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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과 기도 [삼상 1장 1-10]

조회 수 60 추천 수 0 2022.05.21 14:55:19

고통과 기도 [삼상 1장 1-10]

 

10 한나가 마음이 괴로워서 여호와께 기도하고 통곡하며

 

오늘부터 사무엘상 말씀을 살펴보려고 합니다.

 

첫째, 사무엘상 서론

 

원래 사무엘상 ․ 하서는 원래 분리되지 않은 한 권의 책이었습니다. 그러다가 헬라어 구약 역본인 70인 역에서 상 ․ 하 두 권으로 나누기 시작한 것이 전통이 되었습니다. 특별히 사무엘상은 B.C.1105년 사무엘의 탄생부터 B.C.1010년 길보아 전투 중 사울의 사망까지 이스라엘 초기 왕정 체제가 정착해 가던 시대의 이스라엘 역사를 다루고 있습니다. 이 시기는 사사 시대의 쇠퇴와 왕정 시대의 시작이 이루어진 이스라엘 사회 체제의 과도기였습니다. 다시 말해 모세, 여호수아 시대는 물론 사사 시대까지 계속 유지돼 온 신정 체제가 외형적으로는 왕정 체제로 바뀌었습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하나님은 사무엘을 통해 주권적으로 이스라엘의 왕을 택하시고 또 그를 자신의 뜻에 대한 순종을 기준으로 왕을 폐하시거나 세우셨습니다. 이는 결국 이스라엘 왕정 체제가 세워진 것도, 그리고 유지되는 것도 오로지 하나님의 뜻에 따라 되어지는 것임을 보여줍니다. 다시 말해 이스라엘의 정치 체제가 외면적으로는 신정 체제에서 왕정 체제로 바뀌었으나, 이것은 실질적으로는 신정적 왕정 체제가 된 것으로 내면적으로는 한 분 하나님의 통치가 계속된 것임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사무엘상을 통해 이제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가 적용해야 할 것은 무엇일까요? 과거 이스라엘 역사 속에서 형성된 신정 왕국의 형성 과정과 그 결과를 살펴보게 함으로써, 하나님이 이 세상 역사의 주관자이심을 깨달아야 합니다. 나아가 우리로 하여금 이런 신정 왕국의 원형인 영원한 메시아 왕국 즉 훗날 우리 주님이 왕이 되며 영원히 다스리실 천국의 완전한 성취를 대망해야 합니다. 그리고 당시 신정 왕국을 위하여 사역한 사무엘을 본받아 우리도 메시아 왕국을 실현시키는 주님의 선한 사역자들이 되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할 것입니다.

 

사무엘상은 그 중심인물에 따라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먼저 제1부 1~7장은 이스라엘의 마지막 사사이자 첫 선지자로서 사사 시대와 뒤이어진 왕정 시대의 가교역할을 하였던 사무엘의 출생 경위와 그의 사역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제2부 8~15장은 하나님의 통치를 대행할 신정적 왕으로서의 측면은 깊게 인식하지 않고 그저 자기들 민족의 세속적 욕구를 채워 줄 왕을 요구한 이스라엘 민족의 첫 왕으로 등장한 사울이 자신은 물론 전 민족과 더불어 처음에는 성공하였으나 곧 실패하였음을 보여줍니다.

 

끝으로 16~31장은 실패로 치닫는 사울의 왕정 체제 중에 미리 앞날을 위하여 하나님이 신정 왕국에 합당한 왕으로 다윗을 예비하게 하시는 과정과 그와 사울 간의 갈등을 보여줍니다. 그러나 다윗은 사울과 달리 하나님께 의지하는 신앙의 자세로 숱한 위기를 겪으나 자연스럽게 사울이 죽은 후에 이스라엘 왕권을 갖게 됨을 보도함으로써 다윗의 통치를 보여주는 사무엘하서와 연결됩니다.

