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tegory

  1. Daerew 4
  2. 메시지
  3. 주일예배


요나단의 신앙 [삼상 20장 5-16]

조회 수 21 추천 수 0 2023.03.04 14:01:07

사무엘상 강해

 

요나단의 신앙 [삼상 20장 5-16]

 

 

5, "다윗이 요나단에게 이르되 내일은 초하루인즉 내가 마땅히 왕을 모시고 앉아 식사를 하여야 할 것이나 나를 보내어 셋째 날 저녁까지 들에 숨게 하고."

 

 

성경에 나오는 그 위대한 다윗도 요나단이 없어서는 생존할 수가 없었습니다. 중요한 것은 이 다윗과 요나단의 우정은 신앙으로 맺어졌다는 사실입니다. 본문에 '여호와'라는 단어가 많이 나오는데, 반복되어 나오는 단어는 그만큼 중요하다는 뜻입니다. 본문에 나오는 요나단과 다윗, 두 사람의 우정의 관계는 단순한 인간적인 관계가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을 중심으로 신앙으로 맺어진 관계라는 것입니다. 특별히 본문에 나타나는 요나단의 모습은 아름답고 숭고하기까지 합니다.

 

 

첫째, 다윗을 도와주는 요나단

 

 

요나단으로부터 도움을 약속받은 다윗은 사울의 의중을 알아보기 위하여 한 방법을 요나단에게 제시합니다. 그 결과 사울이 다윗을 죽이려는 마음에 조금도 변함이 없음을 확인하게 되는 내용이 본문입니다.

 

 

요나단이 도와주겠다고 하자, 다윗은 요청합니다. 5절입니다. "다윗이 요나단에게 이르되 내일은 초하루인즉 내가 마땅히 왕을 모시고 앉아 식사를 하여야 할 것이나 나를 보내어 셋째 날 저녁까지 들에 숨게 하고." 새번역으로 읽어봅니다. "다윗이 요나단에게 대답하였다. '내일은 초하루일세. 내가 임금님과 함께 앉아서 식사를 해야 하는 날일세. 그러나 내가 외출을 할 수 있도록 주선하여 주게. 나가서 모레 저녁때까지 들녘에 숨어 있겠네.'"

 

 

'매월 첫날'은 문자적으로는 '새로운 달'(new moon, 월삭일)입니다. 이는 처음 것이 여호와의 것이므로 마땅히 봉헌해야 함을 기념하기 위하여 제물을 하나님께 바치는 절기였습니다. 이 날은 속죄제를 드려 지난 한 달 동안 지은 죄를 하나님께로부터 용서받고 새 마음을 다지는 등의 종교적 행사와 아울러 민간 축제가 거행되었습니다. 초하루의 식사는 아마도 가족이나 친척 단위로 함께 모여 공동 식사를 했던 것 같습니다. 따라서 다윗도 사울의 사위였으므로, 마땅히 사울의 식탁에 참석하여야 할 자격과 의무가 있었습니다. 이때 다윗이 식탁에 함께 앉지 않았던 것은 특히 더 두드러지게 인식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다윗이 요나단에게 셋째 날 저녁까지 들에 숨게 해달라고 요청한 까닭은 관례상 초하루 잔치는 이틀 동안 계속되었으므로, 이에 따라 '제 삼일'에야 요나단이 자신에게 사울의 반응을 알릴 수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들'에는 문자적으로는 '그 들에'입니다. 이처럼 여기에 정관사 '그'가 붙었다는 사실은 여기의 '들'이 다윗이 전에 숨었었던 궁전 근처의 '들'이었음을 시사해 줍니다.

 

 

매월 첫날에 온 가족이 모여서 식사를 하는데, 이틀 동안 하게 됩니다. 그날이 시작하는 저녁 식사와 그날을 다 보내는 저녁 식사 두 번에 걸쳐 행해졌습니다. 그런데 온 식구가 모이기 때문에 마땅히 왕의 사위인 자신이 그 잔치에 반드시 참여해야 합니다. 그러나 위험하기에 자기가 갈 수 없어서 셋째 날 저녁까지 숨어 있겠다는 것입니다. 다윗은 월삭 하루 전날로부터 제 삼일, 즉 월삭 기념 식사가 마치는 시점까지를 왕의 심경을 알 수 있는 시간으로 제시한 것입니다.

