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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영과 고통의 드라마[출 1장 1-14]

조회 수 117 추천 수 0 2018.09.01 23:45:02

번영과 고통의 드라마[출 1장 6-14]

 

6 요셉과 그의 모든 형제와 그 시대의 사람은 다 죽었고 7 이스라엘 자손은 생육하고 불어나 번성하고 매우 강하여 온 땅에 가득하게 되었더라. 8 요셉을 알지 못하는 새 왕이 일어나 애굽을 다스리더니 9 그가 그 백성에게 이르되 "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이 우리보다 많고 강하도다. 10 자, 우리가 그들에게 대하여 지혜롭게 하자. 두렵건대 그들이 더 많게 되면 전쟁이 일어날 때에 우리 대적과 합하여 우리와 싸우고 이 땅에서 나갈까 하노라" 하고 11 감독들을 그들 위에 세우고 그들에게 무거운 짐을 지워 괴롭게 하여 그들에게 바로를 위하여 국고성 비돔과 라암셋을 건축하게 하니라. 12 그러나 학대를 받을수록 더욱 번성하여 퍼져나가니 애굽 사람이 이스라엘 자손으로 말미암아 근심하여 13 이스라엘 자손에게 일을 엄하게 시켜 14 어려운 노동으로 그들의 생활을 괴롭게 하니 곧 흙 이기기와 벽돌 굽기와 농사의 여러 가지 일이라. 그 시키는 일이 모두 엄하였더라.

 

전 7장 14절에 보면 "형통한 날에는 기뻐하고 곤고한 날에는 되돌아 보아라. 이 두 가지를 하나님이 병행하게 하사 사람이 그의 장래 일을 능히 헤아려 알지 못하게 하셨느니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형통한 날을 주실 때가 있습니다. 또한 곤고한 날을 주실 때도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 두 가지를 병행하게 하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인생은 누구나 형통과 곤고함을 골고루 맛보면서 살도록 해 주셨다는 말씀입니다. 성공과 실패를 병행하게 하셨습니다. 우리는 이 놀라운 조화를 통하여 일하시는 하나님의 지혜를 믿음으로 인정해야 합니다.

 

그래서 지혜로운 사람은 형통한 날이 왔을 때 자만하지 않습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인 줄 알고 기뻐하고 감사합니다. 하나님께 영광 돌릴 줄 압니다. 아울러서 곤고한 날을 당했다 할지라도 절망하지 않습니다. 그 속에 하나님의 선하신 뜻이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고 기억하기 때문입니다.

그린 목사님은 말했습니다. "인생의 가장 좋은 일들은 때때로 슬픔이나 고난의 보자기에 쌓여 있음을 발견합니다."

 

어떤 부부가 목사님과 대화를 하는 중에, 남편이 "제 아내는 너무나 드라마를 좋아해요." 하더랍니다. 그러자 그 아내가 "목사님, 저는 드라마를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 일주일에 세 가지밖엔 안 봐요. 월화드라마, 수목드라마, 주말드라마"라고 말했답니다. 사람들이 드라마를 좋아하고 드라마에 빠지는 이유는 인생이 드라마를 닮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오늘 메시지는 번영과 고통의 드라마입니다.

 

오늘 출애굽기 1장을 통해 출애굽의 무대가 열리면서 동시에 그 당시 역사를 살았던 이스라엘 백성이 이러한 번영과 고통의 명암을 동시에 경험하고 있었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결국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의 섭리와 주권 아래서 경험된 인생의 드라마였습니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사람은 누구나 굴곡의 차이는 있지만 번영과 고통을 반복적으로 경험하게 됩니다. 어떤 사람은 많은 고통을 경험하기도 하고, 또 어떤 사람은 고통보다는 더 많은 번영의 때를 누리는 사람들도 없지 않아 있습니다. 그러나 번영과 고통이라는 두 경험의 보편성에서 예외가 될 수 있는 인생은 아무도 없습니다. 우리는 누구나 번영이 찾아올 때 쉽게 낙관적이 될 수 있습니다. 또 고통이 올 때는 쉽게 비관적이 될 수 있습니다.