 

둘째, 한나에게 주어진 고통

 

구약의 역사는 평범한 역사가 아니고,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이루신 위대한 구원의 역사입니다. 그런데 그 구원은 부계와 모계의 두 라인을 통하여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여기서 부계는 다윗의 후손으로 이어지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은 다윗의 후손을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을 지키시고 인도하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러나 다윗의 후손은 어디까지나 겉으로 나타난 열매이고, 그 속에는 모계의 숨은 뿌리가 있었습니다. 게다가 이 모계에는 불임의 여성들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도 그랬지만, 구약 시대에는 하나님의 축복을 받지 못했다는 이유로 아이를 낳지 못하는 여자들을 몹시 업신여겼습니다. 그런데 이들은 주위의 핍박을 통해 낮아지고 낮아지는 연단을 받게 되면서 철저히 하나님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나중에는 믿음으로 임신을 하여 낳은 자녀를 철저히 하나님의 사람으로 키웠습니다.

 

이러한 대표적인 불임 여성이 사라였습니다. 사라는 남편 아브라함의 많은 사랑을 받았지만, 아이를 낳지 못하는 문제로 인해 철저히 낮아져야 했습니다. 그러나 결국 은혜 안에서 오직 말씀의 능력으로 이삭을 잉태하여 낳게 됩니다.

 

본문에 나오는 한나도 불임의 문제로 고통당했습니다. 그녀는 남편의 다른 부인이었던 브닌나로부터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엄청난 무시와 학대를 당했습니다. 그런데 한나는 이러한 과정 속에서 믿음의 사람이 될 수 있었고, 결국 나중에 이스라엘을 위기에서 구원하는 위대한 사무엘을 기도를 통하여 낳게 됩니다.

 

이러한 불임은 세례 요한의 어머니 엘리사벳뿐만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어머니 마리아까지 가게 됩니다. 그런데 마리아는 요셉과 정식으로 결혼한 관계가 아니었기 때문에 아이를 가져서는 안 되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녀는 믿음으로 잉태하였고, 온 세상을 죄에서 구원할 예수 그리스도를 낳았습니다.

 

불임 여인에게서 한 선지자가 태어나는 이야기를 통해, 이스라엘의 왕의 역사를 기록한 사무엘서가 시작되는 이유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먼저는, 성경의 정신이 왕보다 하나의 선지자를 더 우위에 두기 때문에 왕의 가족에 관한 이야기부터 시작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이스라엘에서는 왕이라 해도 자기 멋대로 할 수 없었고, 왕으로 세움을 받는 것도 선지자에 의해서 될 수 있었습니다.

 

사무엘서에서 우리는 선지자가 하나님의 말씀에서 떠난 왕을 책망하고 심지어는 왕을 폐위시키는 경우까지 봅니다. 다른 관점으로는, 하나님이 선지자를 주셨으므로 이미 하나님의 나라가 굳게 세워졌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선지자 시대는 사무엘부터입니다. 물론 모세도 하나님이 세우신 위대한 선지자였고, 사사들도 성령의 능력으로 원수들을 물리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사무엘을 통하여 본격적인 말씀의 시대가 시작되었고, 이스라엘의 왕정이 세워졌습니다.

 

결국, 말씀의 시대가 도래하고 나서 이스라엘의 위대한 왕국이 이루어지게 되었다는 것은 나중에 신약 시대에 예수님의 복음 선포로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이루어지는 것을 보여줍니다. 오늘날에도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면서 사람들의 마음속에 하나님의 통치가 임하게 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처럼 위대한 선지자 시대가 어떻게 시작하고 있습니까? 이 세상의 모든 축복을 다 받아서 부족한 것이 아무것도 없는 그런 행복한 가정에서 시작되고 있습니까?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이스라엘의 선지자 시대는 아이를 낳지 못해서 통곡하는 한 여인의 기도에서 시작합니다. 하나님은 사무엘의 어머니 한나에게 이 세상 대부분의 사람들이 누리는 복을 주지 않으셨습니다. 한나는 이 세상에서 부끄러움을 당하기에 충분한 조건인 아이를 낳지 못하는 불임 여성이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브닌나라고 하는 여자가 괴롭게 하며 극단까지 몰고 갔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한나에게 누구나 누리는 보통의 복을 주지 않으신 것은 '가장 좋은 선물'을 주시기 위해서입니다. 여기서 좋은 선물이란, 믿음으로 잉태하여 낳은 아들을 통하여 이스라엘에 위대한 말씀의 시대가 도래하는 축복입니다.