 

 

그리고 이어 6절에 이렇게 부탁합니다. "네 아버지께서 만일 나에 대하여 자세히 묻거든 그 때에 너는 말하기를 '다윗이 자기 성읍 베들레헴으로 급히 가기를 내게 허락하라' 간청하였사오니 이는 온 가족을 위하여 거기서 매년제를 드릴 때가 됨이니이다 하라."

 

 

여기의 '가족'은 이새의 가족입니다. 다윗은 베들레헴에서 제사를 드리겠다고 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 대한 제사가 지역적으로 드려진 까닭은 실로의 중앙 성소가 파괴된 후, 새로운 중앙 성소가 아직 세워지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상황에서는 제단이 있는 곳을 중심으로 소가족 단위로 각종 제사가 드려질 수 있습니다. '매년제'는 가족 단위로 유월절, 칠칠절, 수장절 중 하나를 택하여 매년 1차례씩 드리던 제사를 말합니다. 그래서 여기의 '매년제'는 유월절, 맥추절, 수장절 중의 하나였을 것입니다. 지금 다윗이 이러한 제사에 참석하여야 한다고 내세운 것은, 사울의 월삭 잔치에 불참하는 명분이 되기에 충분하였습니다. 이처럼 다윗은 지극히 정상적이고 합리적인 여건을 조성함으로써 사울의 심중을 밝히 알고자 했던 것입니다. 아마도 그때 베들레헴에서 이 매년 제사가 그의 가족에 의해 드려진 것도 사실이었을 것입니다.

 

 

7절입니다. "그의 말이 좋다 하면 네 종이 평안하려니와 그가 만일 노하면 나를 해하려고 결심한 줄을 알지니." 새번역으로 읽어봅니다. "그 때에 자네의 아버님이 잘 했다고 말씀하시면, 나에게 아무런 화가 미치지 않겠지만, 자네의 아버님이 화를 내시면, 나를 해치려고 결심하신 것으로 알겠네."

 

 

요나단을 통해 전달될 다윗의 처사에 대하여 만일 사울의 반응이 긍정적일 경우 그것은 그가 다윗을 기뻐한다는 증거요, 만일 부정적으로 나타난다면 그것은 사울이 다윗을 여전히 증오한다는 증거입니다. 그러므로 다윗은 그러한 방법을 통하여 사울의 마음을 알기를 원했습니다. 이는 사울이 사무엘 선지자가 이끄는 선지 학교 나욧으로 가던 도중 체험한 '하나님의 영에 의해 사울이 변하지 않았을까?' 기대했던 것 같습니다. 다윗은 향후 자신에 대한 사울의 의지를 알아볼 필요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사울 왕의 반응을 보기 위해서 요나단에게 도와달라고 부탁한 것입니다.

 

 

8절입니다. "'그런즉 바라건대 네 종에게 인자하게 행하라. 네가 네 종에게 여호와 앞에서 너와 맹약하게 하였음이니라. 그러나 내게 죄악이 있으면 네가 친히 나를 죽이라. 나를 네 아버지에게로 데려갈 이유가 무엇이냐?' 하니라."

 

 

여기 '그런즉'은 7절의 내용과 연결시켜 주는 상관 접속사입니다. 곧 다윗의 '인자히 행하라'는 이 말은, '상대방과 맺은 언약을 진실되게 이행하라'라는 의미입니다. 즉 사울이 다윗이 베들레헴에 매년제를 드리러 갔다는 요나단의 보고에 대하여 사울이 부정적인 반응을 보일 경우를 가상해서 요나단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말입니다. 사실 사울이 죽이려 할 경우 다윗은 요나단의 도움을 받아 도망칠 수밖에 없는 형편이었습니다. 여기의 '인자'는 언약적 관계에 따라 베풀어지는 특별한 사랑 및 은총을 말합니다.

 

 

다윗이 어떠한 근거로 요나단에게 도움을 청할 수 있었습니까? 그 뒤에 나오는 "네가 네 종에게 여호와 앞에서 너와 맹약하게 하였음이니라"가 그 근거입니다. 이 우정의 언약의 주체자가 요나단 자신이었고, 또한 여호와의 이름으로 맹세한 당사자는 반드시 그것을 이행하여야만 한다는 규례를 근거로 요나단에게 자신의 위기를 극복하는데 도움이 되어 줄 것을 요구하였던 것입니다.