 

본문은 가나안 땅의 흉년을 피하여 애굽에 들어간 이스라엘 백성들이 경험한 번영과 고통의 무대를 우리들에게 조명해 주고 있습니다. 본문을 묵상하면서 단순히 지금 무대 위에 나타나 있는 번영과 고통의 사건들만을 보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왜 하나님은 이 번영을 허용하셨는가, 왜 하나님은 고통을 허용하셨는가, 라는 역사의 무대 배후에 숨겨진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그래야만 우리들의 인생에서 경험하는 번영과 고통의 뜻을 이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먼저, 출 1장 1-7절까지는 번영의 드라마입니다. 그리고 8절부터는 고통의 드라마입니다. 야곱의 가족은 자기들이 살고 있던 땅에 흉년이 발생하자 흉년을 피하여 요셉의 권고로 애굽 땅으로 이주하게 됩니다. 요즘 식으로 말하면 이민을 간 것입니다. 세월이 어려워지면 이민 가는 사람들이 많이 생기지 않습니까?

 

그런데 5절을 보면 애굽 땅에 70명이 내려갔다고 합니다. 그런데 7절을 보십시오. 70명이 어떻게 되었습니까? "이스라엘 자손은 생육하고 불어나 번성하고 매우 강하여 온 땅에 가득하게 되었더라"고 말씀합니다. 그들은 애굽인들의 공포의 대상이 될 만큼 강해졌습니다. 이들은 그들이 거주하였던 고센 지역의 온 땅에 가득하게 될 만큼 큰 민족이 되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세의 인도로 애굽 땅을 떠날 때 몇 명이었습니까? 출애굽기 12장 37절을 보면 유아와 여자를 빼고 60만 가량이라고 했으므로 이 모두를 합치면 약 200만 명 정도 될 것이라고 추측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70명이 내려가서 200만 명이 된 것입니다. 애굽에서의 이스라엘 백성들의 인구 증가는 세계 역사상 유례없는 번식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의 폭발적인 인구 증가는 아브라함에게 주신 하나님의 약속과 계획을 성취하는 하나의 과정입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계획에 달려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 번영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그것도 자기 본국에서가 아니라 흉년을 피하여 애굽 땅에 내려간 백성들에게 허락하신 이유는 어디에 있습니까? 두 가지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첫째, 개인적인 고통을 보상하시는 하나님의 선하심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들에게 결코 고통만 받으라고 말씀하신 적이 없습니다. 롬 8장 28절은 말씀합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이 말씀은 신약에 있는 말씀이지만 구약과 신약을 관통하는 하나님의 백성들을 위한 일관성 있는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하나님의 백성들이 주장할 수 있는 약속이고, 실제로 모든 시대를 통해서 그리스도인들에게 이 말씀만큼 애송된 말씀이 없을 것입니다. 이 말씀은 바울의 인생관이었고 모든 시대를 살아간 하나님의 백성들의 인생관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고통을 고통 그 자체로 남겨두시지 않으십니다. 고통은 있습니다. 이 고통은 피할 수 없고 하나님의 백성들도 결코 이 고통에서 예외가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고통을 반드시 선으로 변화시켜 주실 것이라고 약속하십니다.

 

창세기를 통해 개인의 고통을 보상하시는 하나님의 선하심을 볼 수 있습니다. 야곱의 가족이 무척 고통스러운 삶을 삽니다. 우선 경제적으로 흉년을 맞이하고 그밖에도 많은 고생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 고통 받고 있었던 가족 중에 한 사람인 요셉을 먼저 애굽 땅으로 보내십니다.

 

형들에 의해서 애굽에 종으로 팔려 간 요셉을 우리는 기억합니다. 처음에 요셉이 애굽의 종으로 팔려갈 때 얼마나 억울하고 분했겠습니까? 그러나 그것이 하나님의 백성들을 구원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선하신 손길인 줄이야 누가 그 당시에 상상이나 할 수 있었겠습니까? 요셉도 그 당시에는 그것이 그들의 고통을 보상하시려는 하나님의 선한 손길임을 예측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나중에 요셉이 자기를 팔았던 형제들을 총리라는 권좌 위에서 만나는 결정적인 순간은 얼마나 감동적입니까? 창세기 45장 5절을 보면 "당신들이 나를 이 곳에 팔았다고 해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이다."라고 말합니다.