 

본문 1절입니다. "에브라임 산지 라마다임소빔에 에브라임 사람 엘가나라 하는 사람이 있었으니 그는 여로함의 아들이요 엘리후의 손자요 도후의 증손이요 숩의 현손이더라." '에브라임 산지'로 불리운 이유는 그곳이 에브라임 지파의 영토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곳의 일부는 베냐민 지파의 영토로서 베냐민 지파 사람들이 거주하였습니다. 여기서 그를 '에브라임 사람'이란 말하는 것은 엘가나의 출신 지파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가 에브라임 지파의 영토에 살고 있었다는 말입니다. 엘가나는 레위 지파 사람입니다.

 

2절입니다. "그에게 두 아내가 있었으니 한 사람의 이름은 한나요 한 사람의 이름은 브닌나라 브닌나에게는 자식이 있고 한나에게는 자식이 없었더라."

 

문제 가정 안에서 하나님의 위대한 구원이 시작되고 있습니다. 엘가나는 에브라임 산지에 사는 레위인이었습니다. 당시 레위인들은 이스라엘의 여러 부족 가운데 흩어져서 하나님의 율법을 가르치는 일을 했습니다. 그런 엘가나에게 두 명의 부인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한나의 이름이 먼저 나오는 것을 보면 한나가 아이를 낳지 못했기 때문에 새로 브닌나라고 하는 부인을 얻은 것 같습니다. '한나'는 '풍성한 은혜', '사랑스러움'이란 뜻이고 '브닌나'는 '홍보석', '진주'라는 뜻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두 가지 사실을 생각하게 됩니다. 하나는 레위인 제사장이 어떻게 두 부인을 두었느냐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그가 자식을 신앙적으로 기다리지 못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가 진정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레위인이며 제사장이라면 하나님이 자식을 주실 줄 믿고 기다려야 했습니다. 그런데 그는 그렇게 하지 않고 다른 사람들이 하듯이 두 번째 부인을 두었습니다.

 

신약에서 보게 되는 세례 요한의 부모 사가랴와 엘리사벳은 하나님이 자식을 주지 않으시자 끝까지 기다렸고, 결국 세례 요한이라는 위대한 아들을 얻었습니다. 그런데 엘가나는 아마도 사람들로부터 제사장이 자식의 복을 얻지 못했다는 말을 듣기 싫어서, 율법의 가르침을 깨고 두 번째 부인을 얻은 것으로 보입니다.

 

생각해야 할 또 다른 사실은, 브닌나가 첩이 아니고 정식 부인이었다는 것입니다. 당시에는 지참금을 가지고 결혼하면 정식 부인이 되고, 지참금이 없으면 첩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브닌나가 정식 부인이 된 것을 보면 엘가나가 한나를 사랑하기는 했지만, 한나를 통해 자식 얻기를 포기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3절에 보면 엘가나는 매년 실로에 있는 성전에 올라가서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습니다. 이스라엘 남자들은 유월절, 맥추절, 초막절에 일 년에 세 차례씩 정기적으로 중앙 성소에 나아가 하나님께 제사 드리도록 의무화되어 있었습니다. 3절은 엘가나가 그 같은 의무를 충실히 이행하였음을 말해줍니다. 이러한 사실은 엘가나가 레위인이면서도 두 아내를 거느리는 등 결점을 지닌 자이긴 하나 하나님께 대한 신앙과 열심만은 어느 정도 잃지 않고 있었다는 증거입니다.

 

4절입니다. "엘가나가 제사를 드리는 날에는 제물의 분깃을 그의 아내 브닌나와 그의 모든 자녀에게 주고 ." 엘가나는 제사장의 본분을 잘 감당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제사장 몫의 고기를 부인과 자식들에게 나누어 주었습니다.