 

 

이어 다윗은 요나단에게 '너도 나에게 죄악이 있다고 생각하거든 나를 죽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즉 다윗 자신의 무죄와 결백을 강조하는 말입니다. 다윗은 이 같은 말을 함으로써, 요나단이 부친 사울의 뜻과는 달리 자신을 돕는 일이 하등에 거리낌 없는 옳은 행위임을 강력히 호소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 앞에서 매사에 진실하고 정의롭게 살아가는 자는 어떠한 환경에서도 떳떳하고 담대한 신앙을 소유하게 됨을 보여 줍니다.

 

 

새번역으로 8절을 읽어봅니다. "자네는 이미 주님 앞에서 나와 가까운 친구로 지내기로 거룩한 언약을 맺었으니, 나에게 친구의 의리를 꼭 지켜 주게. 그러나 나에게 무슨 허물이 있다면, 자네가 직접 나를 죽이게. 나를 자네의 아버님께로 데려갈 까닭이 없지 않은가?"

 

 

이어 9절입니다. "요나단이 이르되 '이 일이 결코 네게 일어나지 아니하리라. 내 아버지께서 너를 해치려 확실히 결심한 줄 알면 내가 네게 와서 그것을 네게 이르지 아니하겠느냐?' 하니." 새번역입니다. "요나단이 대답하였다. '결코 그런 일은 없을 걸세. 우리 아버지가 자네를 해치려는 결심을 한 줄을 알고서야, 내가 어찌 그것을 자네에게 곧 알려 주지 않겠는가?'"

 

 

'이 일이 결코 네게 일어나지 아니하리라'는 말은 문자적으로 '그것이 네게로부터 멀리 있다'란 의미를 갖는 감탄문으로 요나단이 다윗에게 위로와 확신을 주는 말입니다. 요나단은 자신의 손으로 다윗을 죽인다든지, 또는 다윗을 사울에게로 데리고 간다든지 하는 일이 결코 다윗에게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10절입니다. "다윗이 요나단에게 이르되 '네 아버지께서 혹 엄하게 네게 대답하면 누가 그것을 내게 알리겠느냐?' 하더라." 새번역입니다. "그러나 다윗은 요나단에게 물었다. '혹시 자네의 아버님이 자네에게 화를 내면서 대답하시면, 누가 그것을 나에게 알려 주겠는가?'"

 

 

여기의 '대답하면'은 요나단이 다윗의 행동에 대해 변명하고, 또한 다윗에 관한 사울의 음모를 알아내려고 사울에게 질문했을 경우 사울이 요나단에게 보일 반응을 말합니다. 따라서 '엄하게 대답하면'은 다윗의 행동에 대해 사울이 격노하고, 아울러 사울이 자신의 음모가 다윗의 귀에 들어가지 못하도록 협박하거나, 방해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럴 경우 '누가 그것을 내게 알리겠느냐?'라고 물었습니다. 다시 말해, 사울로부터 자신을 죽이려는 음모에 관한 정보를 요나단이 입수했다고 해도, 사울의 방해와 협박 때문에 요나단이 자신에게 그 사실을 알리는 일이 결코 쉽지 않을 것이라는 말입니다.

 

 

11절입니다. "요나단이 다윗에게 이르되 '오라, 우리가 들로 가자' 하고 두 사람이 들로 가니라." 여기 '들'은 문자적으로는 5절에 말씀하는 '그 들'로 사울 궁전 근처의 들판을 가리킵니다. 요나단과 다윗은 아무도 모르는 둘만의 신호를 만들기 위해 들로 나간 것입니다.

 

 

영어에서 성도(saints)라는 말은 단수가 아니라 복수입니다. 성자들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아무개 성도'라는 말은 서로 협력의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나 홀로 서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같이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개인이 아니고 한 공동체입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한 몸이라고 지체를 설명해 주었습니다. 그러므로 서로 협력하고 서로 도와주고 서로 아픔을 같이 나눌 때 진정한 성도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성도는 자신의 것을 내놓음으로써 몸의 공동체에서 은혜의 덤으로 사는 체험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남극에 있는 펭귄은 서로 협력해서 겨울철을 난다고 합니다. 남극의 겨울은 추울 때는 영하 60, 70도가 되고 태양도 뜨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 추운 겨울을 펭귄은 서로 같이 원을 그리고 몸을 맞대고 산다고 합니다. 그래서 자신의 체온에 의지해서 사는 것이 아니라 자기 체온을 다른 펭귄에게 줌으로써 상대방의 체온을 자기 것으로 삼아 그 혹독한 겨울의 추위를 이겨 낸다는 것입니다.