 

저는 이것을 바로 요셉이 가지고 있었던 하나님의 주권에 대한 믿음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떤 일도 하나님의 섭리를 떠나 우연히 오는 고통은 없습니다. 당시에는 고통으로 보이고 불행으로 보이지만 이 모든 것 배후에 하나님의 선하신 섭리가 움직이고 있음을 믿어야 합니다. 이 고통은 반드시 변하여 하나님의 선을 성취하고야 말 것입니다. 그리고 드디어 그날이 다가왔습니다.

 

요셉의 감동적인 고백을 다시 한 번 들어보십시오. 창 45장 6-8절입니다. "6 이 땅에 이 년 동안 흉년이 들었으나 아직 오 년은 밭갈이도 못하고 추수도 못할지라. 7 하나님이 큰 구원으로 당신들의 생명을 보존하고 당신들의 후손을 세상에 두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니 8 그런즉 나를 이리로 보낸 이는 당신들이 아니요 하나님이시라. 하나님이 나를 바로에게 아버지로 삼으시고 그 온 집의 주로 삼으시며 애굽 온 땅의 통치자로 삼으셨나이다."

 

그들이 누리는 평화는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고통을 보상하시는 하나님의 선하심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동안 내가 흘렸던 눈물과 괴로웠던 가슴을 아십니다. 내가 지나야만 했던 어두운 터널의 고독을 주님께서는 아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마침내 나를 선하심으로 보상하십니다. 그러므로 내 생애에 번영이 찾아오거든 하나님을 찬양하시기 바랍니다.

 

둘째, 하나님의 뜻을 공동체 안에 이루시고자 하는 하나님의 선하심 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야곱이나 요셉 개인의 섭리뿐 아니라 이스라엘 공동체를 향한 하나님의 공동체적 섭리였다는 사실을 주목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개인을 돌아보시고 개인의 삶 속에도 꾸준히 하나님의 섭리의 손길을 펼쳐 가십니다. 그러나 또한 하나님은 공동체 안에 하나님의 선을 이루고자 하십니다. 교회를 통하여, 우리 민족을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공동체적 섭리가 있습니다. 이 공동체적 섭리의 일환은 무엇이었습니까? 그것은 이스라엘 민족을 강한 민족으로 키워 다시 역사의 무대 위에 세우려는 하나님의 섭리였던 것입니다.

 

불과 70명이 내려왔습니다. 그러나 애굽 땅을 떠나 그들이 다시 가나안 땅으로 갈 때 그들의 수는 얼마나 큰 수였습니까? 더 이상 하나의 가족이라고 말할 수 없는 강력한 민족 공동체를 이루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의 어떤 땅에서 살았습니까? 바로가 이스라엘 백성에게 준 땅은 고센입니다. 이 고센 땅을 받게 된 배경이 창 46장 34절에 나옵니다. "당신들은 이르기를 주의 종들은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목축하는 자들이온데 우리와 우리 선조가 다 그러하니이다 하소서. 애굽 사람은 다 목축을 가증히 여기나니 당신들이 고센 땅에 살게 되리이다." 요셉이 자기 형제들에게 바로에게 그 땅을 요구하라고 코치를 한 것입니다.

 

애굽 사람들은 비옥한 나일강이 있었기 때문에 농사를 많이 지었습니다. 그 당시에 농사를 짓는 사람들은 목축하는 사람들을 아주 무시했습니다. 그런데 요셉은 지리적으로 고센 땅이 목축하기로 매우 좋은 땅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이곳을 차지하면서 애굽 사람들의 간섭을 전혀 받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애굽 사람들은 목축하는 사람들에게서 냄새가 난다고 그들 근처에도 가기를 싫어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고센이라는 아주 비옥한 땅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편안하게 여러 세대를 살아갈 수 있었습니다.

