 나갈 때나 들어올 때나 이제부터 영원까지 지키신다고 하였습니다. 아마도 이 시인은 예루살렘 성전을 향하여 순례의 길을 떠나 험한 산길을 걸으면서 조용히 자신의 삶을 들여다보며 이 시편을 읊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내가 의식하든 안하든 언제나 나와 동행하시며, 나의 삶이 기쁨을 맛볼 때에도 나를 돌보셨으며, 내가 고통가운데 있을 때에도 나를 떠나지 아니하셨다는 사실을 이 시인은 깨달은 것입니다. 시인은 유다의 광야 길 같이 험한 우리 인생의 길을 생각하면서 그 길에 항상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입니다. 바로 그 천지를 지으신 바로 그분께서 우리 아버지이십니다.

 

우리 사회를 덮고 있는 검은 구름이 우리에게 그늘을 드리운다 할지라도 오늘 우리가 하나님께 감사를 드려야 할 것은 그 검은 구름 너머로 태양이 빛나고 있음을 믿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이루시는 역사의 깊은 속은 보지 못한 채 겉에 나타난 현상에만 집착하여 기뻐하기도 하고 슬퍼하기도 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의 표면에는 때로 파도가 일기도하고 폭풍우가 몰아치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삶 깊은 곳에는 언제나 우리와 함께 계신 하나님의 돌보심과 은총이 깃들여 있습니다. 우리가 감사해야 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기도를 보면 아주 직설적이고 그리고 아주 단순합니다. 예수님의 기도에는 꾸며진 수식어가 없습니다. "아버지!" 아주 단순한 기도입니다. 답답한 가슴, 미어지는 가슴, 이 절박한 상황 속에서 아버지! 아버지! 하나님을 아버지로 믿고 그 하나님 아버지를 부를 수 있는 사람, 이런 사람은 절망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 하나님과 함께 다시 시작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 하나님과 함께 다시 일어설 수 있기 때문입니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신 하나님, 우리는 그 하나님을 믿기 때문입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다"는 창세기 1장 1절의 그 창조는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것을 말합니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시고 불가능을 가능케 하신 하나님, 그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를 수 있는 사람. 이 사람은 언제나 절망할 수 없습니다. 이 사람의 행복을 아십니까?

 

그러나 모든 것을 소유했다고 생각해도 하나님이 없는 사람, 하나님을 잃어버린 사람, 그는 모든 것을 잃어버린 사람입니다. 그래서 저는 인간이 지닐 수 있는 최대의 자원, 최대의 자본이 있다면 하나님 아버지라고 생각합니다.

 

주님은 "아버지!" 아버지 하나님을 향해서 기도를 시작하십니다. 기도는 역경을 수용하게 합니다. 아니 기도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역경을 극복하게 하는 능력을 제공합니다. 기도하면 기적이 일어납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기도의 능력을 체험했습니다. 기도의 축복을 경험했습니다.

 

"기도할 수 있는데 왜 걱정하십니까? 기도할 수 있는데 왜 절망하십니까?" 복음송가가 있듯이 기도할 수 있는 한 우리는 감사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고, 그 하나님을 아버지로 신뢰하는 한 우리 인생은 언제든지 다시 시작할 수가 있습니다.

 

이 가정의 가장, 가장 소중한 친구를 잃어 버렸던 이 상황 속에서도 주님의 기도가 감사로 시작될 수 있었던 비밀이 어디에 있습니까? 주님에게는 아버지 하나님과 살아있는 교제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으로 우리 주님에게 있었던 감사의 또 하나의 비결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하나님께서 하실 일을 바라보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하실 일을 바라볼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기도를 통해 얻는 최대의 유익, 하나님의 도움을 입는다는 것입니다. 기도를 하는 사람, 기도 응답을 체험한 사람들에게 공통된 하나의 특성이 있습니다. 결코 포기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인생의 어떤 상황 속에서도 포기할 필요가 없습니다.

 

미국에서 '성공 세미나'가 있었습니다. 그때 세미나의 강사가 성공한 사람들의 예를 들면서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여러분, 발명왕 에디슨을 생각해 보십시오. 얼마나 실패를 많이 했습니까? 그러나 그가 포기했을까요?" 수강생들은 "포기하지 않았습니다"라고 대답합니다.

"비행기를 처음 만든 라이트 형제도 실험에 많은 실패를 했습니다. 그러나 라이트 형제가 포기했습니까?" 사람들은 "포기하지 않았습니다!"라고 외칩니다.

"처음으로 비행기를 타고 대서양을 횡단했던 찰스 린드버그도 얼마나 많은 실패를 거듭했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가 포기했을까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나서 강사가 또 이렇게 말합니다. "멕키스트가 포기했을까요?"