 

 

주님은 마태복음 18장 20절에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전도서 4장 12절에는 "한 사람이면 패하겠거니와 두 사람이면 맞설 수 있나니 세 겹 줄은 쉽게 끊어지지 아니하느니라"라고 했습니다. 오늘 우리의 신앙은 내 개인이 표출되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를 통해서 나타나야 합니다. 본문의 요나단과 다윗처럼 말입니다.

 

 

본문에 나오는 요나단의 모습은 자기 상실이고 자기 것을 내려놓는 모습입니다. 요나단은 확고한 신앙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하면 우리가 요나단처럼 이런 확고한 신앙을 가질 수 있겠습니까?

 

 

둘째, 요나단의 확고한 신앙

 

 

전 세계 헤비급 권투 챔피언인 조지 포먼은 그의 자서전에서 하나님을 만나게 된 사실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1976년 4월 30일 푸에토리코에서 지미 영과 경기를 했는데, 패한 후 녹초가 돼서 탈의실에서 있다가 극히 짧은 시간이지만 죽음을 체험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순간에 주님과 만나고 결국 그곳에서 완전히 새롭게 변화를 받았다고 합니다. 아내의 열심 있는 신앙생활로 인해서 45세 은퇴 후에 다시 한번 챔피언 벨트를 차지했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휴스턴에 있는 지저스 크라이스트 교회의 담임목사로 시무하면서 이제는 신앙의 챔피언이 되기를 원한다고 하면서, 교인들에게도 신앙의 챔피언이 되라고 말씀을 전하고 있다고 합니다.

 

 

우리 자녀들이 어렸을 때는 부모의 손을 잡고 교회를 나옵니다. 그러다가 중고등부 시절에도 교회를 나옵니다. 그러나 대학에 가면 교회를 등집니다. 통계에 의하면 85%가 대학에 가면 교회를 안 다닌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대학에서 가르치는 교수들이 거의 하나님이 없다고 하는 무신론자들이기 때문입니다. 젊은이들의 이성에 호소하기 때문에 거기에 다 넘어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젊은이들이 '우리 부모님들은 좀 무식해서 이렇게 예수 믿는 거지, 이게 아니구나'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신앙생활 잘 하는 젊은이들을 보면 복 되다고 생각합니다. 어렸을 때 신앙 교육을 제대로 하지 않으면 우리의 자녀들이 하나님을 떠나게 됩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철저하게 신앙훈련을 받지 않으면 다 유혹에 넘어지게 됩니다. 우리의 눈과 귀는 항상 유혹에 아무런 방패 없이 노출되어 있습니다. 그저 듣는 것이 죄요, 보는 것이 죄뿐인 세상에서 철저하게 신앙훈련을 받지 않으면 이 마지막 시대에 믿음으로 바로 서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디모데후서 1장 12절에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이로 말미암아 내가 또 이 고난을 받되 부끄러워하지 아니함은 내가 믿는 자를 내가 알고 또한 내가 의탁한 것을 그 날까지 그가 능히 지키실 줄을 확신함이라."

 

 

디모데후서는 사도 바울의 마지막 서신입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의 감옥에서 언제 어느 때 세상을 떠날지 모르는 위기에서 그의 신앙은 이처럼 확고했던 것입니다. 내가 의지했던 그 하나님을 지금도 나는 의지하겠다는 것입니다. 부활장이라고 부르는 고린도전서 15장 마지막 절인 58절에는 이렇게 권고했습니다.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 앎이라." 사도 바울은 자기의 신앙도 확고할 뿐만 아니라, 우리들에게 확고한 신앙을 가지고 흔들리지 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첨단과학이 발달하고 지식과 정보의 소통이 빨라지고 문화가 화려해지고 풍요로운 생활을 하지만 사람들의 생각과 마음에 깊이가 없어져 갑니다. 무엇보다도 성도들에게 깊은 신앙과 영성이 사라져가고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의 비극이고 슬픔이고 아픔입니다. 깊이가 없는 기도, 깊이가 없는 예배, 깊이가 없는 봉사, 깊이가 없는 사랑이 오늘 우리의 문제입니다. 깊이 있는 확고한 신앙, 하나님과 나 사이에 확실한 신앙이 우리에게 필요합니다. 지금 우리에게 당면한 어려움은 경제문제나 사회적인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깊은 영성이 없다는 사실입니다. 요나단의 신앙은 어떠했습니까?