 

게다가 그 당시 애굽은 최대의 강국이었기 때문에 주변 나라들이 전혀 넘볼 생각을 하지 않아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편안하게 자유와 번영을 누릴 수 있었습니다. 성경학자들은 이 고센 땅을 가리켜 "이스라엘 민족의 인큐베이터였다"라고 말합니다. 아주 연약한 생명이었던 이스라엘 백성을 잘 키워서 바깥으로 내놓는 역할을 했던 땅이 바로 고센 땅이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전체적인 하나님의 큰 역사를 조망해 볼 때 하나님의 섭리 안에 이런 계획이 숨어 있다는 사실을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창세기 46장 3절을 보면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나는 하나님이라. 네 아버지의 하나님이니 애굽으로 내려가기를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거기서 너로 큰 민족을 이루게 하리라.'" 하나님께서 미리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명확한 하나님의 섭리인 것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 땅에 내려와 번영의 한 때를 누린 것은, 첫째로 개인적 고통을 보상하시고, 둘째로 하나님의 뜻을 이스라엘 민족 안에 이루시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선한 손길이었던 것입니다. 이 민족을 키워 하나님이 쓰시고자 그들을 축복하셨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삶 가운데 하나님의 축복이 오거든 하나님이 나를 쓰시기 위해 준비하신 번영의 때인 줄 알고 감사하고 찬양하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어느 한 순간 이 번영의 무대가 뒤집히기 시작합니다. 본문 8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요셉을 알지 못하는 새 왕이 일어나 애굽을 다스리더니." 이때부터 문제가 시작됩니다. 요셉을 알지 못했던 새로운 애굽의 통치자가 일어나기 시작하면서부터 운명은 달라집니다. 더 이상 이스라엘 민족은 번영을 경험하지 못합니다. 애굽 정부는 더 이상 이스라엘 민족을 그대로 두지 않았습니다. 강대해져 가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번영 앞에 그들은 위험을 느끼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래서 구체적인 탄압의 음모가 시작되었습니다. 동시에 이스라엘 민족의 운명은 노예의 자리로 전락해 가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그들은 말로 다할 수 없는 고통과 핍박의 회오리를 경험하기 시작합니다. 이제 번영은 고통의 무대로 바뀝니다.

 

14a절에 "어려운 노동으로 그들의 생활을 괴롭게 하니"라는 말이 나오는데 이 '괴롭다'하는 단어가 히브리어로 '마라'라는 단어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물을 찾지 못하다가 물이 있는 오아시스를 가까스로 찾아내게 되었는데 그곳 물이 너무 써서 마시지를 못하고 그곳 지명을 '마라'라고 했습니다. 이 단어는 '쓰다'라는 뜻입니다. 여기 '괴롭게 했다'라는 말은 '마음과 육체가 아파서 쓴 물이 나오도록 학대했다'는 것입니다. 히브리어로 애굽을 '미쓰라임'이라고 하는데 이 말은 '억압'을 뜻합니다. 이제 애굽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종살이하던 땅,' '억압받던 땅'으로 기억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스라엘 민족의 역사의 한 때에 이 고통을 허용하시는 하나님의 섭리의 의미는 어디에 있습니까? 본문에서 몇 가지 답을 찾을 수 있습니다.

 

첫째는, 성공할 수 없는 사탄의 핍박입니다

 

여기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핍박하고 있는 대표적인 지도자는 바로입니다. 그는 사탄의 하수인에 불과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출애굽기를 계속 보면 이 바로가 얼마나 사탄의 도구로 쓰임받고 있는지 보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사랑하는 자녀들의 삶에 고통을 허용하시는 것은 사실입니다. 바로를 통해서 그 핍박이 옵니다. 바로의 배후에 있었던 사탄이 이스라엘 백성을 핍박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 사이에 태어난 사내아이는 모두 나일강에 던져져 죽임을 당함으로 이스라엘 민족의 씨를 말리는 음모가 시작됩니다.

 

하나님의 언약의 백성을 이 땅에서 끊어 버리기 위한 사탄의 음모는 역사를 통해서 계속 반복됩니다. 예수님 탄생 당시에도 헤롯왕이 베들레헴 지경에 태어난 두 살 이하의 아기들을 다 죽이는 사건이 있었습니다. 그렇게 하면 그 안에 메시아도 포함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탄이 궁극적으로 겨냥하고 있는 목표는 메시아, 즉 구세주이신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을 핍박하기 위해 예수님께 속한 백성들을 핍박하는 것입니다.

 

또 어떤 사건이 있었습니까? 구약 에스더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다 죽이려 했던 하만의 음모가 있었습니다. 이것은 부분적으로는 성공한 듯이 보였습니다. 그러나 결코 성공할 수 없었던 결국은 실패한 사건입니다. 결국은 실패한 음모입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그것을 볼 수 있습니다. 12절입니다. "그러나 학대를 받을수록 더욱 번성하여 퍼져나가니 애굽 사람이 이스라엘 자손으로 말미암아 근심하여."