그러자 대부분의 사람들은 가만히 있었고, 몇 명만이 "포기하지 않았습니다!"라고 외쳤습니다. 사람들은 멕키스트가 누군지 몰랐던 것입니다.

그 중 어떤 사람이 솔직하게 묻습니다. "강사님, 멕키스트가 누구입니까?" 강사가 대답합니다. "멕키스트는 포기한 사람입니다."

 

역사는 포기한 사람을 기억하지 않습니다. 아무도 모릅니다. 역사는 포기하지 않은 사람만 기억합니다. 그만이 살아남습니다. 그만이 쓰임을 받습니다. 결국 포기하지 않는 사람만이 아름다운 역사를 성취하는 것입니다.

 

비록 작은 응답이라 할지라도 기도의 응답을 경험한 사람들은 "아, 이 일을 이렇게 도와주셨구나. 이 문제도 도와주시겠지"라고 믿습니다. 과거에 나를 도우신 하나님, 이제도 우리를 도우시지 않겠습니까? 미래도 우리를 도와주시지 않겠습니까? "그렇다. 하나님은 반드시 나를 도와주신다. 지나간 날 나를 도우셨던 하나님, 오늘이 어둡고 답답하고 괴로워도 하나님께서 나를 도와주신다. 미래에도 하나님은 나의 도움이시다. 나는 이것을 확신한다." 이것이 믿는 자의 고백입니다.

 

우리의 확신의 근거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성실성입니다. 저는 "실수가 없으신 신실하신 하나님"을 찬양할 때 얼마나 감동이 되는지 모릅니다.

 

오늘 본문의 배경을 살펴보면, 나사로가 병들었습니다. 이것이 죽을 병인 것을 안 마리아와 마르다 자매는, 예수님 앞에 도움을 요청하게 됩니다. 11장 3절에 보시면, 이에 그 누이들이, 즉 마르다와 마리아가, 예수님께 사람을 보내어 이렇게 말합니다. "주여, 보시옵소서. 사랑하시는 자가 병들었습니다."

 

주님의 사랑하시는 자가 병들 수가 있다는 사실을 아십니까? 주님 앞에 사랑을 받는 자가 사업에 파산할 수도 있고, 주님의 사랑을 받는 자가 인생의 폭풍우와 파도 속에 휘말려 들어갈 때도 있고, 주님의 사랑 받는 자가 말할 수 없는 삶의 어려움 속에서 외로워하고 답답해하고 잠시 절망할 수도 있습니다.

 

마리아와 마르다가 예수님께 사람을 보내어 이렇게 말하고 있는 속사정을 우리는 넉넉히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습니다. "선생님, 보세요. 선생님이 그렇게 사랑하고 아끼는 우리 오빠가 병에 걸렸어요." 그러나 밑바탕 더 깊은 곳에서, 주님을 향해서 던지고 있는 질문은 이런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예수님, 그런데 왜 주님의 사랑을 받고 있는 우리 오빠 나사로가 왜 이런 병에 걸려야 합니까? 이 죽을 병에, 이런 어려움에, 이런 어두움에 처한 이유가 도대체 무엇입니까?"

 

이에 대한 예수님의 대답이 무엇입니까? 4절에 보시면, "이 병은 죽을 병이 아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다"고 하십니다. 오늘 우리는 예수님의 이 대답을 이렇게 말할 수가 있습니다. "주님을 신뢰하고, 하나님을 신뢰하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결코 우연은 없다. 고통에도, 불행 속에도, 질병 속에도, 우연은 없다." "나사로의 이 질병, 그 배후에는 성실하신 하나님의 분명한 계획이 있다. 마침내 그의 아픔, 그의 고통은, 하나님의 영광을 가져오고야 말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의 성실성에 대한 증언입니다. 이 하나님의 성실성에 대한 예수님의 믿음이, 바로 의심하고, 염려하고, 원망할 수 있었던 이 자리에서 의심과 원망을 넘어서는 이 감사를 가능하게 한 것입니다.

 

우리가 당하는 이 고통과 질병과 죽음까지도, 마침내 하나님의 영광을 가져오는 사건임에 불과하다면, 우리는 감사해야 할 분명한 이유가 있는 줄 믿습니다.

 

그래서 얼마든지 불평하고 원망할 수 있었던 불신의 자리를 넘어서서, 이 무덤 앞에서 드리고 있는 예수님의 기도를 보세요. 다시 41절입니다. "아버지여, 내 말을 들으신 것을 감사합니다." 지나간 날, 하나님께서는 내 기도를 항상 들으셨습니다. 그래서 감사합니다. 그런데 기도가 거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그 다음 42절입니다. "항상 내 말을 들으시는 줄을 내가 압니다."