 

그리고 한나를 사랑했기 때문에 그녀에게는 두 배를 주었습니다. 5절입니다. "한나에게는 갑절을 주니 이는 그를 사랑함이라. 그러나 여호와께서 그에게 임신하지 못하게 하시니." 한나에 대한 엘가나의 극진한 사랑을 잘 보여줍니다. 이는 남편인 그가 아내의 약점과 부족함을 이해하고 사랑으로 감싸주었음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남편의 이런 사랑이 한나의 고통을 풀어주지는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한나에게 필요한 것은 먹는 고기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한나의 고통은 이런 것이었습니다. '왜 하나님은 보통 사람들에게 주시는 그런 자녀의 축복을 나에게는 주지 않으시는가? 왜 내가 사람들에게 무시당하도록 내버려 두시는가?' 한나의 고통은 사람이 도와줄 수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만약 우리들이 이 세상에서 남들이 누리는 그런 축복을 다 받으면서 산다면 아무것도 부족함을 느끼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면 어떤 문제가 발생하냐면 마치 이 세상의 것이 하나님의 축복의 전부인 줄 알고 더 이상 하늘의 신령한 축복을 기대하지 않게 됩니다. 하나님 앞에 우리에게 주실 축복들이 쌓여 있는데 우리는 눈앞에 있는 것만 전부라고 생각하고 더 이상 다른 것을 사모하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저 하늘의 영원한 축복을 붙들게 하려고 고통을 주시기도 하십니다.

 

그래서 시편 기자는 시편 119편 71절에 “고난 당하는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말미암아 내가 주의 율례들을 배우게 되었나이다.”라고 했습니다. 고난 당할 때 하나님을 의지하고 고난을 이기면 나중에 하나님께서 그 고난을 통해서 오히려 나에게 유익을 주시기 위해 고난을 주셨구나 하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그러므로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하나님의 축복과 비교할 수 없습니다.

 

셋째, 하나님 앞에 나아간 한나

 

우리는 축복을 누리지 못하고 어려움에 빠지게 되면, 쉽게 모든 일에 의욕을 잃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가 비참함 속에서 자포자기하지 못하도록 우리를 충동질하는 악인을 하나씩 붙여 놓으십니다. 마치 양들 속에 염소를 두는 것처럼 말입니다. 한나에게 그 역할을 한 사람이 바로 브닌나였습니다.

 

6절입니다. "여호와께서 그에게 임신하지 못하게 하시므로 그의 적수인 브닌나가 그를 심히 격분하게 하여 괴롭게 하더라." 5절과 6절에 두 번이나 "여호와께서 그에게 임신하지 못하게 하시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한나에게 지금 자녀가 없는 것은 그녀의 육체적 결함 탓이 아니었습니다. 지금 한나의 괴로움과는 별도로 역사의 수레바퀴를 들리고 계시는 하나님의 섭리가 있으며, 이 일로 인해 하나님의 뜻이 성취될 것임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고난을 당할 때 그 고난 속에 하나님의 손길이 있다는 사실을 믿어야 합니다.

 

브닌나를 '그의 적수'라고 했는데 이 말은 한나의 원수였다는 뜻입니다. 한나의 원수는 먼 데 있지 않고, 아주 가까이에 있었습니다. 하지만 한순간도 그녀를 편안하게 내버려 두지 않고 심한 말로 격분시키며 크게 괴롭게 하였습니다.

 

브닌나가 자기도 모르는 가운데 그렇게 한나를 고통스럽게 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브닌나의 뒤에 사탄이 있기 때문입니다. 사탄은 브닌나의 교만을 충동질해서 한나의 마음을 짓밟고 심한 고통 가운데서 괴로워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사탄이 모르는 중요한 사실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백성들을 너무 비참하게 몰아가면, 그들이 하나님 앞에서 결사적으로 기도하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목숨을 걸고 기도하기 시작하면 안 되는 일이 없습니다.