 

 

첫째로, 하나님을 의식하며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살았습니다.

 

 

12절입니다. "요나단이 다윗에게 이르되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증언하시거니와 내가 내일이나 모레 이맘때에 내 아버지를 살펴서 너 다윗에게 대한 의향이 선하면 내가 사람을 보내어 네게 알리지 않겠느냐?'"

 

 

요나단의 말을 새번역으로 읽어봅니다.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우리의 증인이시네. 내가 내일이나 모레 이맘때에 아버지의 뜻을 살펴보고, 자네에게 대하여 좋게 생각하신다면, 사람을 보내어 알리겠네." '누가 그것을 내게 알리겠느냐?'라는 다윗의 질문에 대답하기 전에, 요나단은 자신의 약속과 맹세에 거짓이 없음을 증명하기 위해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증인으로 내세웁니다. '내일이나 모레'는 초하루의 잔치가 벌어지는 이틀 동안을 의미합니다. 요나단은 이 잔치 동안에 아버지 사울의 의도를 살펴서 너 다윗에게 대한 의향이 선하면 사람을 보내어 알게 하겠다고 합니다. 사울의 의향이 선할 경우에는 분명 사울의 마음이 누그러진 상태일 것이므로, 사자를 보내도 문제가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13a절입니다. "그러나 만일 내 아버지께서 너를 해치려 하는데도 내가 이 일을 네게 알려 주어 너를 보내어 평안히 가게 하지 아니하면, 여호와께서 나 요나단에게 벌을 내리시고 또 내리시기를 원하노라. …"

 

 

사울의 다윗 살해 음모가 중단되고, 다윗과 화해하려는 기미가 보이면 자기의 부하를 보내어 그 소식을 알릴 것이고, 반대로 사울의 음모가 계속되게 된다면 요나단 자신이 직접 그 소식을 전해서 다윗으로 도망하게끔 도와주겠다고 맹세합니다. 만약 이 언약을 어길 경우 하나님의 진노가 요나단 자신에게 임할 것이라고 합니다. 12절과 13절의 요나단의 말에는 하나님, 혹은 여호와라는 단어가 계속 반복됩니다. 그는 이렇게 하나님 앞에서 살았고,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살았습니다.

 

 

특별히 "벌을 내리시고 또 내리시기를 원하노라"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요나단의 이같은 말은 짐승을 죽여 둘로 갈라 사람이 그 사이로 지나가게 하는 히브리인들의 언약 체결의 풍습에서 기인한 말입니다. 즉 언약을 어길 경우 그 동물이 죽임을 당한 것 같이 언약 당사자도 죽임을 당하게 될 것이라는 히브리인들의 사고에 근거하여 요나단이 말한 것입니다. 그만큼 맹세에는 책임과 의무가 뒤따른다는 의식이었습니다. 요나단이 다윗과 약속한 것을 어기고 그의 생명을 보호하지 못한다면 하나님이 자기를 죽이실 것이라는 뜻입니다. 이 얼마나 분명한 신앙입니까? 맹세를 지키지 않을 경우 여호와 하나님께 벌을 받을 것이라는 요나단의 이 맹세의 표현은 '여호와'를 증인으로 세웠던 12절의 맹세와 잘 부합됩니다.

 

 

종교개혁자인 존 낙스의 묘비에는 "하나님을 두려워할 뿐 결코 인간을 두려워하는 일이 없는 자가 여기 잠들어 있다"라는 글이 새겨져 있다고 합니다. 요나단처럼 우리가 언제나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을 의식하며 살고, 하나님을 두려워한다면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둘째로 요나단은 하나님의 섭리와 주권을 믿었습니다.

 

 

13b절입니다. 요나단은 다윗에게 복을 빌어줍니다. "… 여호와께서 내 아버지와 함께 하신 것 같이 너와 함께 하시기를 원하노니." 새번역입니다. "… 주님께서 나의 아버지와 함께 계셨던 것처럼, 자네와도 함께 계시기를 바라네."