 

지나간 날 내 기도를 들으신 하나님, 지금도 듣고 계십니다. 지나간 날 나의 도움이신 하나님, 오늘도 나의 도움이십니다. 내일도 나의 도움이십니다. 어제와 오늘, 내일 그리고 한결같은 일관성 있는 하나님의 성실성, 이것이 예수님으로 하여금 어떤 상황 속에서도 감사하게 만든 비밀이었습니다.

 

사도 바울의 생애를 보면 가난과, 굶주림과, 고통으로 점철되어 있으며, 일생을 나그네이자 감옥에 갇힌 죄수로 보냈습니다. 게다가 고린도후서 12장에 보면 바울에게는 치명적인 질병이 있었습니다. 또한, 그는 평생 독신으로 지냈습니다. 그에게 편안히 쉴만한 가정도 없었습니다. 그리고 계속해서 복음을 전하기 위해 고통스런 여행을 다녔습니다. 그는 감사는 커녕, 원망과 불평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 가운데 살았습니다. 그러나 바울 서신을 읽어보세요. 바울 서신에서 가장 많이 나타나는 단어가 무엇입니까? 감사입니다. 바울은 입술을 열기만 하면, 그의 입술에서 터져 나오는 그 언어는 감사의 언어였습니다. 바울이 입술을 열기만 하면 그의 입에서 터져 나오는 노래는 감사의 노래였습니다.

 

그가 전도하다가, 그가 겪은 그 고통들, 바다에서, 산에서, 동족들에게, 이방인들에게, 그가 당했던 그 수많은 어려움과 고통의 사건을 우리는 기억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울이 감사할 수 있었던 그 감사의 진정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만약 바울의 전 생애를 요약하는 인생관을 한마디의 성경 구절로 말한다면, 우리가 로마서 8장 28절의 말씀을 들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는 좋으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성실하십니다. 이 성실하신 하나님이, 우리의 삶속에 허용하는 그 어떤 사건도, 겉으로 볼 때는 그것이 내게 불행이고, 어려움이고, 질병이어도 그것이 결코 나에게 손해가 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이것은 마침내 합력하여 우리에게 선한 유익을 가져올 것이며, 하나님의 영광을 가져오고야 말 것입니다.

 

이 하나님의 신실성에 대한 믿음이 우리들의 마음속에 있다면, 우리는 바울처럼, 삶의 어떤 환경 속에서도 감사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지금은 우리가 고통을 당합니다. 그리고 나는 그 고통의 이유를 설명할 수 없고, 다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지금 내가 흘리고 있는 그 눈물의 이유를 다 알 수는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여러분과 저의 마음속에 이 성실하신 하나님에 대한 신뢰가 있다면, 하나님은 성실하시다는 이 사실에 관한 흔들림이 없는 이 믿음의 고백이 가능하다면, 우리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사할 수가 있습니다. 이런 감사야말로 우리 주님에게서 배운 오직 그리스도인에게만 가능할 수 있는 감사가 아닐 수 없습니다.

 

내게 일어난 모든 사건. 그 사건은, 결국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입니다. 참새 한 마리도, 하나님의 허락이 없이는 떨어질 수 없습니다. 그 사실을 믿으시나요? 우리의 모든 머리카락까지도 하나님 앞에는 다 세신 바 되었습니다. 나는, 우리는, 우리 가정은, 우리 교회는, 우리 민족은 그 하나님의 손 안에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슬퍼하고 낙심하고 주저앉아 있었던 마르다에게 주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본문 40절을 다같이 읽겠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 말이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하시니." 여기 보면 두 가지 중요한 단어가 있습니다. "믿으면 보리라." 따라서 해봅시다. "믿으면 보리라." "믿으면 보리라."

 

믿음의 눈이 있어야 합니다. 오늘은 어둡습니다. 캄캄한 오늘이라는 삶의 현장 그러나 저 건너편에 주님께서 예비하신 영광의 미래를 볼 수 있는 눈, 이 믿음의 눈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히 11장 믿음 장에서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라"고 했습니다.

 

금년 여기까지 살아오면서 두 손을 늘어뜨릴 정도로 절망하고 낙심하는 때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살아계신 하나님, 그 분을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다면 우리는 여전히 행복한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다시 일어설 수가 있습니다. 우리는 새로운 미래 영광의 미래를 향해 걸어갈 수가 있습니다. 우리 하나님께서 그 상처를 씻어 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우리 하나님께서 눈을 들어 미래의 그 찬란한 빛을 바라보게 도와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하시겠습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하나님 다시 시작하겠습니다. 내 인생의 오늘의 상황이 아무리 어둡고 답답해도 기도할 수 있는 특권을 주시고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르게 하신 하나님, 그 하나님의 변함없는 실수가 없으신 그 신실한 사랑으로 인도해 오셨음을 감사합니다. 과거에 나를 도와주신 것처럼 이제 미래도 지키시고 도와주심을 믿고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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