 

평소에 우리는 너무 게으르고 믿음이 부족해서 그런 기도를 하지 않는데 사탄의 공격은 우리에게 좋은 자극제가 됩니다. 약점을 찌르며 우리를 비참하게 만드는 사탄의 공격은, 우리가 그냥 침체되어 있을 수 없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백성들은 그분 앞에 나아가서 필사적으로 부르짖으며 기도하게 되고, 결국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이 이루어집니다.

 

천로역정에는, 크리스천이라는 사람이 순례의 길을 가다가 절망의 거인이 살고 있는 의심의 성에 들어가는 장면이 나옵니다. 절망의 거인은 자신의 부인인 '자포자기'로부터 두 사람을 자살하게 만들라는 요구를 받고는, 그들을 매일 굶기고 때리면서 계속해서 자살하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 두 사람은 결국 약속이라는 열쇠를 가지고 문을 열고 도망치게 됩니다.

 

마귀는 사람의 마음 안에 있는 분노의 감정을 자극해서 우리가 스스로를 해치고 학대하게 합니다. 브닌나가 원한 것은 한나가 그런 식으로 자포자기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이 세상은 막혀 있어도 하늘에는 길이 있는 법입니다.

 

7, 8절입니다. "7 매년 한나가 여호와의 집에 올라갈 때마다 남편이 그같이 하매 브닌나가 그를 격분시키므로 그가 울고 먹지 아니하니 8 그의 남편 엘가나가 그에게 이르되 '한나여, 어찌하여 울며 어찌하여 먹지 아니하며 어찌하여 그대의 마음이 슬프냐? 내가 그대에게 열 아들보다 낫지 아니하냐?' 하니라."

 

이런 일이 매년 거듭되었습니다. 엘가나는 한나에게 고기를 배나 주며 사랑했지만, 브닌나는 그것 때문에 더 펄펄 뛰면서 한나를 공격했습니다. 브닌나는 한나가

자녀가 없는 것을 하나님의 형벌로 이해하여 그녀를 괴롭히며 마음을 아프게 만든 것입니다. 더욱이 그러한 브닌나의 행동은 엘가나가 자신보다 한나를 더 사랑한 것에 질투심을 느꼈기 때문에 비롯된 것입니다.

 

8절에 보면 그는 '어찌하여'를 세 번이나 반복하고 '울며', '먹지 아니하며', '마음이 슬프냐'라는 말을 사용하여 한나에 대한 세심하고도 애틋한 사랑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가 '내가 그대에게 열 아들보다 낫지 아니하냐'라고 위로하였긴 하나 아들이 없어 애통하는 한나의 슬픔을 씻어줄 수는 없었습니다. 남편의 어떤 따스한 말도 한나의 아픔을 달랠 수 없습니다. 하나님 아니면 채울 수 없는 근본적인 결핍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한나를 위로하며 음식을 먹으라고 권하던 엘가나는 어떤 의미에서 남자들의 세계보다 더 무섭고 냉혹한 여인의 세계를 잘 알지 못했습니다. 브닌나는 그렇게 어리석은 여자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남편이 있을 때에는 아주 상냥하게 하다가 남편만 보이지 않으면 무서운 표범이나 살쾡이로 돌변해서 한나를 공격했습니다.

 

하지만 한나의 고통은 브닌나가 없어져야 해결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반드시 하나님이 해결해 주셔야 할 문제였습니다. 결국 브닌나의 공격은 그냥 남편의 사랑에만 만족하며 살았을 한나를 하나님 앞에 나아가게 하는 도구였습니다. 한나는 고통 속에서도, 남편을 원망하거나 브닌나에게 대적하지 않았습니다. 자신의 모든 문제를 가지고 오직 하나님께 나아가서 모든 것을 다 털어놓았습니다.

 

한나가 사람이 해결할 수 없는 문제를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간 것은 아주 잘한 일입니다. 왜냐하면 모든 어려움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만나게 하는 기회이기 때문입니다. 마귀는 하나님이 우리의 어려움을 해결하지 못하거나 안 하실 것이라고 생각하게 만듭니다. 그러나 바로 그때 믿음이 필요합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해결하실 수 있음을 믿어야 합니다.