결코 성공할 수 없는 사탄의 핍박입니다. 사탄이 우리를 핍박할 때 사탄을 향해 소리치십시오. "네 핍박은 결코 성공할 수 없느니라." 사탄은 결코 성공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핍박합니다.

 

그것은 이미 태초에 창세기에서부터 예언된 바였습니다. 창세기 3장 15절에 보면 여인의 후손이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한다고 했습니다. 즉, 그리스도는 결국 사탄을 멸망시킬 것입니다. 그러나 그 과정에 있어서 이 뱀의 후손이 여인의 후손에 속한 자들에게도 상당한 피해를 입힐 것입니다. "여자의 후손의 발꿈치를 상하게 한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부분적인 타격이지만 상당한 타격입니다.

 

사탄은 계속 우리를 유혹할 것입니다. 그러나 사탄의 음모는 성공할 수 없다는 사실을 확신하시기 바랍니다. 초대교회 때도 얼마나 격렬하게 핍박했습니까? 그러나 그럴수록 초대교회는 더욱 성령이 충만하여 그리스도를 전하는 위대한 교회로 승리해 갔던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둘째는, 하나님 나라의 열망을 갖게 하는 하나님의 은혜의 사건입니다

 

만약 애굽 땅에서 계속 이렇게 이스라엘 백성들이 번영을 누리며 잘 살았더라면 저 가나안 땅 생각이 났겠습니까? 아마 까맣게 잊어버렸을 것입니다. 그러나 고통을 받자 "아! 하나님께서 우리 민족을 가나안 땅에서 다시 한번 놀라운 백성으로, 그 약속의 땅에서 하나님의 섭리를 이루시겠다고 약속하셨지" 하며 그 하나님의 약속을 기억했습니다. 본향을 향한 그들의 생각을 다시 일깨우게 된 것입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세상이 너무너무 재미있으면 천국 갈 생각을 하겠습니까? 세상을 즐기는 동안은 천국의 소망을 갖기가 어렵습니다. 그러나 갑자기 내가 누리던 번영이 고통으로 변하게 되면 하늘나라의 소망을 갖게 됩니다. 하늘나라의 꿈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고통이 필요합니다. 고통은 하나님 나라의 열망을 갖게 하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종의 신세가 됨으로써, 자유를 빼앗김으로써 자유의 귀함을 알게 되었습니다. 아파야 건강의 귀함을 깨닫듯이 그들은 억압된 종 생활을 겪음으로써 자유를 갈망하게 되었고, 나아가 자유를 향한 도전에 나서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고난을 우리의 삶 속에 주시는 하나님의 의도요 목적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자기의 사랑하는 자녀들이 이유 없는 고난을 당하도록 하시지 않습니다. 애굽 생활이 너무나 좋았다면 이들은 가나안 땅에 갈 생각을 안했을 것입니다. 애굽 생활이 너무나 좋았다면 이들은 하나님을 찾지도 않았을 것이고 이 땅에서 완전히 안주해 버렸을 것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때때로 고통을 주셔서 이 땅에 안주하려는 우리들을 정신 차리게 하십니다. 이 땅이 우리의 종착지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해주시며, 하나님을 찾게 하시고, 눈물과 고통이 없는 하나님 나라를 사모하며 살도록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세상 의지하지 말고 세상에 너무 젖어서 살지 말고, 하나님을 바라보고 하나님을 의지하고 저 하늘나라를 바라보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아주 오래 전에 어느 집사님의 어머니가 시골에 사시다가 암으로 원자력 병원에 입원하셔서 심방을 간 적이 있었습니다. 그 때 그 집사님의 어머님이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아들이 자꾸 예수님 믿고 교회 가라고 했는데 믿지 않다가 벌 받았습니다." 그런데 그 병실에 네 사람이 있었는데 세분이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목사가 심방을 왔다고 하니까 그들도 같이 와서 자리를 앉습니다. 그 병실에 같이 있는 한 분이 집사님의 어머니를 가리키면서 "저 사람은 이제 시간만 나면 성경책을 읽고 기도하는 사람이 되었다"고 합니다.