 

 

여기서 요나단은 여호와께서 (사울과) 함께 '하신' 것과 (다윗과) 함께 '하시기를'이라고 말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내 아버지와 함께 하신'에서 '함께 하신'이란 단어의 시제는 과거 완료형입니다. 그리고 '너와 함께 하시기를'이란 미완료형입니다. 그러니까 사울의 경우에는 완료형으로 사용되어 과거에는 있었으나 오늘날에는 없는 것을, 그리고 다윗의 경우에는 미완료형이 사용되어 앞으로도 지금처럼 앞으로도 계속 있게 되기를 기원하는 형식으로 말한 것입니다. 요나단은 이미 하나님께서 아버지 사울을 폐하시고, 다윗을 왕으로 세우실 것을 알았습니다.

 

요나단은 다윗에게 호의를 베풀어 달라고 합니다. 14절입니다. "너는 내가 사는 날 동안에 여호와의 인자하심을 내게 베풀어서 나를 죽지 않게 할 뿐 아니라." 8절에서는 다윗이 요나단에게 '인자하게 행할 것'을 요구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요나단이 다윗에게 오히려 '인자를 내게 베풀 것'을 요청하고 있습니다. '인자'는 히브리어로 '헤세드'인데 이 단어는 '친절', '인자', '자비', '긍휼', '다함이 없는 꾸준한 사랑' 등 다양한 언어들로 번역되고 있습니다.

 

 

요나단은 사울 왕의 아들로서 다윗을 체포하여 그 아버지에게 넘겨주어 그 왕권을 이어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요나단 자신이 다윗에게 이같은 자비의 요청을 말한 것은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사울과 다윗에게 장차 일어날 일, 곧 사울과 그의 집이 몰락하고 그 대신 다윗이 그 자리에 앉으리라는 것을 내다 보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섭리를 깨달은 요나단은 세상의 명예와 권력에 얽매이지 않은 겸손함과 하나님의 주권과 섭리에 순종하고 있었습니다.

 

 

요나단은 여호와의 인자하심을 내게 베풀어서 나를 죽지 않게 할 뿐 아니라, 그의 가문에도 헤세드를 베풀어 주기를 구합니다. 15절입니다. "'여호와께서 너 다윗의 대적들을 지면에서 다 끊어 버리신 때에도 너는 네 인자함을 내 집에서 영원히 끊어 버리지 말라' 하고." 새번역입니다. "주님께서 자네 다윗의 원수들을 이 세상에서 다 없애 버리시는 날에라도, 나의 집안과 의리를 끊지 말고 지켜 주게."

 

 

여기 '다윗의 대적들'은 사울의 가문과 사울의 가문을 포함한 모든 대적 등으로 이해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요나단이 다윗의 대적들 중에 자신의 아버지 사울의 멸망에 대하여 주된 관심이 있었을 것은 매우 당연합니다. 그래서 요나단은 너는 네 인자함을 내 집에서 영원히 끊어 버리지 말라고 요청했습니다. 이것은 장차 다윗이 이스라엘의 왕이 되고 아버지 사울의 가문은 멸망할 때에, 요나단 자신의 후손만은 멸망되지 않도록 특별한 배려를 원한다는 뜻입니다. 요나단의 이같은 간청은 받아들여져서 실제로 다윗은 후일에 이 약속을 지켜, 요나단의 아들 므비보셋을 왕자처럼 특별한 대접을 하였습니다(삼하 9:6, 7).

 

 

요나단은 앞에서 다윗에게 두 가지 부탁을 하였는데, 첫째는 자신에게 인자를 베풀 것, 그리고 둘째는 자신의 집에 인자를 영원히 베풀 것입니다. 이어 요나단과 다윗은 둘 사이의 약속에 대한 성실한 이행을 다짐하는 언약을 맺었습니다. 16절입니다. "이에 요나단이 다윗의 집과 언약하기를 '여호와께서는 다윗의 대적들을 치실지어다' 하니라."

 

 

여기 '치실지어다'의 뜻은 '찾기를 원한다', '요구하시기를 바란다'입니다. 즉 다윗의 원수들에게 하나님께서 책망하시기를 원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NIV는 '책망하시는 것을 원한다'로 번역했습니다. 새번역입니다. "그런 다음에 요나단은 다윗의 집안과 언약을 맺고 말하였다. '주님께서 다윗의 원수들에게 보복하여 주시기를 바라네.'" 다윗의 원수들에게 여호와께서 '벌하시기를 원한다'는 말입니다.