 

한나는 그 믿음 안에서 하나님께 자신의 모든 괴로움을 쏟아 놓았습니다. 9절입니다. "그들이 실로에서 먹고 마신 후에 한나가 일어나니 그 때에 제사장 엘리는 여호와의 전 문설주 곁 의자에 앉아 있었더라." 여기 한나가 일어났다고 합니다. 이 일어섬은 하나님을 찾고 갈망하는 일어섬입니다.

 

10절입니다. "한나가 마음이 괴로워서 여호와께 기도하고 통곡하며." '마음이 괴로워서'를 직역하면 '영혼이 괴로워서'입니다. 이는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나오는 아픔과 슬픔을 잘 나타내줍니다. 공동 번역은 '기도하고 통곡하며'를 '흐느껴 울며 애원하였다'로 번역하여 그 의미를 더욱 잘 살려 의역했다고 생각됩니다.

 

한나의 기도는 어떤 의미에서 기도가 아니고 눈물이었고 통곡 그 자체였습니다. 한나는 사람들에게 말할 수 없었던 마음의 모든 고통과 설움을 하나님 앞에 다 쏟아냈습니다. 그리고 본문 뒤에 보면 하나님은 이러한 한나의 눈물의 기도를 결코 외면하지 않으시고 놀랍게 응답해 주셨습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우리가 사용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무기가 기도라는 것을 자주 잊어버립니다. 어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자신의 힘으로 이리 뛰고 저리 뛰는 것은 마치 소총을 쏘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은 마치 대포로 공격하는 것과 같습니다. 적이 새카맣게 몰려올 때 소총만으로 해결되지 않으므로, 하나님께 지원 요청을 해야 합니다. 그러면 잠시 후 하늘에서 수많은 폭탄이 떨어지며 적을 물리치게 될 것입니다. 인간의 힘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가 생기면 바로 지금 하나님께 지원 요청을 하라는 뜻임을 알아야 합니다.

 

본문은 외면적으로만 보면 자식이 없는 한 레위 집안의 이야기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언약 민족인 이스라엘 공동체의 정치 체제가 대전환을 이루는 중대한 과도기에 하나님의 사람으로 사역할 당신의 종을 하나님이 미리 예비하시는 사건이었습니다. 이렇게 볼 때 우리는 한 작은 집안의 생활에까지 간섭하셔서 이를 통하여 전 구속사의 전개를 예비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깨닫게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은 인간 그 누구도 미처 깨닫고 있지 못할 때에도 훗날의 구속사를 은밀히 예비하심을 깨닫게 됩니다. 또한, 사무엘이 출생하던 사사 시대 말기와 같은 극심한 타락과 신앙 퇴조의 시대에도 훗날을 위하여 자신의 구속사의 종을 예비하심으로써 하나님은 구속사의 맥을 계속 이어가셨음을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구속사는 거창한 사건 속에서만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 이처럼 한 작은 집안의 일상생활을 통해서도 진행되고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구속사는 비록 우리가 깨닫지 못하고 있는 순간에도 태초부터 종말까지 끊임없이 하나님의 택한 자의 크고 작은 삶의 현장을 통하여 이어져 내려오고 있습니다.

 

한나가 브닌나의 핍박을 견디다 못해 하나님께 기도하여 사무엘을 얻게 된 것은 실로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와 은혜의 결과가 아닐 수 없습니다. 이것은 전혀 희망이 없는 것 같은 암담한 시대 상황에서도 하나님께선 당신의 구속사를 진행시켜 가시는 하나님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더욱이 한나로 하여금 고통 중에 기도하게 하시고 그 기도에 응답, 사무엘의 출생을 허락하신 것은 인간의 모든 역사 모든 일 속에는 전적으로 하나님의 깊으신 뜻과 계획이 내포되어 있음을 일깨워 줍니다.

 

지금 우리 자신의 삶도 곧 구속사의 연속임을 깨달아 우리의 일거수일투족을 하나님 앞에서 행하는 각오로 살아가는 우리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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