 

그러자 옆에 있는 환자 한 분은 "자기 집 바로 곁에 교회가 있었고 자기의 자녀들이 교회 다니자고 했는데 교만해서 교회에 나가지 않았는데 암이 걸리고 보니 이제 교회 다니게 되었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러면서 자기 교회 목사님이 말씀하신 "고난이 축복이다." "고난을 통해서 주님께 더욱 가까이 가게 된다"라는 말이 너무 실감있게 느껴진다는 간증을 했습니다. 그들을 위로하기 위해 심방하러 간 제가 오히려 풍성한 은혜를 받았습니다. 그분들을 위해서 간절히 기도했는데 모든 분들이 눈물을 흘리며 하나님께 감사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평생을 아내로부터 전도를 받았으나 수십 년을 교회 근처도 가지 않던 할아버지가 일흔이 넘자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할머니를 따라 교회에 출석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기도나 교회 생활이 어색했던 할아버지의 교회 생활이 그리 쉽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할아버지가 흥분하여 목사님을 찾아갔습니다. "목사님, 아 글쎄 제가 하나님의 기적을 보았지 뭐에요." 「그렇습니까? 어떠한 기적을 보여주시던가요?」 "세상에 제가 요즘 기도 생활을 좀 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그런지 밤중에 자다가 화장실을 가려고 일어나서 화장실 문만 열면 자동적으로 스위치를 안 켜도 화장실 불이 켜지는 거에요." 「그럴리가요? 어떻게 그런 일이…」 "정말이라니까요. 목사님! 믿음이 부족하시군요. 하나님의 기적을 믿지 못하시다니…" 할 말을 잃은 목사님은 어쩔 수 없이 할아버지에게 기적을 보여주신 하나님께 감사기도를 드린 후 할아버지를 돌려보냈습니다.

 

그 후에 할머니를 만난 목사님이 이런 저런 얘기 끝에 할아버지의 기적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그러자 갑자기 흥분한 할머니가 큰 소리로 말했습니다. "이놈의 영감탱이. 어쩐지 요즘 냉장고에서 찌린내가 나더라니…" 이 할아버지가 체험한 기도 응답이 아닌 진짜 응답을 주시는 하나님께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하늘의 소망을 가지고 살기를 원하십니다. 그런데 우리는 가만히 놓아두면 돌아갈 본향보다도 땅 위의 생각이 가득하게 됩니다. 오랫동안 신앙생활을 했더라도 아무런 어려움이 없이, 그저 조용하고 평안하면 나태의 잠을 자게 됩니다. 그 때문에 가끔 고통이 있는 것입니다. 그 때야 비로소 "내가 그동안 너무 기도 없이 살았구나." "내가 너무나 일에 바빠 주님을 잊고 살았구나."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내가 그동안 너무도 순종 없이, 봉사 없이, 열심 없이 살았구나"하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동안 내가 내 지혜만을 의지하고, 교만하게 살았구나"하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래서 시 119편 67절에 시편 기자는 "고난 당하기 전에는 내가 그릇 행하였더니 이제는 주의 말씀을 지키나이다"고 고백하더니 71절에는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말미암아 내가 주의 율례들을 배우게 되었나이다"고 고백합니다. 그래서 우리 신앙인은 고난은 변장된 축복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셋째는, 하나님의 백성을 연단하시는 하나님의 훈련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 고통을 통해서 비로소 기도하기 시작합니다. 1장에서는 구체적인 기도의 모습이 나오지 않습니다만, 출 3장 7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애굽에 있는 내 백성의 고통을 분명히 보고 그들이 그들의 감독자로 말미암아 부르짖음을 듣고 그 근심을 알고.'"

 

그들은 하나님께 부르짖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그 기도를 하나님은 들으셨습니다. 그들은 고통을 당하면서 하나님을 바라봅니다. 그리고 기도하기 시작합니다. 그러면서 그들은 하나님과의 교통이 살아나게 되고 하나님을 의지하게 됩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은 하나님이 쓰실 수 있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이 절대로 쓰실 수 없는 사람은 하나님을 의존할 필요를 느끼지 않는 사람입니다.