 

 

지금 요나단의 행동이 이해가 됩니까? 지금 요나단은 왕자이고 다윗은 쫓기는 신세입니다. 다윗의 생명이 요나단의 손 안에 있습니다. 그런데 요나단이 자신의 후손의 생명을 다윗에게 부탁하고 있습니다. 요나단은 분명한 하나님의 뜻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모든 것이 하나님의 주권과 섭리대로 될 것을 믿었습니다.

 

 

사실 우리 주위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에 하나님의 뜻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단지 우리가 그것을 보지 못하고 있을 뿐입니다. 요나단은 하나님의 중요한 뜻이 자기들에게 나타날 것을 믿었습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아주 중요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어떻게 해서든지 우리에게 그분의 뜻을 보여 주시며, 우리는 이것 때문에 모든 상황을 주장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알고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요나단은 이제 아버지의 뜻을 다윗에게 알려줍니다.

 

 

요나단은 마음먹기에 따라서 차기 왕권 경쟁자인 다윗을 반역죄로 체포하여 그의 아버지에게 넘겨줄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요나단은 도리어 다윗의 왕권을 인정하고 다윗에게 장차 그와 그의 후손들에게 자비를 베풀 것을 요청하였습니다.

 

 

요나단의 이러한 그의 태도에는 명예와 권력에 연연하지 않는 겸손함과 하나님의 섭리에 순종하고자 하는 신앙의 자세가 내포되어 있습니다. 그는 이전에 사울과 함께 하셨던 하나님이 이제는 사울의 불신앙으로 말미암아 아버지 사울을 떠나 다윗과 함께 계신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인간의 힘으로는 그러한 하나님의 섭리를 돌이킬 수 없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최선을 다해 다윗을 돕고자 했고, 다윗에게 훗날 자신과 자신의 후손에게 자비를 베풀도록 요청한 것입니다. 이러한 그의 신앙이 사울 집안의 몰락에도 불구하고 그의 가족과 후손들을 구원해 내었습니다. 이러한 사실에서 우리는 하나님께의 굴복은 굴종이 아니라 진정한 의미의 승리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아름다운 요나단의 믿음을 본받아 믿음으로 사는 우리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파일 첨부

여기에 파일을 끌어 놓거나 파일 첨부 버튼을 클릭하세요.

파일 크기 제한 : 0MB (허용 확장자 : *.*)

0개 첨부 됨 ( / )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 요나단의 신앙 [삼상 20장 5-16] 홍목사 2023-03-04 21
55 고통과 기도 [삼상 1장 1-10] 홍목사 2022-05-21 45
54 하나님의 섭리[출 2장 1-10] 홍목사 2018-09-15 426
53 새 시대를 향한 진통[출 1장 8-21] 홍목사 2018-09-07 87
52 번영과 고통의 드라마[출 1장 1-14] 홍목사 2018-09-01 117
51 계시록 2강 홍목사 2016-05-08 152
50 계시록 1강 - 서론 홍목사 2016-05-08 243
49 하나님의 비밀, 그리스도[골 2장 1-10] 홍목사 2015-07-24 597
48 일꾼의 자세[골 1장 21-29] secret 홍목사 2015-07-24  
47 만물의 주가 되신 그리스도[골 1장 13-20] secret 홍목사 2015-07-24  
46 최선을 삶을 살기 위한 바울의 기도[골 1장 9-12] secret 홍목사 2015-07-24  
45 우리가 감사할 이유[골 1장 1-8] secret 홍목사 2015-07-24  
44 안식을 주신 하나님[수 21장 41-45] secret 홍목사 2015-07-24  
43 도피성[수 20장 1-9] 홍목사 2015-07-24 953
42 받은 축복을 나누라[수 19장 49-51] 홍목사 2015-07-24 778
41 어느 때까지 지체하겠느냐[수 18장 1-10]? secret 홍목사 2015-07-24  
40 스스로 개척하라[수 17장 14-18] 홍목사 2015-07-24 1521
39 유다 지파의 땅[수 15장 1-19] 홍목사 2015-07-24 928
38 갈렙처럼[수 14장 6-15] 홍목사 2015-07-24 858
37 땅 분배의 원리[수 13장 1-14] 홍목사 2015-07-24 1237