 

내 힘으로 내 지성으로, 내 생각으로 인생을 얼마든지 살아갈 수 있다는 교만한 사람은 하나님께 기도하지 않습니다. 고통이 인생을 겸허하게 합니다. 고통을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을 의존합니다. 하나님을 신뢰합니다. 그때 비로소 우리는 쓰임 받는 인생이 될 줄로 믿습니다. 번영만 있으면 언제나 세속화의 위험이 따릅니다. 점차로 하나님을 망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현재 우리나라 상황이 좋지 않다는 사실이 굉장히 가슴 아픈 일이기는 하지만 저는 또 한편의 기대가 있습니다. 이것은 한국교회에 다시 한번 하나님이 영적 부흥의 기회를 주시려는 것으로 믿고 있기 때문입니다. 옛날 우리가 고통스러울 때 전적으로 하나님을 의지하고 주님께 부르짖고 간절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구했던 그 시절을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비로소 하나님을 의존할 준비가 되었을 때 하나님은 우리 민족을 다시 사용하실 것입니다.

 

재미있는 사실은, 애굽은 나일강 물을 어떻게 잘 끌어들일 수 있을 것인가만 생각합니다. 그것만 잘하면 얼마든지 농사를 잘 짓고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애굽 땅의 삶의 철학은 땅을 바라보고 살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가나안 땅은 구조 자체가 달랐습니다. 가나안 땅은 농사가 잘 안되는 곳입니다. 하늘에서 비가 오지 않으면 안 되는 곳입니다. 그러므로 가나안 땅의 삶의 구조는 하나님만을 바라보고 의존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애굽의 풍요 속에 사는 동안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서서히 망각해 갔습니다. 그러나 약속의 땅에 대한 꿈을 회복하면서 그들은 다시 하나님을 의존하는 백성이 됩니다. 고통이 우리로 하나님을 의존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우리는 고난 속에서 하나님을 바라보고 기도하게 됩니다. "오, 주님! 내가 하나님 앞에서 살지 않고 세상 중심으로 살았습니다. 저에게 지금 이런 문제가 생긴 것이 당연합니다." 하고 회개하며 기도하게 되어집니다.

 

우리는 오늘 본문을 통해서 역사의 명암의 드라마를 볼 수 있었습니다. 번영이 올 때 번영 그 자체만을 너무 기뻐하면 안 됩니다. 그 뒤에 숨겨진 나를 축복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헤아리고 겸허하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사용할 줄 아는 지혜를 배워야 합니다. 애굽에 기근 때문에 이민 간 70인, 이들은 세상 사람들이 볼 때, 특별히 당시 최강대국이었던 애굽 사람들이 볼 때 별 것 아닌 자들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 연약한 자들을 통하여 놀라운 역사를 이루셨습니다.

 

고통이 올 때 고통 자체만 생각하고 너무 낙심하지 맙시다. 고통의 배후에 있는 하나님의 뜻을 살펴봅시다. 사탄이 나를 핍박할 때 사탄에게 소리칩시다. "네 음모는 성공할 수 없는 음모다!" 그리고 나로 하여금 하늘나라의 열망을 갖게 하고 나를 연단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기쁘게 받아 드리십시다. 또한 쓰임 받는 하나님의 사람으로서의 삶을 준비하는 시간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지금도 여전히 우리를 사랑하시며, 우리를 향해 놀라운 계획을 가지고 계시는 하나님 아버지! 고통이 올 때도 주님 앞에 나오게 하시고, 번영이 올 때도 더욱 주님 앞에 나오게 도와주시옵소서. 축복의 시간 속에서도 살아 계신 하나님을 향한 시선을 잃어버리지 않게 도와주시고, 고통의 폭풍우 속에서도 살아 계신 하나님의 임재를 놓치지 말고 주님 앞에 나와 기도로 내 인생의 짐을 주님께 의탁하며 살게 하옵소서. 고통 속에서 나를 연단하시고 나를 훈련하시고 내 시선을 하늘로 향하게 하시는 살아 계신 하나님을 바라보게 도와주시옵소서.

 

사랑의 주님, 우리들이 변하는 세월과 환경 속에서도 여전히 기뻐하고, 여전히 주님의 평안을 누리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증언하고, 간증하며, 살아 계신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도구로 쓰임받도록 우리들을 사용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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